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나는 지금 어떤 걸 선택하고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

by 애란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


요즘 내 머릿속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두 가지 단어로 가득 차 있다. 내가 곧 나의 삶 그 자체인 지금, 주체적인 선택을 통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반문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 읽던 책에서 깨달은 한 지점. 어쩌면 나, 계속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는 걸까. 어떤 곳에서 일을 하든 나를 일에 너무 과하게 투영하는 것, 모든 일에 강박을 가지는 것, 깊은 우울감에 빠지면 아무하고도 소통하려 하지 않는 것… 곱씹어보면 아직 예전의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인생 자체가 선택이고, 지금 나의 선택이 나를 다른 선택으로 이끈다. ‘지금의 나라면, 이전의 나와 다른 선택을 했을까?’ 하고 고민해 보다 결국 나라는 사람의 기질과 성향은 그대로니 결국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에 이른다. 그렇지만 그 선택을 한 이후의 과정은 다르지 않았을까. 인생이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라면, 매 선택을 거칠 때마다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된 게 있을 테고, 그러니 선택의 양상은 비슷할지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안 맞는 것을 꾸역꾸역 하고 있기보다 내게 맞는 걸 찾을 때까지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일이든 취미든 그것의 구분과 관계없이 최소 1년 반 ~ 2년은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그 기간 동안 그것이 나와 맞지 않아서 힘들 수도 있고, 내가 예상했던 것과의 차이가 커서 혼란할 수도 있겠지만 몇 달 정도의 짧은 기간의 경험만으로 그것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 그것에 대한 존중을 보이지 않는 행동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마치 가장 맛있는 안 쪽 부분은 채 먹어보지도 않고, 겉 쪽 과자가 내 입에 안 맞다는 이유로 아예 먹지 않는 것과 비슷한 느낌. 그래서 20대에 접어들고 지금까지 매 2년마다 의미에서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하던 것을 계속해서 이어할 것인지, 혹은 아무래도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은지. 지금 소속한 곳에서도 곧 그 선택을 앞두고 있다. 경험해 보고 싶던 직무였고, 일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사수가 있었고, 꼼꼼한 분들 곁에서 일을 배워서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회고를 거듭하며 제대로 일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지속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확답을 스스로에게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선택에 대한 고민을 지속할수록 내 안에 아직 더 방황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다는 걸 느끼고 있다. 더 넓은 세상에 발 담가보고 싶다는 마음,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호기심 가는 게 있다면 일단 다 해보고 싶다는 마음.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2019년부터 지금까지의 나의 시간을 돌아보면, 늦은 속도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뒤로 간 적은 없는 것 같다. 적으면 적었지, 대단히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내가 ‘커리어’라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몇 년을 주기로 해보지 않은 시도를 거듭할 때마다 내 계획에 없던 기회들도 그만큼씩 찾아왔다. 어쩌면 썩 나쁘지 않은 결과일지도. 몇 번 더 시도를 거듭하다 보면 조금 더 갈피가 잡히려나. 어디로 가는지는 잘 몰라도, 시도를 거듭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가장 크게 변한 부분이 있다면, 아직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더라도 그런 것들을 갈망하는 마음을 조금 떼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데 써보자고 다짐한 것이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에 매달려 그것을 갈망하기보다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오늘 하루에 조금 더 애정을 가진다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내가 가진 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그것에 감사하며 나의 하루를 보듬는다면 나 자신도 모르게 내가 꿈꾸던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출처 : 양귀자, 「모순」, 쓰다, 1998, p.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