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갇혀

고향으로 가는 길-3

by 애린 이종희

강풍의 장난에 압축된 펜션 현관문을 빠져나온 우리는 한참 만에 화태대교를 건너 철선이 온다는 부두에 도착했다. 간간이 휘몰아치는 돌풍이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데, 벌써 여러 대의 차량이 선착장에 대기하고 있었다. ‘거친 백파에 정복당한 저 바다를 과연 우리는 건널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불안을 더욱 부추겼다.


마침내 도착한 철선의 직원에게 파도의 심장이 건재한지 여쭈었다. 대답은 “차부터 실으세요.”였다. 괜히 느긋하게 단잠에 빠져 있는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간밤에 포항에서 상경한 아들의 안부를 물었다.


선원의 고함 소리에 맞춰 승선하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오빠였다. 일상적인 농담이 오갔지만, 바다를 건너는 내내 두려운 마음이 사라진 건 사실이었다. 오빠도 무서워서 전화를 걸었을 것이라고 우리 자매는 까르르 웃었다.


그 사이 철선 위로 여천항 대합실 옥상이 드러났다. 잠시 끌고 온 불안이 반가움 속에 사라졌다. 10여 분 만에 건너고 보니, 객선을 타고 통학하던 학창 시절 파도밭이 생각났다. 배가 바다 위로 솟구쳤다가 수면 아래로 곤두박질치기를 반복할 때마다, 오장육부가 우두둑 무너지던 순간을 내 몸은 기억하고 있다.


그 옛날 화태대교가 연결되었더라면, 아니, 방금 우리를 데려다준 거대한 철선이 버티고 있었더라면, 금오수도를 건너다 말고 서럽게 돌아서는 발길은 없었을 것이다. 지척에 고향을 두고 떠나야 했던 그날의 흥건한 마음은 모를 것이다.


수평선을 박차고 오른 아침노을이 들풀을 가만가만 더듬을 때, 여천 선착장을 뒤로하고 금오도 해안도로를 달린 적이 있다. 간밤에 내려앉은 빗방울이 풀잎에 맺혀, 일제히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하던 이 길을 스칠 때, 아이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라며 환호했고 나는 저절로 차오르는 황홀경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는 이제 막 꿈을 향해 뻗어 가는 초록의 상처가 난무한다. 바람에 속수무책인 채로 온 관절을 풀어헤친 나무를 보고도, 먹구름은 물동이를 느닷없이 쏟아부었다가 달아나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태풍 ‘매미’ 때만 할까? 바닷물을 안개 지느러미로 팔랑대게 하고는 급하게 뭍으로 내쫓던 그 침략의 소행을.



"그 섬에 갇혀" 중에서 (태풍 매미를 겪고 2003.10)


태풍 전야, 바다는 늘 그랬듯 비단을 깔아 놓은 듯 단잠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깊은 밤까지 요란했던 천둥소리를 들으며 언제 잠이 들었는지, 깨어보니 긴박한 엔진 소리를 품으며 꼬리에 꼬리를 문 동네 배들이 태풍 피난처인 안도 두몽안으로 내달리고 있다. 남은 한 척의 배가 위태로워 보이는 선착장에 바람의 전주는 점점 웅장했고, 그 진동에 온 바다는 살기 가득한 짐승의 심장처럼 포악스럽게 꿈틀거리고 있다. 마을회관에는 발그스름한 촛불이 켜졌고, 가끔 그곳에서 튀어나온 손전등 불빛이 가두리양식장에 꽂히곤 했다. 문을 열면 짠 물 입자들이 온 섬을 유령처럼 떠돌고, 가끔 땅이 내려앉은 듯한 둔탁한 울림이 들렸다. 통신도, 전기도 끊긴 암흑의 밤. 희미하게 깜박이던 등대만이 의식 잃은 바다 위에 떠 있을 뿐, 그야말로 우리는 자연의 거대함에 내몰린 채 표류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렇게 날뛰던 비바람이 숨을 고르는 사이, 선박 엔진 소리가 어둠을 타고 요란하게 부서졌다. 잠시 후 마을회관에서 돌아오신 외삼촌께서 앞집 배가 가두리양식장을 들러 보기 위해 그 바다에 떴다고 일러주셨다. 그리고 이대로 지나간다면 가두리양식장은 무사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내 우리는 술렁였고, 그러는 사이 더욱 막강해진 폭풍우가 그 바다와 섬을 덮쳤다. 그런데도 여전한 엔진 소리에 놀라 창문을 열고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서둘러 손전등을 비춰 보니, 예상대로 배는 거의 땅과 수평에 맞닿아 있었다. 산산이 풀어헤쳐진 상태로 간신히 이어져있는 가두리양식장은 요동치는 배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 위에 연기처럼 흩날리는 바닷물. 나는 마치 공포 영화 한복판에 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배가 왜 바다에 떠 있는지 이해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배는 점점 다가오는 가두리양식장이 뭍으로 올라와 부서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연속 후진 기어를 넣은 채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 배와 선주가 가두리양식장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무용지물인 선박을 고쳐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태풍이 방향을 바꿀 때, 압력을 못 이겨 나가떨어진 고향 집 뒷문 유리창으로 무수한 비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불 홑청을 겹겹이 두르고 임시방편으로 문짝을 다는 사이, 둔탁한 울림이 또다시 이어졌다. 태풍이 불 때마다 무너질까 걱정이던 집 뒤란 바위언덕 위에 뿌리내린 나무들이 찢겨 떨어진 모양이라고 엄마께 전해 듣고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겁나고 무서운 건 사실이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바람은 완연히 멀어진 느낌이다. 그때까지도 앞집 배가 불 밝히던 선착장에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 사이로 달빛은 점점 환해졌다.


간밤 일이 꿈인 듯, 청명한 하늘에 순백의 뭉게구름은 참으로 오랜만의 자유처럼 평화롭기 그지없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숨겨 버리고 싶은 주검의 잔해 위에 가을 햇살은 무수히 쏟아져 은빛을 이루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평선은 점점 평정을 찾아갔지만, 섬과 사람들은 엄청난 재난 앞에 넋을 잃었는지 까맣게 멈추었다. 남새밭 깻잎도, 울창하게 번지던 환삼덩굴도 태풍이 품어내던 바닷물에 까맣게 타버렸다.


녹섬 앞에 묶여 있던 양식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방파제가 제 안방인 양 산산이 부서져 드러누운 가두리 양식장엔 물고기가 없다. 바다에는 찢겨 나간 양식장 스티로폼 띠가 고기비늘처럼 반짝이고, 다양한 어구들의 잔해가 꿈처럼 황홀하게 출렁거린다.


*안도 두몽안/금오열도에 위치한 섬 지명

*금오수도/화태도와 금오도 사이 바닷길


단편으로 읽으셔도 무리 없게 설정하였지만

프롤로그를 참고하시면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