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현재 친절한 교사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 교편을 잡았던 시기는 지금보다 교사의 권위도 컸고 엄한 선생님이 유행이었기에 저도 어느 정도는 엄한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했어요.
당시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흔히 돌았습니다.
‘첫 한 달은 절대 웃어주면 안 된다.’
‘처음 교실을 들어가는 순간부터 기선 제압을 해야 한다.’
저는 성격에 맞지 않게 무표정을 연기해야 했고 그런 제 스스로가 어색하고 때로는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 있게 ‘친절한 교사’가 된 지금은 아이들에게 마음껏 웃어줍니다. 마음껏 솔직해집니다. 그래서 교사로서 더 행복해졌습니다.
처음 부임하고 3~4년은 거의 매일 야근을 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많은 선생님들처럼 야근 수당도 받지 않고 수업 연구와 학급 경영 연구에 매진했지요. 그런 저를 많은 아이들이 좋아해 주었지만 마음 한켠에는 늘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혼낸 날이면 오랫동안 마음이 불편했고,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아이들이 완전히 저의 통제를 벗어나는 악몽을 꾸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큰 잘못을 했고 행여 다른 아이들이 따라할까 걱정되어 크게 꾸짖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이후 그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졸업하는 날까지 학교에 오지 않았거든요.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까요.
이후로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잘못을 했을 때 혼내는 것만으로는 교육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다듬고 확신을 가지고 정립해 가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친절한 교사’가 되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그 여정 덕분에 저는 행복한 교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친절한 훈육법이 거의 자리잡았을 무렵 바람과 해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바람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옷을 더 여미게 했지요. 억지로 행한다는 건 그만큼 부작용이 큽니다.
반면에 해님은 따뜻한 햇살을 내려주는 것만으로 나그네의 옷을 벗겼습니다. 그것도 스스로 벗게 했지요. 저는 이것이 ‘친절한 훈육’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뜻하게, 은근히 학생 스스로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
거기에 교사를 좋아하는 학생들의 마음은 덤입니다.
제가 아이들을 생각하듯 저를 생각해 주는 아이들을 볼 때면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이제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친절한 훈육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