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 내리는 밤

DEC 05. 2015

by AERIN

「오늘도 내리는 비.. 」

어렸을 땐 눈 오는 게 참 좋았다.

소리 없이 내려 소복이 쌓이는 눈.
쌓인 후 차가 사라진 조용한 거리가 좋았고,
조용한 길 한복판에 발도장 찍는 게 좋았고,
그 위를 걸으며 나는 뽀드득 소리가 내가 만드는 노래 같아서 좋았다.

눈이 많이 온 날이면 신난 강아지처럼 설레고 가득가득 많이, 수북이 쌓이길 바랬었다.

아마도 눈 내린 날 좋은 추억이 많아서 일게다.

수능을 마치고 첫 데이트를 하러 가던 날,
폭설로 버스만 겨우 다니던 왕복 4차선 도로 한 복판을 신나게 뛰어다녔던 기억.
식구들 모두 잊어버린 내 생일날,
학교 친구들이 등교하는 나를 기다렸다가 눈이 담긴 바케스를 뒤집어 씌워준 재미난 기억도 있다.

ㅡ 이게 왜 재밌냐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가 눈사람이 된 것 같아서 재밌었다우..

특히 차가 없어 조용한 도로 가운데를 걸을 땐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웃음 섞인 이야기만 들리는 게 마치 세상을 향해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 오는 날의 기억은.. 조금 씁쓸했다.

바람까지 심하게 부는 날엔 팔에 빗방울이 닿는 게 싫었고 슬며시 옷이 젖는 것도 싫었다.
뽀송하고 부드러운.. 따땃한 느낌을 바랬고 좋아해서였지만..
솔직히, 일을 하시던 엄마가 데리러 오지 못하는 걸 알았으니까.. 갑자기 비가 내리면 온 몸이 괜스레 아픈 느낌이었다.
그러서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엔 아파서 이불 속에 꼭 박혀있길 바랬었더랬다..

ㅡ 몰래 만화책을 보면 더 좋고~!

비가.. 싫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곁에 누군가와 함께 곱씹게 되는 추억도 생겨서 일수도,
아님 혼자서 비 오는 날 외로움을 즐길 수 있는 나름의 내공이 생겨서일까..

이젠 싫지 않다.

차 안에서 듣게 되는 빗소리가 따닥따닥 장작불 타는 소리와 비슷하다는 것도 알았고
내 사람과 같이 우산을 쓰고 비를 맞는 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그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비에 젖어도 따뜻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래도 아직은..
비가 오는 날엔 양 팔의 살갗이 살포시 아려온다.

시간을 걸어갈수록
내가 뭔가 만들어가는 것보다
가만히..
남들이 만들어가는 걸 바라보는 것도,
그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도 조금씩 알아가나 보다..

아직도 조금씩 아려오는 건,
익숙지 않은 탓이겠지..
끝까지 나에게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지만
조금씩 젖어들 듯,
이 아려오는 기분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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