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와 함께하는 일상은 평화롭게 흘러갔다.
아이들은 “명당”에 앉아 거북이를 구경하며 놀았다.
주말을 앞두고는 상추와 먹이들을 육지 쉼터에
예쁘게 배치해 놓고 “만찬”을 준비했다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거북이가 상추를 잡아당기며 한 순간에 엉망이
되었지만
아이들은 깔깔 웃으며 다시 수조를 정돈했다.
가을이 되었다.
거북이들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망고는 며칠째 밥도 많이 먹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크기 차이가 나기 시작하더니
확연히 망고가 작아졌다.
그만큼 호박이가 큰 것이었다.
망고는 작고 약하고 비실비실했다.
어쩌면 겁이 많은 성격은
약한 몸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도 이상하리만치 빨리 더러워졌다.
매일 물을 갈아줘야 할 정도였다.
주말이 지나면 물이 엄청나게 더러워졌고
거북이들의 등딱지가 누런 색으로 변했다.
머릿속에서 빨간 경고등이 켜졌다.
폭풍 검색 끝에 내린 결론은
교실에서 더이상 거북이를 키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이유는 온도였다.
날이 추워져서 수족관용 히터를 넣어주어야 하는데
교실에서는 전열기구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수조 크기였다.
알고보니 거북이는 단독 사육이 원칙이었고
두 마리 이상을 키울 때에는 그만큼
넓은 공간을 확보해주어야 했다.
공간이 좁으면 거북이들이 영역 다툼을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또 거북이가 커지며 배설물이 많아지니
여과기가 있어도 물이 금방 더러워졌다.
두배 크기의 수조가 필요한데
집에 둘 공간도 없고 관리할 자신도 없었다.
입양시키는 것이 좋겠지.
더 넓은 세상에서 편하게 살았으면.
남편도 그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날 밤,
꿈에 남자아이 두 명이 나왔다.
호박이와 망고였다.
(아이들이 호박이와 망고가 수컷이라고 주장하였기에
남자아이의 모습으로 나온 듯했다.)
사람 모습으로 나오다니, 반칙이잖아.
거북이들을 보내려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꼭 자식을 멀리 보내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두 마리를 다 키울 수도 없는 상황.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한 마리는 내가, 그리고 또 한 마리는 옆반 선생님이
키우기로 했다.
가을, 겨울 집에서 키우다가 따뜻한 봄이 되면 다시
학교에 가져오기로.
그러면 생사도 확인(?)되고 오며가며 볼 수 있으니
멀리 보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거북이 한마리는 내가 계속 키우면 어떨까?”
남편은 “그럴줄 알았어.”라고 말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거북이를 샀다고 전화한 순간부터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알았다는 듯이.
아이들에게 거북이 이별 소식을 전했다.
날씨가 추워져서 더이상 키울 수 없다는 말에
교실에는 순간 먹구름이 감돌았다.
“수조에 핫팩을 붙이면 어떨까요?”
“거북이 히터 제가 사올게요.”
“화재가 나면 제가 바로 달려와서 끌게요!”
서운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순수한 질문들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따뜻했다.
우리가 키웠던 것은
거북이와,
거북이를 사랑하는 마음
둘 다였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