친절한 훈육을 위한 마음가짐(2)

by 애나

사람이 처음 태어났을 때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목을 가누지 못해 목을 감싸줘야 하고, 음식도 먹여 줘야 하고, 기저귀도 갈아주어야 합니다. 소화도 잘 못해서 식사 후에는 등을 쓰다듬으며 트림도 시켜줘야 하지요.

갓난아기가 할 수 있는 건 부모 눈을 마주 보며 웃는 것 정도. 이랬던 아기가 점점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지고 어른이 되어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그 과정에는 부모의, 교사의, 여러 어른의 보살핌과 가르침이 존재합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점점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아이는 어른의 도움을 받아 커가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아이가 무언가를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기와 어른의 중간에 있는걸요. 말이 통한다고 해서 어른의 기준을 들이대어서는 안 됩니다.


어른이 되어 수영을 배우는 사람을 상상해 봅시다.

처음에는 모두가 어려워요. 강사가 알려주는 동작들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무언가를 해내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람마다 배우고 익히는 속도가 달라 누군가는 첫날부터 헤엄치며 앞으로 나아가지만, 누군가는 물이 무서워 한 달 동안 잠수를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배움이 느리다고 혼이 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들겠지만 반대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 것 같아요.


여러분이 오즈의 마법사처럼 바람을 타고 아주 먼 오지에 떨어졌다고 생각해 봅시다. 문화가 전혀 다른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 식사 예절이 우리의 것과 완전히 다르고 복잡하다면 그것을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럴 때 내가 실수하거나 잘못했다고 누군가 크게 혼낸다면, 그럴 거면 밥을 먹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밥을 치워 버린다면 얼마나 속상할까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족하고 미흡해 보이지만 아이들은 그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 그것이 제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두 번째 시각입니다. (첫 번째 시각은 16화. 친절한 훈육을 위한 마음가짐(1)을 참고해 주세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일이 아이들에게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처음 태어났을 때에는 자기 자신밖에 몰랐는걸요. 모두가 나에게 맞춰주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다가 점점 자유에 제약이 걸릴 때 아이는 낯설고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모든 예절과 생활 습관은 아이들이 처음 배우는 낯선 것들입니다. 모든 것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배우고 익히는 속도가 달라서 누군가는 바로 잘하겠지만 누군가는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교사가 지도하기 어려운 학생은 원인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경우. 부모가 아이의 욕구를 우선시하고 모든 걸 아이에게 맞춰주어 사회적 규범이나 배려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경우입니다.

둘째, 가르침을 받았으나 뇌에서 스스로 조절이 어려운 경우.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등으로 치료적 접근이 필요한 경우입니다.

셋째, 가르침이 과하여 자존감이 낮은 경우. 자존감이 낮으면 스스로 행복하지 못할뿐더러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하려는 심리가 발동하기도 합니다.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경우

첫 번째 경우는 아이를 변화시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나의 욕구보다 상황을 우선시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배우지 못해서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합니다. 자신이 기분 나쁜 것을 참지 못하고 남 탓을 일삼습니다. 가정에서 왕이었던 아이가 학교에서도 왕이 되려고 하지요. 이때 교사가 엄하게 지도하면 부모는 ‘감히 소중한 우리 아이에게?’라고 생각하며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기도 합니다.


가르침을 받았으나 뇌에서 스스로 조절이 어려운 경우

두 번째 경우는 학교에서 교육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소아정신과 진료와 치료가 함께 이루어져야 아이가 의미 있게 변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교사가 부모에게 소아정신과 진료를 권해야 하는데 그 과정도 쉽지 않습니다. 부모의 좌절 또는 분노를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은 교사에게도 늘 힘들고 괴로운 순간입니다.


가르침이 과하여 자존감이 낮은 경우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우는 최근에 더 많아졌지만 세 번째 경우는 오래전부터 쭉 있어온 문제입니다. 학교에서 교사 지도를 따르지 않고 반항하거나 또래 친구들을 괴롭히는 학생들 대부분은 가정에서 엄한 훈육을 받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불안이 심하거나 자해를 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질적으로 마음이 여린 아이가 어릴 때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을 때 이를 타인에게 풀거나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여 마음의 병을 얻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학부모를 상담할 때마다 공통적으로 듣는 말이 있었습니다

“아이 아버지(또는 어머니)가 엄해요.”


간혹 ”선생님도 엄하게 해주세요.”라는 부탁을 듣기도 합니다. 이럴 때 교사들은 난감합니다.

아동학대 신고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교사가 엄하게 해봤자 부모보다 무섭지 않고, 매를 드는 집이 있다면 매를 들지 않는 교사는 우습게 보이기도 합니다.


십몇 년 전, 한 아이가 큰 잘못을 저질러 남자선생님이 지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자 선생님이 정말 무섭게 혼을 내셨어요. 하지만 아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피식 웃었습니다. 교사는 부모처럼 혼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듯 보였습니다.


세 가지 경우는 각각 다른 종류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 경우는 가르쳐야 하고, 두 번째 경우는 뇌의 조절을 도와주어야 하고, 세 번째 경우는 자존감을 높여주고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 가지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이가 현재 성장하는 과정에 있으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도움을 받아 성장했듯, 우리도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문제 행동을 하는 것은 아이들 탓이 아닙니다.


가르쳐주면 됩니다. 친절하게 그리고 반복하여.

연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이들이 완벽하지 못한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가 완벽한 부모나 교사가 아니듯이.


아이들도, 우리들도

언제나 성장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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