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가면 맛있는 기름이 있다
"우리 집보다 맛있는 기름은 이 세상에 없을 거예요. 그 정도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일해요. 정성스럽게 해요. 기름을 한 번 짜면 오래 먹잖아요. 어떤 분들은 1년 드시는 분도 있어요. 그니까 잘 볶아야 해요. 정성 들여서 불 조절을 하면서 뜸을 들여가면서 해야 맛있어요." _ 기억창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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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름은 왠지 마트보다 시장에서 사고 싶다. 재사용한 소주병이나 아무런 로고가 없는 빈병에 가득 담겨 표면에 약간의 미끌거림을 느끼면서 사야 '아, 당분간 식탁의 고소함은 걱정 없겠구나.'싶다.
오늘은 익산에서 50년 넘게 운영한 '시장기름집'에 다녀왔다. 50년이라니. 내 나이의 배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한 자리에 있는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사장님의 숙련됨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시장기름집은 중앙시장 2층에 위치해 있다.
전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직도 전통 방법을 고수해 기름을 만든다. 1947년 중앙시장이 개설된 시기부터 지금의 자리를 지켰다. 현재는 1958년생 임경숙 씨가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60대 중반이다. 원래는 언니인 임경애 씨가 운영했다고 한다. 30살 터울의 언니가 연로하자 동생인 경숙 씨가 물려받았다. 호랑이 선생님인 언니에게 기름 짜는 방법을 배우는 데만 해도 5년이 걸렸다.
기름 맛을 좌지우지하는 건 깨를 얼마나 잘 볶는가이다. 뜸 들여가며 깨를 이리저리 손으로 직접 볶는 기술이 쉽지 않다고 한다. 너무 설익어서도 타서도 안 된다. 고소함을 간직하도록 적당한 온도를 골고루 전달해줘야 한다. 경숙 씨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틀림없이 일하는 방법을 익혔다.
한 자리에서 50년간 장사를 하다 보니 이제는 단골들과 가족처럼 지낼 정도로 가깝게 지낸다고 한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기름을 짜러 온 할머니와 익숙하게 담소를 나눴다. 경숙 씨에게서 이야기꾼의 향기가 물씬 났다. 나도 자리를 잡고 옆에서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다. 그랬더니 기다려 보라며 쑥 선식을 건넸다.
"아니, 이렇게 귀한 걸 주셔도 되나요!"
"귀한 거니까 주지."
귀한 마음을 감사하게 받았다. 현재 참기름을 볶는 방식은 대부분 전기로 사용한다. 근데 여기 시장기름집은 석유로 깨를 볶아낸다. 옛날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기계에서 맛을 내는 것이 아니라 볶는 데서 맛을 낸다고 이야기한다. 여름엔 무척 덥고 힘들긴 하지만 맛을 위해 고집하고 있다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미숫가루 선식을 구매했다. 10가지 곡류가 섞여서 몸에 좋다고 하여 홀랑 넘어가버렸다. 경숙 씨는 영업도 잘한다. 그게 50년 넘게 가게를 유지해 온 비결인지는 모르겠다. 그 50년의 세월이 너무 대단해서 자랑 좀 해달라고 했더니 수줍게 책과 상패를 건네주었다. 익산시장이 준 인증 패는 혹여나 먼지 쌓일까 비닐봉지에 꽁꽁 묶어놓은 모습이 기억난다.
"우리 집보다 맛있는 기름은 이 세상에 없을 거예요. 그 정도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일해요. 정성스럽게 해요."
자부심 가득한 사장님의 목소리에 빈손으로 가기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참기름도 구매했다. 가격은 수입산은 10,000원. 국내산은 30,000원. 깨를 가져가면 짜 놓은 가격보다 조금 더 저렴하다고 한다. 당분간 식탁의 고소함은 시장기름집의 참기름으로 만사 오케이다.
"30년 된 손님도 있어요 40년, 50년, 되신 분도 있어요. 40대 딸하고 75살 되신 엄마가 같이 왔어요. 우스갯소리 '엄마 없어도 나는 여기 와서 기름 짤 거야.' 이러시더라고요. 건강하고 삶을 기름지게 하는 게 기름이죠.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손님들이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_기억창고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