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림 Apr 29. 2022

지역의 흥과 멋을 책임지던 곳

중앙동 새 서울 악기점

시대별로 놀이 문화가 달랐다. 과거 익산에서 흥이 넘치던 곳은 어디였을까? 조용히 내적 댄스를 추며 흥을 즐기던 사람들은 음악사를 찾았다. 레코드판,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집에서 음악 감상을 즐기는 부류였다.


악기 중에서는 기타가 인기가 많았다. 활동적인 사람들은 탁구장을 찾았다. 탁구장은 돈을 내고 탁구를 치는 곳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내기 시합을 하며 놀던 곳이다.  뒤에는 롤러스케이트가 나오면서 롤러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저녁 시간에는 호프집에 모여 생맥주를 마시며 현실을 비판하기도 했고 미래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 흥겨운 놀이터가 익산 중앙동 곳곳에 남아 있다. 이러한 곳들은 과거 일정 기간 동안 왕성했던 놀이 문화를 전해   있는 의미 있는 공간들이다.


새서울악기점. 현재까지 정취가 잘 보존되고 있다.



새서울악기점은 명보제과가 있던  옆에서 시작해서 50년이 되었다.  장소로 이사해서 영업을  시간만 하더라도 40년이다. 레코드판과 악기 판매를 주로 했다. 물론  뒤로는 카세트테이프도 함께 팔았다.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주로 듣던 시절에는 남인수, 고복수, 이난영과 같은 유명한 가수가 부른 보래가 꾸준히 판매되었꼬, 그다음 세대를 이끌었던 이미자, 남진, 나훈아, 하춘화, 조용필이 부른 노래와 송창식, 김정호, 어니언스와 같은 통기타 가수들이 부른 노래도 인기가 많았다.



악기 중에는 고객들이 주로 찾는 것은 기타였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통기타를 연주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한창 판매가 잘 될 때는 트럭 한 대 분인 400대를 한 달이면 다 팔았었다.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통기타가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익산은 철도 교통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중간 도매시장이 발달했다. 새서울악기점 역시 음반 도매상으로 운영했었다. 이곳에서는 전라북도 전역과 충청도 일부를 담당했다. 관리하는 매장이 400여 대였다.


당시 익산 시내에만 40개 매장이 있을 정도로 음악사(악기점)가 많았었다. 지금은 화려했던 시절의 명성을 뒤로하고 고객들에게 추억을 팔고 있다. 카세트테이프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 일부러 먼 곳에서 구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이다.


새서울악기점의 에피소드는 중에서 단연 으뜸은 데이트 추억이 아닐까. 청소년들에게는 데이트가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새서울악기점은 최적의 데이트 장소였다. 이곳에서 만나 짝을 이룬 사람도  많을 것이다.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는 새서울악기점은 추억을 공유하는 장소가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40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는 몸과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