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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요.

매일 매일 행복하기

by 애란


새로운 회사도 이제 6개월 차가 되어간다. 가끔 내가 하는 일들을 멀찍이서 바라보면 나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에 빠지곤 한다. 어떤 곳에서 일을 하든 늘 그런 생각을 종종 했다. 늘 지금 하는 일들이 이전과 접점이 없었기 때문도 있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잘하는 지를 모른다는 마음이 현재의 나를 늘 불안하게 했다.


사진작가, 영상 편집자, 심리 상담가, 사회 복지사, 문화 기획자, A&R, 이벤트 기획자, 매장 운영, 작가, MD, ..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 그리고 지금껏 해왔던 일들을 마구잡이로 섞어서 나열해 보니 일의 성격이나 업무 내용은 모두 다르지만, 타인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다뤄야 하는 직업들이란 공통점을 발견했다. 근데.. 따지고 보면 모든 직업들이 다 그렇지 않은가...? 막상 회사에서 독립해서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가 된다고 해도, 오히려 타인과 보내는 시간이 더 늘 것이다. 직접 대면하는 것만이 소통의 전부는 아니니까, 일과 연관된 모든 소통을 나 혼자 감당해야 하니까. 우리의 삶은 타인과의 결속에서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꼭 필요로 하는 나인데,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들과의 단단한 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혼자의 시간을 더 잘 보낼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이전보다 더 단단해진 것도 있지만, 같은 공간에 있지 않더라도 사랑을 건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암묵적으로 내 밑에서 나를 받쳐주고 있기에, 내가 올곧게 내 시간 속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소하게나마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어느덧 3년 차. 대부분 회고에 가까운 글들이지만 이 글들 덕분에 나, 나의 삶, 주변 사람들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현실에 사는 방법을 조금은 알게 되었고, 과거에 살았던 이전의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불안, 후회, 미련으로 가득 차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냈던 나를 불안, 후회, 미련을 동력으로 행복과 감사를 채우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과거에 사는 사람들을 동정하거나 비난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보다 복잡하다. 우리의 과거는 반짝이는 보물과 부드러운 바세린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보물을 잘 활용하고 위안을 얻는 것은 전적으로 감사함을 느끼는 것에 달려 있었다. 오만함에서 감사함으로 가는 여정만큼 커다란 보상이 따르는 여정은 없다.

그것은 자신이 처한 환경 조건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는 기술, 그 크기를 다른 관점에서 재어보는 기술, 더 보기 좋은 액자를 씌움으로써 그림은 그리 암울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기술이었다. 새로운 액자를 씌운 그림은 이따금 더 흥미롭다.

프랭크 브루니, ⌜상실의 기쁨⌟, 웅진지식하우스, 20, p.423 ~p.436




10월 중순쯤 오랜만에 이상증상들이 내게 찾아왔다. 문득문득 숨을 쉬는 게 벅차게 느껴지고, 좋아하는 것들조차도 너무 막연하고 부담스럽게만 느껴지고, 마음이 계속해서 삐쭉거렸다. 이전에도 몇 차례 느꼈던 징후들이라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지금 마음 상태가 굉장히 좋지 못하구나. 내 머리가 얼른 알아차리라고 이렇게 내가 몸소 느낄 수 있는 증상들로 신호를 주는구나.' 하고 알 수 있었지만, 단번에 눈치채지는 못했다. 그랬다면 더 좋았을 걸. 스스로를 한동안 미워하다 알아챘다.


불안은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복잡한 생각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실제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도 있다. 회고를 통해 내가 느낀 건 불안하다고 그 불안을 통제하려 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게 기폭제가 되어 나를 미워하고 괴롭혔다는 거다.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마음껏 미워하고 괴롭히게 내버려 둔다. 힘들어하고 나면 그 뒤 나한테 어떤 것들을 더 끌여당겨야 하는지가 눈에 들어온다.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를 알고 있는 것이 정말 중요한 시점이다. 힘듦의 시간을 보내고, 지쳐있는 순간에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요소를 채워 넣어주면, 그 이상 더 주저앉지 않는다. 앞서 말한 회고뿐 아니라, 나는 아래 행동들을 할 때 확실한 행복감을 느낀다.


프렌치프레스로 따뜻한 보리차 내려마시기

아껴뒀던 원두로 핸드드립 커피 내려마시기

읽다 흥미를 잃어버린 책 다시 펼쳐보기

좋아하는 시리즈 보기

취미들 기록하기

창문 활짝 열고, 좋아하는 노래 들으며 청소하기

좋아하는 요리 해먹기

팟캐스트 들으며 동네 거닐기


내게 확실한 행복을 주는 이런 요소들을 찾기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최근 들어 2년이니, 이전에 그렇지 못하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계속해서 더해가야겠지만 일부라도 발견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이제는 아쉬움보다 감사함이 더 크다. 감사함이 더해질 때마다 복이란 아주 사소한 것들에서 느끼는 것이라는 생각에도 확신이 더해진다. 오래전 마음이 힘들었던 어느 날, 다시금 열심히 삶을 살아보려는 나의 다짐에 언니가 건네주었던 '매일 매일 행복하기‘라는 문장을 지금까지도 채팅방 공지로 올려두었었다. 자주 보던 문장이지만 실제로 내가 매일 매일 행복하려고 애쓰는 지금, 말의 따뜻함이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마음을 돌아볼 수 있게 좋은 말을 건네준 언니에게도 이 글을 빌어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하며 오늘의 짧은 글을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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