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몸을 즐기는 법
- 표지를 다시 한 번
‘당일 택배’, ’배송비 무료’의 달콤함에 나 또한 온라인 책방을 자주 이용한다. 온라인 서점인 A사의 굿즈도 판매에 한몫한다. 지금은 그런 굿즈들을 받고자 오만 원 채우기 같은 것에 낚이지 않지만, 누군가의 추천이나 SNS 광고 등을 보다 흥미로운 책을 만나면 온라인 서점에서 바로 검색해 장바구니에 담게 된다. 결제 시스템까지 얼마나 매끈하게 모든 과정을 설계해 두었던지 눈빛만 마주쳐도 바로 배송이라 다음날이면 문앞에 떡하니 도착해 있다. 기다림이란 감정이 싹트기 전에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빛의 속도로 내게 도착한 그 책이 기대했던 몸이 아닐 때가 있다.
‘어, 생각보다 제본이 헐렁한걸’, ‘코팅 표지는 싫은데’, ‘내지의 빛 반사가 너무 심하잖아’ '책이 너무 작자나' 등의 느낌이 들면 펼쳐보기도 전에 섭섭하다. 가끔은 내 책장에 차마 꽂아두고 싶지 않은 책도 만난다. 아시다시피 책은 반품이 안 된다. 책의 표지를 다시 디자인해서 입혀야 하나 하고 고민한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꽤 유명한 스기우라 고헤이*씨도 앨범이나 책의 디자인이 못내 눈에 거슬릴 때 자신이 만들어 입히곤 한단다 (디자이너에게 책 표지 제작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불어 디자이너들은 시각적 불충분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미각이 예민한 사람들처럼 시각이 까칠하니 미식가美食家가 아니라 미시가美視家라고 불러야겠다. 주변이 미적으로 기쁨을 주지 않으면 불평불만이 늘고, 까츨해져서 사사건건 예민하게 군다. 아름다운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특화된 것이 디자이너다.
내가 운영하는 서점에는 책만들기 수업이 있다. SNS의 홍보문구가 ‘책의 모든 것’이라고 되어 있다보니 종종 책과 관련한 여러 문의가 온다. 어느 늦은 저녁 어떤 남자 분이 문의를 해오셨다. 책 표지를 만들고 싶은데, 가르쳐 줄수 있냐는 것이었다. 책 만들기 수업 중 북커버 디자인 내용이 있긴 하지만 따로 그것만 수업을 해본 적은 없다며 다소 곤란해 하니,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책을 너무 좋아하는데 그 표지를 자신이 만들어 선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연을 들으니 도와주고 싶어서 급한 일정을 쪼개 그 분과 함께 북커버를 만든 적이 있다. 그 분이 직접 디자인하고 출력해 입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다른 인상의 책으로 탈바꿈했고, 받는 분도 아주 좋아했다는 말을 들었다.
북커버는 하나의 독립적 분야로 책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많은 출판사에서 디자인에 고심하고 외부에 따로 비용을 들여 의뢰하기도 한다. 또 몇몇 책은 같은 출판사에서 트렌드에 맞춰 북커버만 바꾸어 내놓는 마케팅을 펼친다. 오프라인 서점을 가면 형형색색으로 눈을 즐겁게 하는 책표지의 향연을 볼 수 있다. 호텔 뷔페에 못지 않은 선택의 설렘이 있는 장소가 서점이다. 책들이 한꺼번에 경연대회라도 하듯 시끌벅적하다. ‘내가 궁금하죠?’ ‘나를 열어보고 싶지 않나요?’ 라며 재잘재잘 말 거는 책들 사이를 거닐면 봄날의 산책처럼 마음이 즐거워진다.
못내 참기 어려운 책표지가 있다면 상담 가능합니다. 혹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책을 위장할 커버가 필요하지는 않으신지요? 저도 간혹 쓰는 방법인데 감쪽 같다니깐요. 아, 그러고 보니 자신이 출판하고 싶은 책을 미리 커버만 만들어 좋아하는 책에 입혀두면 멋질거 같네요! 시크릿효과도 있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