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가는 길-6
어느새 안도대교의 당당한 기세가 달려온다.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마중 나온 저 푸른 조망을 그냥 스칠 내가 아니었다. 나는 한사코 안도대교를 걸어서 건너는 것을 좋아했다. 내친김에 소리도 등대에 들러, 그 옛날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었다는 선배 언니의 들꽃 무리를 자세히 볼 수 있다면, 나는 또 얼마나 환해질 수 있을까. 아무리 내 열망이 상승 곡선을 그려도, 오늘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서고지로 가는 길을 미루고 두몽안에 접어들고서야 앞서간 우리 일행이 보인다. 미끼를 구하지 못한 이들에게 기어이 다가가 희생양이 되어 준다는 강구도, 저 식당 주변 어딘가에 어슬렁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희생에 감동한 바다들이 살가운 것들에게 현혹당하지 않고도, 의젓하게 잡혀 와 우리의 미각을 출렁이게 할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이 미리 닿지 않으면, 그 안의 상황을 예감하지 못한다. 강풍을 동반한 폭풍주의보로 많은 손님이 취소된 바람에, 준비한 음식과 주변의 민박이 한가하다는 소식이 그랬다. 섬으로 들어오지 못했다면 돌산이나 여수에 머물지 못하고, 더 깊숙한 내륙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걱정은 바로 이곳에서부터 시작된 도미노였다.
진정한 향수는 언제나 음식이 우선순위였다. 어떻게 해서라도 내놓는 금오열도 삼종 세트(군봇, 배말, 거북손)가 감동인 것은, 고향의 마음이 덤으로 따라오기 때문이었다. 고향을 비워 둔 사이 아득했던 고향 소식이 식당 주인으로부터 투명해지고, 할 일이 많은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여전히 일꾼은 건장하지만, 겨우내 비어 있던 고향집은 예측 불허다. 짧은 한때 고양이의 서식지로 전락한 후로, 엄마의 손때 묻은 많은 세간살이들은 버려졌고, 그 후로 고향을 찾을 때면 침구를 포함한 이삿짐과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해 질 녘 뱃고동 소리가 장엄하게 울리면, 어김없이 여객선 깃발이 펄럭이던 그 아릿한 마당널을 휘감고 직선 길에 접어드니, 백파의 호위를 받고 있던 알마도가 성큼 다리에 올라 들뜬 볼륨을 높인다.
"오~호~
간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너희들이 오느라 그랬구나!
그 험악한 파도의 비위를 어떻게 맞춘 거지?"
오래전
집으로 돌아가는 여객선에서
서고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떤 날은 노을 한 잔에
온 섬이 주홍으로 번져 있고
어떤 날은 칡잎이 산을 향해
허연 속살을 들키고 있었습니다.
층층이 다랑논 위로 넝쿨진 초록이
웃서고지 오르는 길을 지울 때면
등고선 보리밭들은 누렇게 채색되고
바다가 그리운 점박이 나리꽃은
오랜 날 절벽 끝에 걸터앉아
서녘 바다를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다랑논 물줄기는
제 몸을 들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영하의 입김이 나부낄 때마다
물방울은 다랑논에 기대어
굳었다가 흘렀다가를 거듭하며
부푼 채로 봄을 기다려야 할 테니까요.
그 옛날 서고지의 한 귀퉁이는
남포 소리에 산산이 허물어져
방파제 아래 깊숙이 수장되었고
그 푸르던 유년의 바닷가는
회색 길에 묻혀 빈 추억으로 떠도는데
숱한 사연으로 다져진 오솔길마저
새로운 걸음으로 끊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망산은
철렁철렁 내려앉은 마음을 보일 수 없어
지나는 해무를 붙잡고는 고개를 숙이는데
그 섬은 내가 무심히 닿을 때도
버선발로 마중하신 우리 어머니 마냥
몇 날 며칠 그렁그렁하십니다.
*알마도/금오열도에 속해있는 무인도
*안도,서고지, /금오열도에 속해있는 작은 섬,
*두몽안, 마당널/지명
*강구/바닷가에 흔히 보이는 벌레
단편으로 읽으셔도 무리 없게 설정하였지만
프롤로그를 참고하시면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