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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Jan 17. 2023

눕거나 앉거나는,

책의 몸을 즐기는 법

나는 곧잘 누워서 책을 본다. 잠자리에 들기 전이나 이른 아침 침상에서 일어나기 전에, 혹은 피곤한 오후에 소파에 기대어 독서를 한다. 가벼운 책은 한 손에 끼고 읽을 수 있다. 손을 번갈아 들 때마다 몸을 좌우로 바꿔가면 좋다. 한 시간 정도는 무리 없이 독서가 가능하다. 손에 번갈아 들기도 귀찮은 경우는 북 스탠드에 책을 고정하고 배에 책을 기대고 보면 수월하다. 


요즘은 책의 만듦새를 중요시다하보니 양장본책이 많아졌다. 근데 양장본을 손가락에 끼우고 삐딱하니 모로 누워 보는 건 불가능하다. 뿐만아니라 왠지 그런 자세로 보면 실례가 되는 기분이다. 양장본은 책상을 말끔히 치우고 북 스탠드를 중앙에 놓은 뒤에 책을 반듯이 세우고 봐야 할 것 같다. 자세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가부좌나 무릎을 붙이고 엉덩이를 의자 깊숙이 넣은 자세가 좋겠다. 손은 팔을 내밀어 책의 양쪽을 잡거나 가지런히 무릎 위에 놓는 것이 어울린다. 커피는 제대로 된 잔에 받침까지 갖추어 옆에 두고, 한 장 한 장 공손히 책장을 넘기며 책을 보는 것이 마땅하다. 책장에 침을 발라 넘기는 것은 되도록 삼가한다. 이처럼 무겁고 정성이 들어간 책은 독자에게도 격을 갖추도록 요구한다. (그런이유로 편안함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문고판이 딱이다)


가벼운 에세이나 소설은 잠들기 전에 읽으면 좋은데 양장제본이라면 침대로 가져가기엔 부담스럽다. 옆으로 누워 한 손으로 책을 들자면 엄지와 새끼손가락은 책의 앞면에, 나머지 손가락은 책의 뒷면을 받치게 되는데 무선 제본이라야 적당한 탄력이 있고 지탱이 가능하다. 


1.5센티미터 정도의 등과 200그램 정도의 무게의 책이 그립감도 좋다. 난 그립감을 중요시한다. 자동차 핸들도 손에 잡힐 때 딱 좋은 두께가 있다. 너무 두툼하면 오히려 거북하다. 커피잔도, 가방도, 펜도, 헤어드라이어도 손에 착! 붙는 것들은 사용하는 내내 나를 기쁘게 한다. 한편으로 그립감이 좋지 않은 사물은 결국 외면되고 만다. 일전에 큰돈을 들여 산 사색 볼펜은 결국 손에 잡히는 느낌이 부담스러워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손가락을 끼워넣기 불편한 커피잔도 마찬가지였다. 청소기도 구입 전에 꼭 손에 쥐어서 이리저리 움직여 보아야 한다. ‘물건을 모르면 돈을 줘라’는 말이 있지만 비싼 물건도 때로 실패한다. 적당한 굵기와 적당한 무게와 적당한 마찰이 있는 표면을 설계하는 일이 그리 녹록지 않은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 살아남은 수명이 긴 물건들은, 경험을 통해서만 알게 되는 사용자의 밑바닥의 심리를 만족시키기 때문에 긴 시간 동안 사랑받았다. 책의 경우에도 책을 오래 제작해보고, 공부해본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책 장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 분야의 장인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며 한 사회의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디지털 세계의 장인이라면 콘텐츠의 종류에 따라 사용자와 만나는 인터페이스를 무겁게, 가볍게, 편안하게, 불편하게. 우울하게 혹은 즐겁게 만들수 있을 것이다.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의 추구해야할 디자이너의 목표도 그러해야한다. 그것이 사용되는 접점에서 일어날 이벤트를 능숙하게 다룰줄 아는 숙련됨이 필요하다. 그런의미에서 디자이너의 내면에는 장인이 있어야한다.




저는 벌써 중년인데 언제쯤 한 분야의 장인이 될수 있을까 염려스럽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까츨한 소비자로 남아 있는 것도 괜찮은 일인 것 같아요. 저의 둘째 딸은 7살때 꿈이 뭐냐고 물으니 "소비자"라고 대답했답니다. 소비자야 말로 디자인 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예술 참여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연(세계)와 마술적 단일성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기술을 발전시키고 기술적 매개자를 통해 상호작용하는 행위를 하게 되는데, 그 작용의 순간에 미학적 감수성을 발현하는게 디자이너의 임무인것 같아요. 요즘 읽는 책 시몽동의 기술철학을 좀 끌어와 봤습니다. 시몽동의 기술철학은 디자인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인공물의 사용성의 중요함을 꺠닫게 하더군요. 디자이너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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