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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이 담을 넘었다.

영화 7 <천주정>

by 김진우








狗急跳墙


개도 급하면 담장을 넘는다.






우리 속담으로 말하면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뜻의 중국 성어이다.




지금 소개할 영화는

이런 궁지에 몰린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쥐들의 이야기다.


G2로 성장한 거대한 중국

그 속에 숨겨진 검은 현실

'농민공'들의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우선

'농민공' 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보자.



중국은 1950년 이후로 도시와 농촌을 분리해서

균형적 발전을 도모했고 그 과정에서 인구가 도시로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농촌에서 태어난 이는 농민이라는 신분제도를 부여한다.


시간이 지나고 농촌이 개혁을 이루고 각도시에 국내 기업들이 많이 늘어나 경제성장이 이루어지자 농민이었던 이들은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 농사보다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도시로 이주한다.

도시에서 거주하며 일하는 농민 신분의 사람들을 농민공이라 일컫는다.



도시민이 아닌 농민들에게는 임금이 3분의 1 정도로 아주 적었기에 시티드림은 그들에게 말 그대로 그저 꿈일 뿐이다. 쥐꼬리만 한 임금, 현대판 카스트제도의 제일 하위층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들. 그리고 그 꼬리표는 자식의 자식에게 끊임없이 대물림 된다. 이런 현대판 노예들이 자그마치 약 3억 명이며 5년 뒤에는 4억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나는 지금 먼 옛날 청나라 시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 옆에서 그들은 이렇게 하루하루를 핍박받으며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나이 50줄을 바라보는 따하이.

나이가 들자 당뇨병이란 지병도 갖게 되어

몸가누기가 쉽지 않다.




결혼도 직장도 건강도

일반적인 삶도 포기한 그가

미련하리만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돈에 눈이 멀어 자신을 속이고,

떵떵거리면서 잘 사는 마을 촌장과

마을 공공 이익을 독식해

회사의 사장이 된 동창생 셩리

그들로부터 약속받은

보상금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고소장조차 쉽게 접수되지 않고

마을 촌장은 물론 마을 사람들 모두

그를 무시하고 가소롭게 여긴다.




어느 날 회사 사장이 된 셩리가 홍콩에서

비행기를 사서 귀향한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대절한 버스에 올랐다.

환영식에 참가하면 밀가루 1포를 준다는 것이다.

엉겁결에 버스에 오른 따하이.

셩리를 만나러 간다.



용기를 내서

말을 꺼내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매질뿐.





골프 치듯이 쳐 맞았다 해서

동네 사람들은 그를

'골프 선생'이라 놀린다.





비참함의 끝.

그는 장롱 속 샷건을

꺼내 든다.



그리고 시작된

피의 복수극,

반평생을 바쳐 받아내겠다던

보상금. 이젠 모든 게 무의미하다.



비리에 개입한 회계담당인

그를 조롱하며 깔보던 마을 주민 1




횡령의 당사자 마을 촌장과

끊임없이 그를 무시하던

동창생 셩리




후련하다.

그리고

씁쓸하다.



거사를 치른

따하이는

웃는다.


기쁨의 웃음보다

허탈한 실소가 더 적절한 것 같다.

반평생의 시간

결국은 이럴 거였나.


그는 지금 요즘 말로 웃픈 것(웃기지만 슬픈) 같다.











도끼를 들고 길을 막아선

풋내기 십 대 양아치들에게도 자비 없이

총구를 겨누는 살인청부업자

'조우산'





사실 그에겐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 노모와 두 형들이 있다.


어머니의 생일잔치.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배를 타고

오토바이를 타 고향으로 향한다.




그를 바라보는 어딘가 못마땅한

어머니의 시선,


오랜만에 보는 낯선 아빠의

거친 스킨십이 불편한 아들,


어디서 또 무슨 짓을 한 건지

그래도 남편이 보낸 정체모를 돈을

생계를 위해 쓸 수밖에 없는 아내.



고급담배라며

9개비를 3개씩

나누는 사이좋은

형제들




그는 좋은 남편이 되고 싶고

아들에게 살갑게 다가가고 싶고

어머니에겐 효도를 하고 싶어 한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어머니의 아들로서

형들의 착한 동생으로서


참 아이러니하게도

살아가기 위해 그는 살인을 선택한다.






다시 저지른 살인

너무나 익숙한 듯이

자연스럽게 일처리를 하고

유유히 자리를 뜨는 조우산





도로 위

그의 앞에는

어딘가로 끌려가는지도 모르는

소들이 트럭에 실려있다.

두려움도 긴장도

아무런 감정도 없는

몽롱한 상태의 소들.



마치 조우산이 아무 죄책감이나 미래의 희망 없이

무언가에 이끌려 당기는 방아쇠처럼

허무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유부남 애인과 이별을

준비하는 사우나 직원

'샤오위'






미래가 보이지 않는

지지부진한 관계를

끝내기 위해 기차역에서

헤어지는 그들







직장으로 돌아와 이별의 슬픔을

일로 잊으려고 하는 샤오위

그러나 그때 찾아온 남자 친구의

아내와 그녀의 가족들.

가차 없이 폭력을 휘두른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고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들은 고속열차사고소식

바로 그 열차에

그의 오래된 남자 친구가 있었다.




헛헛한 마음으로

다시 직장으로

돌아오지만

이번엔 또 진상 손님들이 와서

접대를 하라며 추태를 부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정중히

거절했지만

물러서지 않는 민폐남들

그녀와 꼭 자고야

말겠단다.





그치지 않는

손찌검.

생존의 위협을

느낀 정도로

심해지는 그들의

폭행.




결국 그녀는

가방 속

과도를

꺼내 들었다.











재봉공장에 서 일하는

청년 '샤오 후이'

어느 날 직장동료의

핸드폰을 빌려 내비게이션을

찾아본다.




친구는 샤오 후이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누던 도중에

정신이 팔려 손을 다친다.






사장은 의료비는 지원해주겠다고 하지만

보상비는 샤오 후이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어이없는 처우와 월급도 막 받은 터라

책임 감 없이 공장을 뜨는 샤오 후이

남쪽 동관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




친구의 소개로

큰 유흥업소의 웨이터로 취업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동향 리엔롱.

그녀는 그곳에서 접대를 하고 있었다.




순수하고 젊은 두 남녀는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이끌린다.



샤오 후이는 용기를 내

고백하지만 티엔롱은

자신에겐 3살짜리 딸이 있고

어차피 이곳에서의 인연은

일시적인 것이라며

거절한다.



유흥업소에 더 이상 미련이 없는

샤오 후이는 친구가 일하는 공장에서

일하기로 한다.



없는 돈을

계속 부치라는

엄마.


피해의식에

사무친 전직장

친구는 샤오 후이를

때려죽이러 온다.




이 힘든 상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는

숙소 아파트 난간 위에선다.







개들이 담을 넘기 시작했다.




쥐들이 이빨을 드러내 고양이를 물었다.

한 순간에 벌어진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농민공'이라는 현대판 노예 딱지를 붙인

그 순간부터 최하의 인생을 살아가는 그들은

매 순간이 극한이다. 그래서 그랬다.


천주정 (天注定)

'하늘이 결정한다.'라는 뜻의

영화 제목은 현대판 노예 농민공들의

삶은 운명적인 것이며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 같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던

쥐들


그러나 기껏해야

궁지에 몰린 그들이 할 수 있던

유일한 발악은

살인, 자살



이건 극한의 압박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벌어진 일종의

무조건 반사 같은 것이었다.


지금 중국에선

약 3억 명에 이르는 농민공들이 매일

담을 넘을 준비를 하고 궁지에

몰려 몸을 웅크리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옛날 청나라 시대

노예제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2016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중국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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