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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tuti Mar 06. 2020

10화:누가 인종차별을 가하는가?

인종차별 가해자로 키우지 않은 교육방법

미국에 살다 보면 미국 사람들과 사회는 한국에 비해 인종차별 또는 차별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인종차별이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인간 이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란 인식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반면 또 공공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미국의 인종차별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공포가 만연하는 지금 미국 대도시 곧곧에서 동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 소식을 들으면 눈에 보이지 않고 숨어있는 그들의 모습에 코로나만큼이나 무섭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내가 올려놓은 글을 읽어 본 독자라면 내 글 속에서도 Socioeconomic  속의 인종차별을 느꼈을 것이다. 피부 색깔 때문이 아닌 경제 사회적 지위에 따른 인종차별.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속으로 내면 하고 무시하는 인종차별. 나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미국의 그런 모습을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내 관심사와 내 주관적인 관점이 전혀 배재된 그런 글을 쓰기 힘듦을 느낀다. 이런 내 안에 존재하는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는 차별의 색안경이 쒸어져 있다면 그것 또한 끊임없이 내가 도려내야 할 모습 일 것이다. 


난 참 운이 좋은 게 미국 생활을 22년째 하면서도 인종차별을 크게 느껴 본 적이 없다. 한국 사람이 많은 곳에 살았을 때도 한국사람이 거의 없는 곳에 살았을 때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인종 차별을 느껴본 적이 없다. 물론 내 캐릭터 자체가 자아심이 아주 강한 단단한 사람이라 남이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꿋꿋이 내 갈길을 가는 캐릭터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슷하게 20년을 미국에서 살아온 남편은 학교에서 회사에서 사회에서 인종차별을 많이 느꼈다고 답한다. 그래서 남편은 우리 아이들에게 인종차별은 존재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드러나고 겉으로 표현하지 않다가 우리가 약할 때 그 약점을 찾아 공격해 온다는 것을 강조하며 아이들이 그것에 대비해 단단히 커 나가길 바란다. 그래서 가끔 나의 교육 철학과는 상응하지 않은 이유로 공부와 운동을 강조한다. 인종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남들보다 아주 뛰어나 그들 위에 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눈에 띄게 공부를 잘하고 똑똑해서 범접하지 못하게 하거나 체력적으로 뛰어나 신체적으로 위압을 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학교에선 몸싸움으로 겨뤄보기 전 운동실력이 그 신체적 체력적 위력을 나타내기에 운동에서 지면 안된다. 특히 남자아이라면. 이것이 남편의 논리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어떤 사람이 인종차별 또는 차별을 당하는가? 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며칠 전 김경일 교수의 강연을 들은 뒤 누가 인종차별을 당하는가? 하는 피해자 중심에서 누가 인종차별을 가하는가? 하는  가해자가 누군지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느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EBsnbjSNQc



강연에서 김경일 교수는 지혜로운 사람들, 그 상위 0.1%의 비밀엔 반에 꼴찌라 할지라도 무시하지 않고 그들이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해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그들의 입장에서 설명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내가 만난 사람들과 남편이 만난 사람들이 차이가 바로 거기에 답이 있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의 대부분은 학교 학생, 선생님, 교수님, 대학을 졸업한 엔지니어들, 교회 모임 참가자, 지역 봉사활동 참가자 및 운영자, 병원에서 만난 의사와 간호사들, 아이의 교육과 관련돼서 만난 음악가, 교육관계자, 학교 학부모회 회원들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했고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았고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 남들에게 뭔가를 더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이 배운 사람이면 배운 사람일수록 영어 발음으로 상대방을 무시하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질문을 할 때 쉬운 영어로 잘 풀어 설명해 주고 일부는 내가 영어 발음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걸 알고는 내가 영어를 못 알아들을까 봐 때론 너무 천천히 말을 해서 내가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러면 남부 사투리 쓰지 말고 다 알아들으니 빨리 말하라고 한국사람들은 빨리빨리를 좋아한다고 오히려 내가 그들을 놀리기도 한다. 


남편은 뉴욕 할렘에서 학교를 나왔고 남미 흑인 동네에서 가게 아르바이트를 했고 공장에서 고졸 노동자들을 관리하며 함께 일을 한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이라 함은 흑인들에게는 피부색으로 그들이 범죄를 넘겨짚음이겠고 남미 출신 이민자들에겐 그들의 피부색으로 그들의 경제적 상황을 넘겨짚음이겠으나 우리 같은 동양인들에겐 우리의 영어실력 또는 발음으로 우리의 지적능력을 넘겨짚음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때론 피부색으로 우리의 지적능력 특히 수학 과학 실력을 타고나는 걸로 넘겨짚어 수학에 부진한 학생에게 실망하거나 우리의 노력을 저평가하여 난감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사장님 나빠요~'를 외쳤던 개그맨 정철규 씨도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을 대함에 있어 도와주고 싶어도 힘든 부분이 기본적이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 힘들다고 한다. 그렇듯 미국인들도 영어가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거나  내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것에 큰 에너지가 들고 그런 것을 귀찮아하는 사람들은 남을 무시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미국에 사는 한국사람에게 있어선 영어만 잘해도 인종차별을 안 겪을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어릴 적 원불교 신자인 엄마를 따라 원불교 교당을 따라다닐 때 배운 일상수행의 요법 안에는 '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을 잘 배우는 사람으로 돌리자.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을 잘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리자.'라는 말이 나온다.

엄마가 돼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린아이에게서도 배울 것이 무궁무진하다.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어른으로 자라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김경일 교수가 말한 실리콘 벨리의 전문가들이 유치원 초 중 고등학교에 스스로 찾아가 그들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설명하는 것도 바로 그렇게 설명을 함으로 자신이 배워가고 얻어가는 것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대를 바라보면 무시할 수 있는 상대가 아무도 없다. 


미국에선 인종, 종교, 성별, 교육, 경제적 능력 등등 수많은 사회를 갈라놓는 차별 중에서 가장 끝에 있는 것을 LGBT에 대한 차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 도시가 발달함에 있어서 LGBT에 대한 포용력이 높은 도시면 도시일수록 그 사회 전체에 그들에 대한 포용력뿐만 아니라 다른 새로운 아이디어들에 대한 포용력 또한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그 생각의 차이로 인해 도시가 커져가고 경제성장을 이룬다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https://williamsinstitute.law.ucla.edu/wp-content/uploads/GDP-and-LGBT-Inclusion-April-2018.pdf 

상대방을 포용해 주고 이해하려면 먼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에 대해 배우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 글에서 미국에서 LGBT를 포용함으로 경제적으로 성장한 큰 도시들은 그들의 삶을 연구하고 배움으로 그들이 필요로 하는 비즈니스를 만들어 냈고 또 함께 큰 성장을 누리는 기회를 획득했다고 한다.


작년 여름, 고향 경주를 방문했을 때 경주는 내가 알고 있던 예전의 경주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시내의 한쪽 길은 외국인들을 위한 길이 되어 마치 뉴욕 차이나 타운에서 미국 안에서 한자로 된 간판만이 가득하듯 러시아어, 베트남어, 중국어, 캄보디아어 등등 읽을 수 없는 말로 된 간판과 광고판이 가득 차 있었다. 큰 마트보다는 재래시장에서 그 모습은 더 실감을 할 수 있었는 것이 젊은 한국 사람들이 떠나버린 도시에서 재래시장 상인들은 이제 외국인 이주자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고 살아야 하기에 이것저것 외국어로 된 식재료의 이름을 펼쳐놓고 장사하고 있었다. 한 식육점엔 아예 러시아에서 온 아주마가 고기를 부위별로 썰어주었다. 그 아줌마를 고용함으로 그 식육점은 다른 식육점에 비해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사람들 뿐만 아니라 한국어보다 영어가 수월한 외국인 고객을 더 많이 유치할 수 있었다. 


내 눈에 비친 경주의 모습은 지난 5천 년 역사를 넘어서 지금 이 땅에 스스로 찾아온 그 사람들을 바탕으로 세계로 뻗어나갈 준비가 된 다이내믹하고 에너지가 응축된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이 든 우리 부모님 세대 사람들의 입에선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 동네가 회게망측하게 변했다. 하며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학교에선 선생님들이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고 기본적인 읽기 쓰기가 안 되는 학생들이 반이라 수업 진행이 너무 힘들다며 불만이었다.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반말로 툭툭 던지는 모습이 여전했다. 새파랗게 젊은 한국 직원이 같이 일하는 조선족 아주머니 동료에게 반말로 타박을 주는 모습은 고객으로서 바라봐도 민망하고 안타까웠다. 외국어로 전화통화를 하며 지나가면 못 알아듣는 말로 시끄럽게 *부린다며 욕을 해 댔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고인물이 썩어가고 있는 악취를 풍겼다. 


내가 한국에 있었던 1990년대 그 시절에도 시 외곽지역 반에 한둘은 외국 이주 여성과 결혼해 출산한 아이가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럼 그 20년 동안 한국 교육은 이 사회의 변화에 도대체 뭘 하며 기다렸단 말인가? 경주가 관광지라 일생 한번 잠시 놀러 온 사람들처럼 그들을 대했던 건 아녔을까? 빠른 시기 안에 교원대에선 더 많은 수의 한국어 교육 강사를 배출 해 한국어에 서툰 학생이 있는 학교라면 각 학교마다 한국어 교육 강사/ 교사를 배치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주민들이 한국사회에 정착하고 살아갈 때, 그들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교육받고 자라날 때 자신이 한국인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외국에서 왔으나 나는 한국말을 쓰는 한국인이라 한국사회는 나를 포용해 주고, 나는 한국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있으며, 나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함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한국 사회를 내 나라, 내가 살아갈 곳으로 여겨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그들은 우리 속에 들어와 있고 비싼 어학연수 비용, 비행기 값을 들이지 않아도 그들의 삶과 문화, 생각을 우리가 노력만 하면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을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해 배우려고 하는 노력, 상대방의 수준에서 가르치려고 하는 노력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상위 0.1%의 기적이 되고 세계속의 한국을 상기시키고 경제적 문화적 윤리적으로 우수한 선진국인 대한민국을 만들고, 우리 사회를 인종차별의 가해자가 되지 않게 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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