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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tuti Mar 03. 2020

9화:미국의 선거와 민주시민

자발적, 능동적으로 행동해야만 민주시민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나라

내일, 3월 3일은 내가 살고 있는 테네시 주의 '슈퍼 화요일'이다. 미국의 선거 제도는 한국과 꽤 많이 다른데 한국에서 십 대에 미국에 왔기에 한 번도 한국에서는 직접 선거에 참여해 보지 않은 나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군대를 재대하고 왔으나 술과 록밴드에 빠져 정치엔 관심이 없던 젊은 시절을 보내다 온 남편 모두에게 미국의 선거제도는 몇십 년이 지나도 마주칠 때마다 생소하다. 오늘 난 보통 한국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Electoral College 같은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의 특이성 보다 자잘한 선거분위기와 방법의 차이에 대해 말해 보고 싶다.


먼저 한국의 선거분위기와 비교해 본다면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그렇고 작년 여름방학에 한국에 나가서 목격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및 교육감, 시장 선거를 바라봤을 때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시장, 역전, 큰 교차로마다 현수막이 휘날리고 선거 당일 바로 전날 자정까지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확성기로 떠들며 선거유세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미국에선 그런 것이 전혀 없다. 뉴스로 보는 각 정당의 후보들이 나와 지역사회를 돌아다닌다거나 코커스 같은 모습을 보는 것은 그 정당이나 그 후보를 지지하는 지지자들이 자신의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 그 자리를 찾아 이루어진 그림일 뿐이다. 한국에선 후보자의 얼굴과 기호, 각 정당의 이름이 들어간 포스트가 벽면에 1번 후보부터 많게는 10번 후보까지 쫙 늘어선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만 그런 것조차도 미국에선 볼 수 없다. 선거 전 선거관리공단에서 보내주는 우편물 안에 당신의 투표장소와 시간은 몇 날 며칠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어디에서 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각 후보들의 팸플릿과 정보가 가득 든 우편을 선거 전에 기대했다면 큰 오산이다. 후보들의 정보가 팸플릿이나 엽서 형태의 우편으로 전달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그만한 돈을 들여 프린트물을 찍어내고 선거운동을 하는 몇몇 후보들에 한해서다. 가끔은 집으로 낮에 선거운동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일일이 현관문을 두드리며 팜플렛을 나눠주고 혹시 지지하는 정당이 있는지 물어보거나 내 잔디밭에 자신의 후보자 광고판을 꽃을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혹시 강력히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있다면 그렇게 내 정치색을 내 잔디밭을 광고판 삼아 동네에 전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시민권자가 선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하는데 우리 남편과 같이 성인이 되어 시민권을 받은 이민자들은 시민권 선서를 하는 날  유권자 등록 접수를 함께 할 수 있다. 운전면허증이 있는 사람들은 운전면허증을 만들 때 함께 유권자 등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고등학생 때 처음 운전면허증을 따므로 아직 나이가 되지 않아 18세가 되면 다시 유권자 등록을 위해 DMV를 찾아가거나 인터넷에서 프린트해서 지역 도서관에 제출하거나 우편으로 해야 한다.  한 주에서 타주로 이사를 가거나 같은 주 안에서도 다른 선거구로 이사를 가게 되면 유권자 등록을 다시 해야 한다. 어차피 타주로 이사 가면 운전면허증을 다시 만들어야 하니 보통은 DMV를 통해 유권자 등록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같은 주 안에서 이사를 갈 경우 주소변경이 된 운전면허증을 새로 발급받는 데에도 돈이 들기에 면허증 유효 기간이 남아 있을 경우엔 새로 바꾸지 않고 예전 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럴경우 정보가 업데이트 되어있지 않다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유권자 등록이 안 되어있을 확률이 높다.   정보가 업데이트된 운전면허증이나 미국 여권과 같은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다면 인터넷에서 바로 질문지 작성을 통해 등록을 할 수 있다. 다만 연세가 높으신 어르신들을 위해 아직도 미국은 종이 서류가 관공서에 배치되어 있다. (이런 컴퓨터화에 있어서는 한국에 비해 엄청 천천히 사회가 바뀌는 것을 사회 다방면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보통 2-3주 내로 집으로 유권자 등록 카드가 오는데 자신이 어느 선거구에 소속이 돼 있고 투표장소는 어디인지 정보가 쓰여있다. 처음 선거를 하는 날엔 유권자 등록카드와 신분증을 가지고 투표장소를 찾아가야 한다. 유권자 등록은 보통 선거일 30일 전까지 끝내야 한다. 한국처럼 전국이 같은 날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주의 투표일이 다르기 때문에 미리 사전에 자신이 속한 주의 선거일을 알아놓고 있어야 한다. 한국의 선거관리공단에 해당하는 https://www.eac.gov/에 가면 각 주 별로 언제 어떤 선거가 있고 유권자 등록 마감일은 언제인지 정보가 나와있다.


그렇다면 미국 시민들을 어떻게 선거에 관한 정보를 알 수 있을까?

일단 뉴스를 통해 접할 수는 있겠으나 메이저 뉴스를 본다면 지역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슈퍼 화요일에 단지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 대표 자리르 선출하는 것도 함께 하기에 CNN, NBC, Fox, NPR, 같은 메이저 뉴스만 보고 듣는다면 지역구의 인사가 누가 나오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지역구의 후보를 알기 위해서는 지역 로컬 신문이나 뉴스를 꼭 읽고 봐야 한다. 한국 경주로 친다면 KBS 보다 TBC 대구경북방송 뉴스를 꼭 봐야지만 내 삶에 인접한 선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선거일이 다가오면 하루에 한두 명씩 시간을 정해 약 일주일 간 라디오, 방송, 뉴스에 메이저 후보에 대한 인터뷰 시간을 할애하기도 하고 각 언론사의 웹사이트에 가면 지나간 방송분을 다시 확인할 수도 있다.  사실 미국의 큰 도시가 아닌 자잘한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지역뉴스를 보면 세상과 동떨어진 뉴스, 어떤 학교 선생님의 미담이랄까 농사짓는 사람들이 날씨가 좋아져서 며칠 날 무슨 씨를 뿌리기 좋다던가, 어느 마을에서 잔치(페스티벌)를 한다던가, 어느 고등학교 운동팀이 몇 대 몇으로 이겼느니, 어디 도로에 교통사고가 났으니 돌아가라던가 하는 동네 뉴스 같은 것들이 판을 친다. 그런 걸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시간을 들여 왜 이런 뉴스를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로컬 뉴스를 보지 않으면 환율, 코로나, 유가, 전쟁, 무역전쟁 등에 관한 정보는 얻더라도 당장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정보를 놓칠 수가 있다. 미국이 땅덩어리가 워낙 커서 큰 사회의 변화보단 자잘한 삶의 정보들이 내 삶에 더 빠르게 와 닿고 영향을 주는 사회이기에 이것이 중요하고 또 가능하다.


내가 살고 있는 낙스빌 지역은 낙스 카운티 웹사이트에 가면 https://knoxcounty.org/election/ 란에서 선거에 관한 정보를 볼 수 있다. 내일 선거와 같이 각 당의 대통령 후보를 뽑는 선거에선 자신이 공화당을 선택할 것인지 민주당을 선택할 것인지 미리 마음을 결정하고 그 당의 후보 안에서만 뽑을 수 있다. 자신의 정치 색을 알아보려면 아래 사이트와 같은 곳에서 미리 퀴즈를 통해 내가 어느 당의 생각과 일치하거나 비슷한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https://www.isidewith.com/political-quiz 

https://www.people-press.org/quiz/political-typology/

Political Typology Quiz

각 지역의 선거 정보 사이트에 가면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Sample ballot이라는 선거 투표용지를 미리 보고 학습해서 가야 하는 것이다. 어느 자리를 뽑는 선거인지 그 후보는 누구누구가 나오는지가 샘플 투표용지 안에 기록되어 있다.


후보자가 누가 나왔는지 알았다면 구글 등 검색엔진을 통해 그들의 과거를 캐는 작업이 남았다. 이전부터 정치를 했던 사람들이라면 구글링으로 정보가 나오거나 이번 선거를 위해 홍보용 웹싸이트를 하나 만들어 놓은 후보자들도 있으나 무소속으로 출마했을 경우엔 이런 정보를 찾는 것 조차도 어려울 수 있다. 요즘엔 페이스북 페이지를 홍보용으로 새로 만들어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가 많다. 하지만 정말 성의 없는 후보자의 경우 인터넷에서도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찾기 힘든 경우도 많다.


대통령, 주지사, 상 하원 의원, 시장, 카운티 시장들처럼 그들이 행사하는 역할을 잘 알 수 있는 선거라면 쉽겠지만 미국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 마다 선거로 뽑는 위치가 각각 다 다르다. 어쩐 지방정부에선 임명을 하는 것이 다른 지방정부에선 선거를 통해 선출이 된다. 그래서 각자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지방정부가 어떤 식으로 우리의 대표를 선택하는지를 아는 것이 가장 첫 번째 유권자로서의 역할이다. 지역에 따라선 카운티 커미셔너(미국 일부 지역엔 몇 명의 카운티 커미셔너들이 지방 행정부의 역할을 나눠한다) , 퍼블릭 디펜더(국선 변호인), 판사(형사, 민사, 청소년, 가정, 행정법원), 카운티 법무장관, 카운티 Law 법 디렉터(카운티 행정부가 법을 잘 지키는지 관리하고 감시하는 역할), 어세서 어브 프라펄티(부동산 가격 감정원), 카운티 Clerk서기(카운티의 인구 파악을 위해 출생, 사망, 결혼 증명서, 자동차 등록증, 면허증 등등 서류 일체를 담당함), 레지스터 어브 디드(등기부 등록 관리인), 시의회장, 시의회원, 경찰청장, 세무서장, 교육감 및 각 학군별 교육장 같은 사람들도 지역에 따라서는 시민의 손으로 직접 선출이 되기에  그들이 지방 정부에서 맡은 일이 무엇인지, 각 후보들의 정치적 색깔은 어떤지, 후보들의 이전 경력이 이 자리에서 일하기에 알맞은 사람인지, 청렴성이나 일의 정확성은 어떤지(예전에 비리를 저지르거나 연루된 것 또는 행정상의 큰 실수를 한 것은 없는지) 잘 알아보고 선택을 해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낙스 카운티에선 카운티 안에 소규모 행정구역(한국으로 치면 동, 학군에 해당하는)이 나누어져 있지만 시의회원이나 교육장 선발에 있어서는 다른 행정구역의 의원이나 학군의 교육장 선발에도 내 표가 주어진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의 발전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주위 다른 지역의 후보자가 있는지, 다른 지역구 후보자의 주장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이권에도 합당한 주장을 펼치는지 판단하여 표를 주어 카운티 내의 주위 타 지역의 선출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의 선거일은 법정 공휴일이 아니다. 투표장소로 대부분의 공립학교들이 이용되기에 교육공무원 및 공무원들은 쉬지만 일반 회사원들은 똑같이 회사에 나간다. 대신 3주 전부터 약 열흘간 몇 군대 거점 투표소를 열어 사전투표를 할 수 있다. 거점 투표소들은 회사원들을 위해 토요일에도 여는 곳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걸어서 갈 수 있는 한국의 투표장소에 비해 미국은 웬만큼 큰 도시가 아니라면 자신의 차를 타고 운전을 해서 투표장으로 향해야 하니 노인, 장애인, 저소득층의 선거 참여비율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 많은 투표장소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노인, 장애인의 경우 자신의 투표장소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면 자신이 스스로 선거일 일주일 전까지 선거관리공단에 그 사실을 알려야만 선거 당일에는 선거관리공단에서 마련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장소로 변경하여 선거를 할 수 있다. 미국은 이렇게 가만히 있어 입으로 떠먹여 주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스스로 행동하고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해야만 얻을 수 있는 그런 민주주의로 발전해 왔다.


미국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선거제도를 만들어 놨을까? 그 이유를 알려면 처음 미국을 새운 건국의 아버지들의 뜻을 바라 볼 필요가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미국 민주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이 일반 대중이 아닌 교육받은 엘리트이길 바랬다. 예전 흑인 참정권을 막으며 백인에게는 하지도 않는 문법, 수학시험을 친다던가 하여 유권자 등록을 막은 것도 이런 건국이념을 잘못 이해하며 백인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 미국의 엘리트 민주주의는 1950년대 C. Wright Mills의 '엘리트의 힘' 이란 책에서 증명되었다. 미국 사회는 아직도 이런 엘리트 민주주의를 통해 이끌어 가고 있다. 다만 예전엔 돈과 명예가 있는 사람들이 엘리트였다면 지금은 거기에 학력과 아이디어, 혁신이 더해졌다고 할 수 있다. 가문이 엘리트를 단정 시키던 시절에서 교육과 졸업장, 연봉이 엘리트를 구분하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이런 접근성이 떨어지고 복잡한 선거제도 덕분에 미국은 아직도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에겐 아주 힘들게 다가온다. 미국에서 민주시민으로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하고 능동적으로 삶의 주체가 되어 관리들을 감시하고 내 주장을 펼치고 관철시켜야 한다. 그리고 내 아이가 이런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선 내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선거제도와 지방정부, 주 정부, 연방정부의 역할을 알려주고 그것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가르쳐야 한다. 특히 지방정부와 지역 선거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기 때문에 더 부모의 깨어있음과 가정 안에서의 교육이 중요하다. 끌려가는가 끌고 가는가 하는 힘 싸움에서 가만히 있으면 끌려가게 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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