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좀 이상합니다.
모두가 걱정하고 기피하는 6학년.
그런 6학년 학생들이 벌써부터 너무 예쁩니다.
만난 지 겨우 이틀 되었습니다.
보통 정이 들려면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리던데,
이런 초고속 정은 처음입니다.
이 좋은 느낌이 끝까지 가면 참 좋을 텐데.
중간에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기를
벌써부터 기대해 봅니다.
우리 교실에는 직업 제도가 있습니다.
학급에 필요한 일을 직업으로 정해 전담합니다.
스스로 그만두거나 해고되지 않는한 끝까지 역할을 담당하기에 시간이 지날 수록 전문성과 자신감이 쌓입니다.
교실에 필요한 일을 생각해서 직업 신청서를 내면 그 직업을 가질 수 있습니다.
혼자 하기 힘든 일이라면 직원도 뽑아줍니다.
학생들은 ‘교실에 필요한 일이 뭘까?’ 골똘히 고민하지만 초반에는 직업을 생각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당장 필요한 일을 제가 알려주고 가위바위보로 할 사람을 뽑습니다.
‘이런 일도 직업으로 가능한 거였어?’ 라는 인식이 수차례 쌓이면
그때부터는 온갖 일이 직업으로 생깁니다.
우선 ‘문단속’ 담당자를 뽑았습니다.
제가 학생들을 인솔해서 교실 밖을 나가면
문단속 담당자들이 교실 불을 끄고 문을 잠급니다.
자물쇠 비밀번호는 문단속 담당자들에게만 공유합니다.
직업을 가진다는 건
별(학급의 가상화폐)을 번다는 의미도 있지만
특정한 일을 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짐을 의미합니다.
아이들은 그 특권을 좋아합니다.
교실에서 나만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선생님이 나를 믿고 계속 일을 맡긴다는 것,
내가 교실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
그 모든 인식이 합해져 아이들은 학급이라는 공동체에 소속감을 가지고 자존감을 높여갑니다.
저에게도 좋습니다.
가르치는 일을 제외한 모든 일을 학생들이 하게 되어
저는 가르치는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6학년은 특히 더 잘합니다.
교실이 알아서 척척 굴러갑니다.
쉬는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굴러가던 하루에
점점 숨구멍이 생기고
‘여유‘라는 것이 들어옵니다.
그 여유의 틈 사이로
비로소 아이들을 관찰할 수 있게 됩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웃는 모습을 보며
같이 웃고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같이 고민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직업 제도가 좋습니다.
모두에게 좋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급식실로 가는 길.
문단속 담당자들이 문을 잠그고 뛰어옵니다.
빨리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복도에서 뛰는 건 위험합니다.
“뛰지 말고 천천히 와!“
그러자 전속력으로 뛰어와 이미 대열에 합류한 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칩니다.
”뛰지 마, 위험해!“
그 뻔뻔함과 재치에 아이들이 모두 빵 터졌습니다.
뒤따라오던 아이도 처음엔 당황한 듯하더니 같이 웃습니다.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저도 빵 터져버렸습니다.
당황해서 고개를 휙 돌리고 급식실로 향하는데 자꾸 웃음이 새어나와 어깨가 들썩여집니다.
벌써부터 웃음참기 실패입니다.
어떡하지요?
아이들이 너무 귀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