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들

고향으로 가는 길-5

by 애린 이종희

어느덧 중학교 모교가 보인다.

내가 저 학교마저 상실했다면, 나는 어느 행성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아갔을까? 무엇이 되어 예측 불허의 앞날을 개척하며 오늘을 잃어가고 있었을까? 진한 향수로 뒤척이던 밤, 우연히 길을 내어 도착한 고향홈 대화방에서 첫 인연이 된 한 선배님(고향홈을 만든 분)의 부탁으로 고향홈(금오열도)을 맡게 되었다. 빈 공간을 채우느라 써 온 글들이 25년이 다 되어가도록 발아 중이지만, 그곳에 뿌리지 않았더라면 산산이 흩어지거나 애초에 꺼내 보지도 못했을 문장들이었다.


하늘이 너무 맑아 뱃길이 끊긴 것을 수긍할 수 없었던 학창 시절, 미포를 스쳐 심포로 방향을 틀고서야 내 마음도 고삐를 풀고 유순해졌다. 얼기설기 쌓아 올린 돌담을 비집고 청보리가 초록의 풋내라도 풍기는 날이면, 속도를 늦추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고개는 언제나 가까운 거리에서 느닷없이 다가왔다. 심포에서 장지로 넘어가는 그 길이 그랬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거두고 앞만 보고 걸어갔다. 내 심폐 기능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친구들은 기어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처녀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나무가 아무리 뾰족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한들, 몸의 한계에 지배당한 내 정신 속으로 침범할 리 만무했다.


그렇게 아찔하고 암담한 시간에 마모된 감각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침착하고 의연하다고 저마다 놀라워했으나, 바닥의 깊이를 알지 못해 넝쿨지던 두려움도,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추락하고서야 모든 건 무채색으로 지워졌다. 그때는 과거의 바탕색을 비켜가며 다시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것을, 나는 별다른 동요 없이 시행하느라 부당한 것에 그리 오래 마음을 담그지 않았다. 밑바닥 거친 숨비소리를 토해 내고 일어나 앞이 보일 때는 언제나 고갯마루였다. 그곳에 있던 절망의 진통제는 저 멀리 눈부시게 펼쳐진 내 고향 마을이었다. 누군가 그때의 안도(安堵)를 알아보고 기억한다면 좋으련만, 아무도 내가 본 그날의 풍경을 풀어내지 않았다.


아직도 자세히 보고 싶은 길은 많은데, 앞서간 차량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봤자 지금 이 섬은 고립이고, 우리는 고립무원을 충분히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




내 친구들 (2001.11)


초등학교 졸업 무렵이었습니다.

집에서 양념 한 가지씩 들고 나온 내 친구들은 친구 혜님이네 집에 모였습니다. 겨울의 끝자락, 섬마을 양지밭에는 시금치가 듬성듬성 뒹굴어 주었고, 우린 누구네 밭인지도 모르면서 그걸 캐다가 데치고 밥을 지어 비빔밥을 해 먹기로 했거든요..


밥이 되어 가는 동안 친구네 아랫목에 놓인 화투를 발견하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등 맞기 내기를 했지요. 한참 그 분위기에 빠져 있는데, 유난히 엄하신 친구 아버지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일곱 명의 친구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지만, 몹시 화가 나신 친구 아버지는 소문만큼 무서운 체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친구들이 윗마을 숲 속에 살고 있는 친구 민옥이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일입니다. 민옥이는 설탕 넣은 동동주를 주전자에 담아 와서는 친구들에게 한 잔씩 따라 주었고, 우린 달콤한 맛에 단숨에 마시고 말았지요. 밤이 깊어 그 숲을 빠져나올 때서야 난생처음 숲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춤을 춘다는 사실을 알았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간 큰 아이들이었습니다.


바닷바람에 손등이 트고 볼이 트여도 빈 논두렁을 활개 치며 놀 때가 있었지요. 친구들과 놀던 아름드리 동백나무 밑에는 탐스러운 동백꽃이 떨어져 주었고, 우린 그 꽃을 주워 짚에 꿰어 목걸이와 화관을 만들어 놀기도 했습니다. 긴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저마다 바구니를 옆에 끼고 쑥과 나물을 찾아 들판을 헤집고 다녔지요. 그래서 그때가 그리운 저는 지금도 봄이 오면 쑥을 캐고 싶습니다.


어느덧 중학생이 되어 배를 타고 큰 섬으로 통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객선은 주의보가 내리면 어김없이 발이 묶이곤 했지요. 그럴 때면 우리는 여러 마을과 세찬 비바람에 고개조차 들 수 없는 고갯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특히나 어린 날, 제 약한 심장은 기억하기 힘들 만큼 바닥으로 추락하곤 했지요.


마침내 그 섬의 끝자락에 도착해서야 우리 섬까지 건널 수 있는 나룻배에 간신히 몸을 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산길을 걸어야 했던 우리들은, 어스름이 짙게 깔릴 무렵에서야 동네 불빛을 발견하곤 코끝이 시큰해지곤 했지요. 친구와 그 고개를 넘던 어느 날인가는 바다가 모두 땅이라면 무엇을 할지 상상하며 부푼 황홀감에 젖기도 하였습니다.


서쪽을 향해 있는 우리 동네는 맑은 날이면 어김없이 아름다운 노을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달 밝은 한가위 날엔 아주 큰 구렁이가 살았다는 방파제에 둘러앉아 달빛 어린 밤바다를 바라보며 밤늦도록 조잘대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의 내 친구들은 어느 곳에서 살아갈까요? 내 기억에 오래도록 남겨진 고향에서의 추억은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대로입니다......




단편으로 읽으셔도 무리 없게 설정하였지만

프롤로그를 참고하시면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