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가는 길-4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이런 날엔, 벌건 잉걸불에 아버지가 갓 잡아 오신 고등어를 구워 먹을 수 있다면, 궂은 날씨가 꼭 할머니 같다며 연신 조잘대는 내 동생의 입꼬리는 광대에 걸릴 수도 있을 텐데... 우리 할머니는 함께한 세월 속에 데워 놓은 온기에 가로막혀, 끝내 편애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셨다.
노 젓는 작은 목선이 서고지항을 차지하고 있을 때, 우리 아버지는 야심 차게 기관실이 달린 근사한 배를 만드셨다. 하지만 3년의 흉어로 빚만 지고 고향을 떠나실 때, 오빠와 나는 할머니 댁에 맡겨졌다. 엄마 없는 빈 그늘을 할머니는 다 채워 줄 수 없었지만, 내가 엄마 따라 떠날 때 할머니는 몹시도 서운해하셨다. 2년간 일궈 온 할머니와 손주와의 정은 할머니에게만 유독 진해서, 한 번도 같이 살아 보지 못해 정을 쌓지 못한 동생과의 차별을 자주 들키셨다.
해무가 망산 자락에 걸려 꼼짝 못 하는 것을 보면서 할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고, 오늘도 뜨거워서 머리가 다 벗어지겠네.”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할머니는 어김없이 산밭으로 오르시며 저에게 신신당부하셨습니다.
“다섯 번 저어라!”
새랍 옆 돌담 그림자가 까만 선에 닿으면 보리를 젓는 거라고, 할머니는 부지깽이로 여러 개의 줄을 규칙적으로 그어 놓으셨습니다. 햇볕이 너무 강해서 금방 다 마를 것 같은데도 할머니는 멍석 위에 가지런히 누워 있는 보리를 다섯 번이나 저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기로 유명했습니다.
햇볕에 말라 가는 보리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은 너무 따분한 일이라, 금방 고개가 앞으로 기울었다가 뒤로 젖히기를 반복합니다. 하필 작은방 마루는 매끄럽고 윤이 나는, 농도 짙은 시멘트 바닥이어서 꾸벅꾸벅 졸기엔 너무 안성맞춤입니다. 졸다가 화들짝 놀라 신발도 안 신고 새랍으로 달려가 보면, 할머니가 부지깽이로 그어 놓은 선까지 돌담 그림자가 오려면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사르륵사르륵, 내 작은 손이 휘젓기엔 멍석 위 보리는 너무 많고, 또 잘 저어지지도 않았습니다. 한두 번 빼먹어도 할머니는 잘 모르실 게 뻔하다고 생각하며 세 번만 저었습니다. 하지만 산밭에서 돌아오신 할머니는 제가 몇 번 저었는지 귀신같이 알아차리시고, 목소리가 커지셨습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습니다.
마당 위에 보리가 사라질 때에도 멍석은 마당 한쪽에 누워 있다가, 마을 사람들이 오시거나 친척들이 방문하면 요긴한 자리가 되어 주곤 했습니다. 한 번은 그늘진 멍석 한쪽 귀퉁이에서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꿀꺽꿀꺽 무언가 마시는 소리가 고소하게 들렸습니다. 눈을 감고도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내가 말린 보리로 미숫가루를 만들어 오겠다며 방앗간에 가신 할머니가 돌아오신 것입니다.
어렴풋이 저를 깨우라는 소리가 들리고, 좀 더 자게 하라는 말씀도 들렸지만 저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미숫가루 냄새 때문에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는,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들킬까 봐 당황하며 눈을 더 찔끔 감았습니다. 그냥 일어나면 될 것을, 어린 저에게 엄마의 빈자리는 너무 짙은 브라운 멍석이었습니다.
집 안에서나 집 밖에서나, 어떤 부당한 일이 있어도 제대로 일러바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마을과 집안의 공기 흐름으로 스스로 터득했습니다. 이런 저를 두고 저보다 두 살이나 많은 오빠는 가끔 화가 나서 제 엉덩이를 걷어차고 밖으로 뛰어나가 밤이 다 되어서야 돌아오곤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른들도, 우리 오빠도 참 바보 같습니다. 어린 날엔 잘 모르고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제 눈에 알쏭달쏭 박힌 사람들 마음이 너무 귀여워서 자꾸만 돌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아신다면 어떤 마음일까요.
하지만 그리움으로 직조된 할머니 집 황토 마당 멍석이 저를 자주 그곳으로 이끌어 다정한 품을 내어 줍니다. 제 설운 기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문득문득 일깨워 주렸는가 봅니다.
*새랍/대문(금오열도 방언) *서고지항/금오열도에 속해있는 섬 이름
단편으로 읽으셔도 무리 없게 설정하였지만
프롤로그를 참고하시면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