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여기 있는데도 다시 오고 싶은 곳

발리의 예술마을 우붓

by aestas

싱가포르에 있을 때 그곳은 마치 보물섬 같다고 생각했는데, 길리 섬으로 오니까 이곳은 그냥 천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길에서 보낸 지 20일이 흘렀고 여행이라기보단 일상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발리는 나에게 아직 여기 있는데도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다. 좀 더 머물고 싶었지만 발리의 예술마을 우붓의 매력이 궁금해 4일째 되는 날 섬을 나왔다.


즈음 하하가 처음으로 집에는 언제 가냐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자 나도 어쩐지 집이 그리워 눈물이 핑 돌았다. 하하가 50일쯤 됐을 때 산후조리하던 엄마집에서 나와 우리의 보금자리로 왔다. 그날의 장면과 기분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내 가슴속에 박혀있다.

아직 세 시간에 한 번은 젖을 먹어야 하는 조그마한 아기를 홀로 뒷좌석 카시트에 앉히고 운전을 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 시간 거리가 천리길 같았고 길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 선택이 맞았을까? 잘 해낼 수 있을까? 뒤에서 작은 새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는 저 어린 영혼의 안전과 생명이 온전히 나 하나에게 달려있단 생각이 들자 갑자기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산후 우울증이란 게 이런 거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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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은 기대했던 대로 멋진 곳이었다. 발리식의 멋진 왕궁과 사원도 있었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탁 트여서 하하가 아주 저만치 혼자 앞서가도 걱정되지 않을 트레킹 코스도 있었다. 그리고 알록달록 공예품과 그림을 늘어놓고 파는 우붓시장과 골목들도 참 좋았다. 어느 저녁엔 숙소 천장에 도마뱀이 나타났을 때, 하하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자는 동안 도마뱀이 가버릴까 봐 잠을 안 자겠다고 버티다 십 분 만에 잠들기도 했다.

모든 게 우붓스러운 곳, 그냥 이곳은 우붓이었다. 이곳에서 아침 들판을 걸으며 땀을 빼고 돌아와 명상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요가수련을 한 다음 해 질 녘에는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대부분 할 수 없는 일들이었고 이중 당장 실현할 수 있는 것 하나 들판을 걷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현지인에게 부탁해 오토바이 뒷좌석에 아이랑 나란히 타고 Bukit Campuhan으로 갔다. Bukit이 언덕이라는 뜻이니 짬뿌한 언덕이다. 우붓왕궁에서 십 분 거리라 걸어가도 되지만, 이미 숙소에서 왕궁까지 걸었고 왕궁을 둘러본 이후라, 트레킹을 위해 하하가 체력보충을 할 수 있도록 입구까지는 엔진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짬뿌한 릿지 워크 입구도 사원으로 시작한다.

그 청년은 돌아가지 않고 우리와 같이 트레킹을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끝나면 다시 데려다주겠다고. 불편하여 거절했지만, 멀찍이 따라오며 우리를 사진에 담아 주었다. 26일간의 여행 중 몇 안 되는 둘이 같이 찍은 사진이다.

짐을 줄이고 줄이면서도 삼각대를 끝내 빼놓지 못한 건 다시없을 이 여행에서의 우리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는데, 삼각대고 나발이고 이 아이는 도통 같은 자세로 1초도 있지를 못했기 때문에 무용지물이었다. 바로 돌아가지 않은 이 청년의 속내가 무엇이었든, 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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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지식 음식을 먹고 최대한 우붓 속에 어울리려고 했다. 숙소 주변 우붓도서관 옆에 운동장 같은 공터가 있었는데, 동네 아이들이 모여 편을 나눠 공차기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하하는 냉큼 거기로 달려가 그 속에 끼었다. 하하는 여행 내내 어디서든 아이들이 모여있으면 무리 속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28개월 아이가 초등생 아이들 무리에 섞여 있는데 공에 발 한 번 대보기도 어려울 일. 그래도 같이 놀자고 하하에게 공을 토스해 주던 착한 우붓 아이들이었는데, 계속 헛발질하며 흐름을 깨는 것에 지쳤는지 하하를 패싱 하기 시작했다. 더 놔두면 안 될 거 같아, 거부하며 우는 아이를 안고 운동장을 빠져나왔다.


원래 계획이라면 누사두아로 가야 했지만 나도 하하도 이곳이 잘 맞았기 때문에, 숙소를 연장하고 우붓에 좀 더 있다가 한국행 비행기를 탈 꾸따로 넘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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