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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tuti Feb 13. 2020

7화:내가 홈스쿨링을 하게 된 이유

미국 학원에 발을 들여놓다

클린턴에서 낙스빌로 이사오면서 들어가게 된 집 근처 Mother's day out엔 학기 중간이라 만 3세반은 정원이다 차 있었고 만 4세 반엔 자리가 있었다. 12월 말 생인 꾸미는 4세반 아이들과 6개월 차이가 있었지만 색깔, 모양, 숫자, 알파벳등 4세 아이가 알아야 하는 기본적인 것을 다 알고 있었기에 원장선생님의 배려로 4세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다음 해 8월엔 친구들과 함께 만 5세 반에 들어갔다. 5세반은 Kindergarten readiness 에 중점을 두어 교육을 한다. 미국 공교육은 만 6세 유치원 과정에서 시작하는데 유치원에가서 수업을 잘 따라 갈 수 있게 그 준비를 시켜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5월에 5세반이 거의 끝날 무렵 일어났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유치원에 입학 할 준비를 하면서 어느 학교를 가는지 이야기 하는데 꾸미는 다시 5세반을 한번 더 다닐지 말지를 고민해야 되는 것이었다. 친구엄마의 권유로 교육청에 혹시 조기 입학이 가능한지 물어보기로 했다. 5세반 선생님과 원장선생님께서도 꾸미의 학습실력과 사회성, 발육상태 등을 고려했을 때 유치원 입학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의견을 보여 주셨다. 내가 사는 낙스 카운티에는 입학을 허기하는 생일 날짜가 있지만 그 날자보다 6개월 이전에 태어난 아이들에 한해서 시험과 평가를 통해 조기입학을 허가해 준다고 교육청 웹싸이트에 써 있었다. 


약속을 정하고 선생님들과 만나 테스트가 이루어졌다. 

테스트는 아이가 학업에 관한 테스트를 보는 부분과 부모가 아이의 사회성이나 성향, 성격에 대해 답하는 질문지가 있었다. 교육청에서 나오신 학교 심리학자와 영재교육 담당 선생님이 시험과 문답에 참여하셨다. 

결과는 불합격이였다.

그 이유가 읽기와 수학의 경우 91점과 95점을 받았지만 나머지 학업부분에선 기준점 이하인 45점 정도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 기준점이라는 것이 1학년 말 수준의 학업부분을 모두 90점 이상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학년 수준을 뛰어 넘는 실력이어야 월반을 하거나 조기 입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많이 답을 내지 못했던 부분을 보니 사회(지리, 역사, 사회)와 과학부분이였다. 과학부분 문제를 보니 양서류, 포유류, 어류, 조류등 동물을 구분하는 것도 포함 되 있었고 사회부분에선 테네시 주의 지역 역사 및 지리도 포함 되 있었다.  아니, 2학년에 상위10%로 들어갈 수준은 되어야 유치원을 입학을 허가해 준다면 그 정도 실력이 되는 아이들은 도데체 학교에가서 뭘 배운단 말인가?


테스트 이후 꾸미와 나의 유치원 홈스쿨링이 시작되었다. 이미 다 아는 걸 Mother's day out을 다니며 일년을 더 보내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어짜피 일년 후엔 공교육을 시작 할 거니 그 동안 학교에서는 배우기 힘든 다른 부분을 더 보충 해 주기로 했다. 

예전에 집에서 늘 하던 읽기와 수학에 더해 동물원 과학수업을 일주일에 한 번 가기로 했다. 낙스빌 한글학교를 통한 한글 수업도 했다. 집에서 피아노 치는 시간을 매일매일  정기적으로 집어 넣고 근처 무용학원에도 등록을 했다. 매주 한편 시를 읽고 그것을 미술로 표현 해 보는 시간도 가졌고 매주 지역 도서관에서 열리는 preschool storytime 에도 빠짐없이 참가했다. 


유치원 가기 전 홈스쿨링 중 가장 즐거웠던 수업은 동물원 수업이였다. 지역 동물원에는 연회비를 내고 가족회원권을 가져야만 홈스쿨링 수업에 자녀를 등록할 수 있었다. 한시간 반 가량 진행되는 수업에선 분기별로 주제에 맞춰 선생님이 비디오 클립이나 슬라이드를 통해 설명을 해 주시고 실험을 하고 동물원을 돌아다니며 야외 수업을 하기도 하고 수업의 제일 마지막은 항상 그 수업의 주제에 맞는 동물을 한마리씩 데리고 와서 보여주고 만질 수 있게 해 주었다. 작용과 반작용을 이야기 하면서 토끼를 대려와 토끼의 뒷다리의 힘으로 땅을 밀어내는 걸 설명해 주기도 하고, 마찰을 배운 날엔 뱀을 데리고 와서 마찰을 이용해 움직이는 뱀을 설명해 주기도 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수업이 끝난 후 나들이 식으로 동물원 이곳 저곳을 마음껏 구경했다. 


지역 도서관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프리스쿨 스토리 타임에는 도서관 사서가 인형극 톤으로 매주 책을 한권씩 읽어주고, 음악을 들으며 율동과 노래를 따라하고 악기를 두드리며 마더구스 프로그램을 간단히 진행한다. 그리고 그날 책 주제에 맞는 만들기를 하나 하고 마친다. 나는 그 시간을 이용 해 그 주에 아이와 같이 읽을 책과 DVD를 골라 집에 돌아왔다. 매주 아이가 만든 만들기가 하나씩 집에 쌓일 때 마다 아이의 마음 속엔 독서의 즐거움도 함께 쌓였다. 


프리스쿨 1년 동안 동화나 소설도 읽고 설명문도 읽고 많은 책을 읽었지만 가장 내가 집중한 건 동시를 많이 읽혀주는 것이었다. 계절과 절기에 맞춰, 매주 주제에 맞춰 읽을 시를 정하고 함께 읽으면서 시에서 언어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꼈다. 단어의 배열에 따른 소리와 느낌의 변화에 집중하고 그 느낌을 자유롭게 여러 매게를 통해 미술작품으로 표현해 보는 시간은 아이의 상상력을 열어주는 시간이였다. 


한국에선 학원이라 하면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매일 하루 한시간씩 가지만 미국에선 그렇지 않다. 

보통 음악 레슨을 받는다면 일주일에 한번, 무용이나 스포츠도 일주일에 한 두번을 가는게 고작이다.

나머지 날들은 그냥 집에서 자기가 알아서 해야 되는 것이다. 거기다 악기 레슨이라 함은 레슨비가 1분에 1불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미국 선생님들에게 한국 피아노 학원은 작은 방에다 피아노를 한대 씩 집어넣고 선생님이 방방마다 돌아가시면서 봐 주시고 우리는 그 스튜디오를 하루에 한시간씩 빌려서 연습하는 식으로 쓰는 건데 일주일에 5번을 가고 한달에 15만원 낸다고, 그래서 집에 피아노가 없는 사람들도 피아노를 배울 수 있다고 말하면 그 훌륭한 시스템에 다들 깜짝 놀란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런 저임금으로 하루 10시간 이상씩 소음속에 노동할 수 없을거라 말한다. 


한국에선 아주 어린 나이에 음악수업을 시작하지만 미국에선 적어도 알파벳을 알고 15분에서 30분 정도 집중을 할 수 있어야 음악수업을 시작한다. 음이름을 도레미 대신 알파벳으로 읽으니 알파벳은 필수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악기 교육의 시기를 유치원에 들어가서 글자를 배운 이후인 만 6세 이후로 잡는다. 그리고 한국에선 거의 모두가 음악교육은 피아노로 시작을 하지만 미국에선 각자 자기가 하고싶고 관심있는 악기로 시작한다. 그래서 솔직히 미국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합주부에서 드럼을 치는 아이들이 오선보에 있는 악보를 전혀 못읽는 거나 바이올린을 하는 아이들은 낮은음자리는 읽지 못하고 첼로를 하는 아이들은 높은음자리를 읽지 못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난 한국나이로 5살에 처음 피아노 학원을 다녔는데 음악적으로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경우야 그렇게 어릴 때 시키더라도 좋아하고 잘 따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엔 3학년쯤 되어 기술적인 테크닉이 계속 들어가는 과정에서 악보를 읽는 것 마져 힘들어서 그만 두었던 기억이있다. 오히려 늦게 피아노를 배운 친구들은 머리가 커서 그런지 금세금세 진도가 나간 것 같은데 나는 진도도 느리게 나가다가 결국 남들이 피아노 시작하던 3학년 쯤 나는 피아노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서 내 피아노 실력은 체르니 30번이 전부다. 꾸미의 피아노 수업은 그런 내 실력으로 자신이 피아노를 하던 아니면 다른 악기를 하던 제대로 된 선생님을 만나기 전 까지 자기가 원하는 악기를 정하기 전 까지 기본적인 리듬과 악보읽기 음악이론을 알려주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다. 비록 내가 공대를 나오긴 했지만 대학에서 교양과목으로 들은 화성악과 작곡수업 I,II에서 둘 다 A를 받지 않았지 않은가. 4살 꼬맹이에게 음악을 가르쳐 줄 실력은 된다고 자부했다. 


지금 시간이 지나서 보면 우리 엄마가 나에게 피아노 학원을 보내며 투자하신 돈이 그때 돈으로 학원비 한달 만 7천원에서 시작해 나중에 3학년이 되었을 땐 3만 원이 될때 까지 평균내서 2만 5천원이라 하더라도 5년이면 150만원을 쓰셨는데 꾸미와 기쁨이 둘을 그렇게 내 실력으로 시작 해 3학년까지 가르쳤으니 엄마가 나에게 투자하신 피아노 학원비는 뽑아 낸 샘이다. 


솔직히 무용학원도 내가 어릴 적 무용학원을 다녔기에 선택한 것이였다. 아빠는 3학년이 되자 공부를 해야 한다며 무용을 그만두게 하셨다. 하지만 내 맘속엔 무용을 계속 하고 싶은 욕구가 아직까지도 못다이룬 꿈 처럼 맘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정말 아이를 통해 나의 대리만족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다른 옵션보다 무용을 선택하는 것이 쉬웠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무용학원은 시에서 운영하는 레크레이션 센터의 장소를 빌려서 하는 무용학원이라 가격이 일단 다른 곳에 비해 엄청나게 쌌다. 학원이라고는 하지만 비영리 단체로 등록이 되 있어서 대표님은 세금해택을 받는 듯 보였다. 그래서 수업료도 한달에 35불. 수업 참관은 한 학기 마지막 날 크리스마스 파티와 1년 마지막 날 발표회에서만 이루어졌다. 미국 무용학원에선 대부분 1년 수업의 마지막 날 공연 장소를 빌려 그 동안 배웠던 작품을 발표한다. 그 때 무대에 서기 위해 메이크업도 하고 머리도 하고 공연복도 따로 장만해서 입는다. 보통 메이크업이나 머리는 엄마들이나 선생님이 해 주시지만 공연복은 그날 하루를 위해 수십불을 내서 사 입어야 한다. 그리고 발표회 하는 장소를 대여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자신의 아이가 발표하는 발표회의 티켓을 그것을 보러오는 부모와 가족 친지들이 직접 사서 티켓값을 지불하고 입장해야 한다. 티켓 비용은 1인당 10불에서 35불 정도이다. 또한 이런 발표회를 하기 위해 티켓 이외에도 사진 촬영, 꽃다발 판매, 특정 음식점 이용, 쿠폰 판매와 같은 펀드레이징을 통해 비용을 충당하는데 그 부분에 있어 학부모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 아이들은 미국 아이들에 비해 동작도 잘 따라하고 순서도 잘 기억하는 것 같다. 왠만한 유치원 발표회 비디오를 봐도 아이들이 거의 틀리는 것 하나 없이 5-10분 짜리 공연을 줄 까지 잘 맞춰가며 노래부르고 춤 추는 것이 보이는데 미국 아이들의 발표회는 한국 아이들에 비해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간격도 안맞고, 박자도 안맞고, 방향도 틀리고,  아이들이 춤을 외우지도 못했고, 앞에서 하는 선생님에게만 시선이 고정이 되어 있었다. 결국 이 무용학원은 나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고 1년 후 다른 비싼 무용학원으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지역한인회에서 운영하는 한글학교 역시 일주일에 한번 금요일 저녁에 만나 3시간 공부를 한다. 여기서도 부모님의 역학은 중요한데 돈만 내고 애들을 맡기는게 아니라 한학기에 한번 정도는 간식담당을 맡아야 한다.그 주의 간식담당 부모는 한글학교에서 간식비를 받아 과일을 사고 핏자 가게에서 핏자를 주문해 간식시간에 맞춰 들고 와 배달을 해 주어야 한다. 한글학교는 실력보다 나이대로 구분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들도 거의 자원봉사 하시는 부모님이거나 학생이라 전문적인 한글교육을 예상했다면 낭패다. 윗 학년들은 2교시에 한국 문화 선택 수업이 있었지만 꾸미가 있는 가장 어린반에는 선택 수업 없이 1교시는 한글 수업 간식 후 2교시는 미술활동이 있었다. 어린반에 선택수업이 없는 이유는 어린 아이들을 관리할 만큼 인력이 없어서란다. 한글학교 교재는 낙후 되어 있었고 외국에 있는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목적이 아닌 교재라 현재 많이 접하는 단어가 아닌 그 주에 쌍디귿이 들어간다면 '사또', ㅝ 같은 이중모음이 들어간 날엔 '원님'이라는 단어를 배워오기도 했다. 아이들은  단어의 뜻은 모른체 그저 글자만 배워 오는 것이었다. 숙제는 또 얼마나 많은지. 작은 손과 팔로 다 체우기엔 너무나 힘들어보일 정도로 많은 숙제를 매주 내 주셨다. 현실은 2000년대인데 한글학교의 교육 시스템은 예전 1980년대에 멈춰있는 듯 보였다. 그 중 일부는 영어보다 한국말을 훨씬 잘 하는데도 부모가 한국사람과의 친목을 필요로 한글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집들도 여럿 있었다. 주위의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중국어학교와 비교해 보아도 교제에서 부터 시스템까지 열악함이 느껴졌다. 중국은 중국 정부에서 자신의 문화와 언어를 알리기 위해서 2세 3세 들의 중국어 교육뿐만 아니라 중국인이 살고 있는 지역의 외국인들에게도 공자어학당 같은 단체를 세워 어학 박사학위를 딴 중국어 교사를 해외로 파견시켜 교육을 한다. 그 안에서 자신의 문화와 역사를 멎들어지게 포장하여 알리는 일이 언어교육과 함께 이루어 진다. 중국의 명절 문화, 경극, 음식, 종이공예 등등 중국문화공부가 중국어 수업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교제 또한 중국 정부에서 참관하여 무료로 배포하고 중국 어학연수를 유치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국 정부가 한인 2세나 한인 지역사회인들을 위해 한국을 홍보하는데 얼마나 소극적인지 알 수 있다. 삼성, LG의  전자제품, BTS나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통해서 민간과 기업입장에서 한국을 홍보하고 있지만 해외 동포 입장에서 보면 정부차원에서 국비를 이용한 한국문화의 전파나 홍보에도 힘써 주었음 하는 바램도 있다. 

한글 학교에서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한글 학교 또한 일년 후 그만 보내기로 했다. 다행히 나의 새언니가 한국에서 한국어학당 선생님으로 외국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기에 언니에게 교제를 부탁해 집에서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게 되었다. 


집에서 아이를 키울려면 엄마 발품이 많이 필요하고 정보력도 많이 필요하다. 맘에 딱 드는 좋은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이미 등록은 해 놨으니 마지못해 돈이 아까워 계속 보내게 되는 일도 허다하다. 이런 것 들도 다 세상을 살아가는 좋은 경험이라 믿는다. 실수를 통한 성장. 나도 아이도 그렇게 하루하루 성장하며 프리스쿨 한 해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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