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우 Apr 29. 2017

책임과 원칙

철수의그림이야기



모든 일을 주동적으로 하는데 있어서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특히 문화관련 공부 하고싶어하던 나에게 있어서

'책임'이라는 말이 어느때보다 더 무겁게 다가왔던 순간은

바로 고등학교 시절, 남대문이 활활 타던 그날 밤이었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TV뉴스를 보았고

 그 장면을 잊을수가 없었다.

바로 숭례문 화재 뉴스였다.


우리의 국보 1호 숭례문 그리도 쉽게 무너질 수 있던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가는 그 장면을 보는데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기분이들었다.

문화시민으로서 좌절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런 감정을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였을것이다.

그 당시 모든 국민이 그랬다.




시간이 많이 흘러 대학교 재학 시절,

학과장님이던 모 교수님이 문화재청장이 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곧 얼마되지않아

 숭례문 복원에 차질이 생겼다는 책임을 지고

꼬리 짜르기 식의 해고를 당하셨다.

물론 복원은 이전 청장 재임시절에 끝이 났지만,

어디 그런 것이 먹히던가. 그 무거운 책임의 댓가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문화유산은 소중하다.

보호되어야 하고 마땅히 연구해야할 과제라는 것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 무엇을?연구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사실 잘 알지 못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역사교과서를 비롯해서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이나 시사퀴즈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 국보1호, 보물3호를 맞히라는 문제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몇년이 지나도 여전히 인기가 꾸준한 스테디 셀러다.

이 모든 사실들은 사람들의 문화 예술에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문화유산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을 생각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도움을 줄만한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첫번째로는 '책임'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에서 있었던 남대문 화재와 같이 비극적인 사건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났었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2001년 3월 아프가니스탄 북부

바마얀 지역의 불교 석굴 사원을 이슬람 청년교도들이 미사일과 다이너마이트로

폭발시켜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교의 원칙에 의거해서 행한 '정당(?)'한 행위라는 것이다.

이슬람교도들에게 있어서 바마얀 석굴의 불상은 그저 돌덩이일 뿐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식의 생각은 너무나 위험한 것이고 또 모든 첨예한 갈등의 시작이 된다.  '문화'라는

모호하고 포괄적인 개념에서는 이러한 일원적이고 고집스러운 사고방식이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서로 다른 나라, 민족, 종교, 정치, 역사를 반영하는 형형색색의 문화유산들에게 한 가지 잣대를 들이댄다는것

자체가 말이 되지않는다. '문화유산'의 탄생은 이미  다양성에 대한 이해라는 기반아래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의 문화유산들은 아프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들의 몰이해와 이기적인 고집으로 인해서 그렇지는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문화시민이라는 '책임감'을 늘 지니고 살아가야한다.  남대문 사건처럼 개인적인 원한을 엉뚱한 곳에 푸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하고 말이다.



두번째는 '원칙'에 대한 이야기다.



미사일을 쏘고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고의로 부수든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서서히 부식 되든지,

자연재해로 인해 손상을 입든지 문화유산들은 모두 죽어간다.

 유형성(有形性)이고 유한성(有限性)이라는 물적한계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화재를 복원해야함은 불가피한듯 하다.  실제로 많은 복원과정을 거친 결과물을 보더라도 알겠지만

어떤 것들은 복원이전의 모습이 훨씬 나은 경우도 있다. 비록 이전의 완전한 형태는 아닐 지라도 말이다.





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러스킨은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것이 불가능하듯,

'복원'이라는 작업은 그 자체로 '파괴'만 남길뿐이다." 라고 말했다.   


어찌 해야 좋을까?

그대로 두어야 하나?

아니면 복원을 해야하나?


이탈리아의 한 학자는
"복원의 목적은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함이지 역사를 갱신하기 위함이 아니다."

라고 말하면서 문화재 복원의 3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복원을 진행하되 원칙을 가지고 하자는 것이다.


첫번째는  '시각적 통일'안에서 이루어져야하고

두번째로는 복원 과정에서 '재료'사용에 주의 해야한다고 했다. 특히

외관에 있어서는 엄격하게 원본의 것과 같은것 외에는 사용이 불가하며 내부에서는

약간의 융통성이 발휘될수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세번째로는 '거역성(可逆性)’에 대해 말을 했는데,

이는 지금 이루어지는 복원과정이 최종적인 단계임을 말하는 것이아니라, 이후에

더 나은 상태로 복원이 이루어질수도 있음을 감안해서 여지를 남겨두라는 것이다.

  

문화재 복원 과정 뿐만 아니라 문화유산보호라는 큰 틀에서도 원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바로 진실성(Authenticity)와 완정성(Integrity)을 연구하고 보호하는것이다.

진실성은 다른 말로 믿을만하고 확실한것을 뜻한다.

문화유산 그 자체는 말이 없기때문에 우리는  객관적인방식을 통해 그들을 알아보아야하는데 

바로 문화재 감정과 식별이 그것이다 .


완정성(完整性)은 안전(安全)하면서도 완전(完全)하다는 두 층위의 개념으로부터  기원했고,

초기에는 기념물유산재료와 자연유산이 아직 손상을 입지않은 온전한 상태를 지칭했지만 점차

발전해서 문화유산과 주변환경, 혹은 다른 상관물과의 관계까지도 지칭하게 되었다.  


현재의 문화유산보호및 연구는 진실성과 완정성이라는

큰 프레임속에서 진행되어지고있다.  







죽어가는 이를 살릴 수만있다면, 살려야만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체계적인 의학지식, 의사로서의 원칙과 책임감을 갖춘 이에게 이 일을 맡겨야 하지않을까?

 

아니면  


어쩌면 가장 온전한 모습일수 있는 지금이대로 죽게 남겨두는 것이 옳은 것일까?


글쎄..

 어떤게 옳다고 딱부러지게 말할수는 없을것같다.

가장 예쁠때 그모습을 간직한채 죽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어쩌면 그게 그 사람 가장 온전하게, 행복하게 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문화유산보호 혹은 복원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하고자했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어찌되었던 이런 문제를 생각해볼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시민으로서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