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우 Sep 29. 2017

매일 다른 하늘

철수의 그림이야기





'하늘'은 같은 하늘이고, 그 아래 살아가는 나도 늘 비슷한 일상을 경험하며 지낸다.  

내가 같으니 하늘도 같다, 아니 같을것이다. 그렇게 배워왔으니까 오랜동안.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늘은 한 간도 결코 같은 '하늘'인 적이 없었다. 지금도 물론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해의 범위를 초월한 것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다. 그것이 어려워서 일수도 있고 이질감이 들어서 그럴수도 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시시각각으로 다른 모습을 지닌 무수한 것이라면, 또 그것들이 정리되지 않은채로 넘쳐난다면, 과연 견뎌낼 수 가 있을까?


삶은 짧고 생존은 벅차다. 이해할 여유는 물론 없다.

인간 삶의 편의를 위해, 다채로운 모습의 이름없는 다각형은 인위적으로 철저하게 다듬어져 삼각형, 사각형, 정육면체 등의 '이름'으로 코드화 된다.  '인상주의'의 탄생은 이 코드화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근대 과학지식으로 우리인간들은 꽤 오랫동안 발전을 이룩해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우리가 알고있던 지식들, 보편화된 개념들을 맹신하기 마련이었다.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미술의 역사속에도 사조의 변화들이 있어왔지만, 인상주의 전까지 한번도 대상의 '사실적인 재현'이라는 기본 틀은 건드려지지 않았다. 예술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어야 했고, 시지각적으로 이해가 되는 범위내에서만 허용이 되었다. '추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렇게 맹신했던 근대과학의 발전은 오히려 오랜기간동안 쌓아왔던 탑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낸다. '카메라'의 탄생이다.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 더 이상 '사실적 재현'은 의미가 없게된다.

이로인해 많은 예술가들은 생존을 위해 새로운 길을 개척해내야만 했다. 작가들은 재현의 압박에서 벗어나 '감정'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풍경을 그리더라도 사실적인 재현보다 어떠한 한 장면을 포착해서 담아내려 애썼다.

작가가 스스로 선택한 장면, 그 안엔 당연히 화가의 감정이 묻어났다. 화가들은 또한 무너져버린 절대적 이상 혹은 법칙으로서의 형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두 '생'눈으로 바라본 시시각각의 인상들을 모두 담아내려 했다. 모네를 대표로 하는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동일한 대상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모습에 주목한것이다.

수련, 건축물, 바다..




그리고 그들은 밝혀냈다.

이 세상에 같은 하늘은 없다는걸. 같은 주제의 수십장, 수천 모두 다른 그림들이 그 증거물들이었다.

우리가 믿고 있던 '진실'이라는 것은 하나의 정의, 개념, 코드화로 이루어진 실재들이 아니라, 셀수없이 수많은

모습들을 지닌 개체들의 종합이라는 사실 말이다.  같은 하늘이라고 믿고있었던 그것은 계절마다, 날마다, 낮과 밤으로, 시간마다, 분마다, 매초마다 변해가고 있었다. 결코 그 모든 모습들을 하나의 것으로 기억하고 정의하고 담아낼순 없었다. 인상주의 화파를 서양현대미술의 시작으로 두는 이유는 당연하다. 새로운 변화와 도전의 시발점이었다. 또 이는 인간이 이룩한 근대적 과학관, 지식에 대한 맹신의 붕괴를 이끌어내 '진실'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가게 했기  때문이다.  





첨부한 그림들은 중국 미술학원 미술관에서 진행중인 전시회에서 찍은 사진들이구요. 중국미술학원 교수님들중 한 분의 작품으로 브루나이 해변을 계속해서 관찰해서 그리셨다고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