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떡볶이
나는 정말이지 떡볶이를 좋아한다. 탄수화물과 당과 고추장의 조합이라 영양에는 도움이 안 될 테지만. 만약에 떡볶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몸의 필수 영양소가 얼마나 포함되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떡볶이는 "죄송합니다.."라고 답할 것 같다. 그럼에도 떡볶이가 좋다. 떡볶이만큼 나에게 희로애락이 담긴 음식이 또 있을까.
지금처럼 14,000원짜리에 온갖 사리를 다 추가해서 푸짐하게 상차림 한 떡볶이도 물론 좋아하지만, 가끔 그 시절을 생각한다. 떡 하나하나가 소중했던 그때 그 시절의 떡볶이 말이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후문 맞은편에는 작고 소담한 분식집이 있었다. 가게 이름은 꾸러기 분식. 꾸러기스러운 초딩들이 등하교 시간에 꼭 들리는 곳이었다. 꾸러기 분식은 떡볶이, 튀김, 떡꼬치, 피카츄 등 여느 초딩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메뉴는 다 파는 만능 분식이었다. 나는 그 집 떡볶이를 자주 사 먹었다. 아주 자주.
동그랗고 길쭉한 밀떡에 너무 묽지 않은 점도의 국물. 적절한 달콤함과 매콤함이 조화롭게 종이컵에 한가득 담겨있는 이 매력적인 떡볶이는 단돈 500원. 당시 나의 확실한 행복은 주머니 속 500원의 유무에 따라 달라졌다. 하굣길에 컵떡볶이를 손에 들고 이쑤시개로 하나씩 찍어 먹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세상 즐거움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여덟 개. 그 집은 꼭 여덟 개의 떡이 들어있었다. 어묵은 크기에 따라 두 개인 날도, 세 개인 날도 있었는데 떡만큼은 꼭 여덟 개였다. 내가 기억하는 주인아주머니의 인상은 좀 시크한 편이셨다. 컵떡볶이를 주문하면 무심한 표정으로 주걱으로 툭, 툭. 넣어주시는데 종이컵을 받으면 항상 8개의 떡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 정확함에 감탄하며 매번 하나씩 세어가며 먹었다. 오늘은 혹시 하나 더 들어있지 않은 지, 혹시 하나 덜 넣어주진 않은 지. 그때마다 틀림없이 떡볶이 맛이 한번, 아주머니의 정교함에 한 번 더 반했다.
아무튼 여기까지가 내가 좋아했던 떡볶이에 관한 이야기다. 8개의 떡과 두세 개의 어묵을 다 먹고 이쑤시개로 종이컵 안쪽 면에 묻은 소스를 쓱쓱 모아서 먹었던 그때 그 시절의 떡볶이 이야기.
얼마 전 꾸러기 분식이 있던 자리를 산책하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미용실이 들어서 있었다. 졸업한 지 20년도 더 지난 일이긴 하지만 추억의 분식집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매콤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가게를 접는다. 내가 기억하는 시크한 중년의 사장님도 지금은 노년의 모습에 더 가까울 것이다. 어느 이유에서든 사장님이 더 행복할 선택을 했길 바란다. 그 시절의 나의 확실한 행복을 주었던 곳이었으니까.
언젠가 차릴 나만의 가게도 방문하는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공간이길 바란다. 그 세월이 쌓인다면 추억을 줄 수 있는 공간도 되겠지. 나는 아쉬운 발걸음을 옮기며 응원의 마음을 보내기로 했다.
오늘은 떡볶이를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