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일간의 배낭여행 3 : 카파도키아
네브세르 공항은 많이 작았다. 미리 그렇다고 알고 갔기 때문에 여행 다니며 잘 하지 않는 것 중 하나인 숙소픽업을 미리 신청해 두었다. 사람 사는 곳이니 대중교통이 아예 없기야 할까 싶지만, 정보가 정말 없었고 도착 예정시간이 16시 05분인데 자칫 어영부영하다 하하의 밥때를 놓치면 두 번째 여행지의 시작이 꼬이게 될 것 같았다. 인당 10유로. 숙소에서 운영하는 건 아니고 몇 군데를 묶어서 도는 승합차다.
처음 출발 전 숙소를 예약할 때는 괴레메가 머릿속에 잘 안 그려져서 숙소위치가 적당할까, 새벽에 벌룬은 잘 보일까 걱정했는데, 괴레메 마을 자체가 작아서 어디를 예약하든 결과적으로 비슷하겠다. 어쩌다 보니 완전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을 예약했는데, 하하를 생각하면 나은 선택이었다. 숙소 앞 길가에서 고양이와 혼자 자유롭게 놀도록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숙소에서 기르는 Nitro라는 강아지도 아이에겐 좋은 친구였다.
카파도키아는 벌룬체험과 이른바 레드, 그린, 블루투어가 유명한 곳이다. 유명하다기 보단 이 네 가지 중 무엇이든 선택하는 것이 이곳으로 오는 여행자들의 통과의례 같았다. 우리는 이틀을 묵을 예정이어서, 하루는 차를 빌려 투어 코스를 따라 몇 군데를 돌고 둘째 날에는 트레킹을 해보기로 했다.
나는 늘 "이렇게 하려는데 어때?" "3km는 되는데 너 걸을 수 있겠어?" 이런 식으로 묻고, 하하는 늘 "당연하죠. 제가 엄마보다 체력이 좋잖아요. 걱~정을 마시라고요." 이렇게 덮어놓고 다 할 수 있다고 답한다. 벌룬은 하하에게 물어봐서 될 문제가 아니어서 안 타기로 혼자 결정했다. 창공에 떠있는 열기구 위에서 하하가 무섭다고 내려가고 싶다고 하면, 작은 바구니에 빼곡한 사람들 틈에 끼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물론 주머니 사정 때문이기도 했다. 하늘을 나는 건 내 버킷리스트는 아니어서 그 큰 돈을 여기 쓰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새벽 5시 반에 옥상으로 가서 따듯한 차를 마시며 부풀어 오르다가 마침내 날아오르는 벌룬과 주황빛으로 시작해 밝아오는 하늘을 보았다. 아직 시차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하하도 새벽에 쉽게 눈을 떴다. 그렇게 5시 반에 시작한 우리 모자의 하루는 조식 시작타임 8시 반까지도 세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하하는 눈을 떴는데 방에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아이가 아니다. 카파도키아 열기구 덕에 하하의 부산스러운 하루가 정말 일찍이도 시작됐다. 리셉션의 청년에게 한국과 6시간의 시차로 우리가 매우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었음을 설명했다. 우리 둘은, 타국인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끔 어린 아이와 함께하는 부자간의 여행객은 보게 되지만, 어린아이와 함께하는 모자간 혹은 모녀간의 배낭여행객은 만난 적이 없다. 여기서라고 해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아이에게 "Where are your father?"이라고 묻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내 손가락의 반지를 가리키는 튀르키예인들이 있었다. 그렇더라도 몇십 배쯤은 난 자유롭게 느낀다. 외국은 어쨌든 간에 여러모로,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에 대한 엄폐가 가능하다.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10시까지 24시간에 45유로로 수동기어 차량을 빌렸다. 15유로를 더 내면 내 과실 사고도 완전보험이 되는데 하겠냐고 해서 괜찮다고 했다. 카파도키아 도로 사정은 운전하기에 괜찮아 보였다. 스머프 마을 파샤바 계곡이나 벌룬 포인트 등에 가서 차를 세워두고 걷기도 하고 자유롭게 다녔다. 둘째 날 아침 산책이 하하는 특히 좋았나 보다. 무작정 높은 곳으로 갈 데까지 가서 차를 세워두고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했는데, 큰 개 두 마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와 동행했다. 하하는 개들 때문에 즐거웠는지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다.
“운명 같은 밤~, 개들을 만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곳은 데린쿠유 지하도시와 괴레메 야외 박물관 두 곳. 참 신비하고 아름답고 또 아픈 역사를 가진 곳들이었다. 동굴 안 프레스코 벽화는 아쉽게도 사진 촬영이 금지였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핍박 속에서도 이렇게 성화를 지켜낸다는 의미를 생각하면 경건해질 수밖에.
지금까지도 국민의 90% 이상이 무슬람인 국가에서 기독교 박해의 역사가 가장 큰 관광수입원이 되고 있다.
둘째 날 밤 10시 야간버스를 타고 안탈리아로 갈 예정이었는데, 내가 카파도키아에서 벌룬투어보다 하고 싶었던 것은 트레킹으로 로즈밸리나 레드밸리에 올라 석양을 보는 것이었다. 이미 아침 6시부터 일어나 한 시간 트레킹을 했고, 태양은 오후 4시가 되었지만 지글거리고 있었고, 체크아웃을 한 이후라서 짐은 앞뒤로 무거웠다. 짐은 버스 타는 곳에 맡기면 될 일이었지만, 하하는 10시간째 깨어있었던 것이다. 걸을 수 있을까? 올라갈 패기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갔던 만큼 7살 아이와 함께 내려와야 한다, 특히나 해가 산을 넘어간 이후에. 엄두가 안나 로즈밸리 투어를 알아보는데, 몇 군데를 다녀봤지만 말이나 ATV 대여 아니면 안 한다는 답변. 후기들을 보니 로즈밸리 트레킹은 다른 투어 신청 시 서비스로 주는 투어 같았다.
할 수 없이 그냥 택시를 잡아 미터로 갈 것을 몇 번씩 확인하고, 트레킹을 하려니까 시작점에 내려달라고 했다. 투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시작점에 가서 구글맵을 따라 로즈밸리 꼭짓점으로 가다 보면 사람들을 만나게 되리라. 택시기사는 우리를 어딘가에 내려주면서 저쪽으로 조금만 가면 로즈밸리 가는 표지판이 있다고 했고, 곧바로 떠났다. 그래 가보자!
그런데 맙소사. 출발지점부터 로밍 신호가 전혀 안 잡히는 것이 아닌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변수였다. 전화가 안돼 택시를 다시 부를 수도 없으니 전진 밖에는 길이 없다. 표지판을 확인해 가며 길로 보이는 곳을 따라 계속 걸을 수밖에. 가끔 등산을 다니기 때문에 대략 산새를 보면 길인지 아닌지 안다. 불안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수시로 다니는 길이라면 이렇게 나뭇가지와 풀들이 무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후기들에서 읽은 트레킹 길이 분명히 아니다. 불안감이 밀려왔다. 하하는 벌레와 꽃과 심지어 돌들에게도 인사를 하며 느림보 걸음이었지만, 나는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는 해의 위치를 확인하며, 하하를 재촉했다. 이 길이 여행자들의 일반적 트레킹 길이 아니라면 로즈밸리든 레드밸리든 정상으로 가야 사람들이 있을 거였다. 인터넷은 여전히 먹통이었다.
"하하야, 해가 떨어지기 전에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가야 되거든. 조금만 속도를 내면 안 될까?"
그렇게 걷다 보니, 전혀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산중에 거짓말처럼, 그 근방 어딘가에 거주하는 듯한 현지인 아저씨가 한 분 계셨다. 낡아빠진 의자와 탁자가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찾는 이가 별로 없어도 트레킹 길이었던 게다. 사람들이 다닐 때는 음료수를 팔던 곳이 아니었나 싶다. 내 표정에서 걱정 불안 반가움이 그대로 읽혔나 보다. 그분은 걱정하지 말라면서 흙길에 나뭇가지로 지도까지 그려가며 경로를 알려 주었다. 사람의 눈빛이 이다지도 자상하고 인자할 수 있다니. 맞게 오고 있었던 거다. 이 길이 맞는지 확신이 없이 걸을 때와 맞다는 것을 확인하고 걸을 때, 같은 길이더라도 그 길은 걷는 이에게 전혀 다른 길이다. 인생의 모든 길이 그렇다. 힘이 솟아났다.
그렇게 또 한참을 걸었는데 (한참이라고 하지만 로즈밸리 석양 포인트까지 우리가 걸은 길은 다해서 기껏해야 한 시간 반 정도이다) 길에 말발굽 자국과 말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이 길에서 떨어진 보석을 보았던들 이보다 반가웠을까. 헨젤과 그레텔이 버려진 길에서 표식이었던 빵부스러기를 발견했다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우리는 뛸 듯이 기뻐 정말로 뛰기 시작했고, 저 멀리 사람들의 말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로즈밸리의 선셋은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에겐 그냥 그랬다. 왜냐면 이미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우리는 장밋빛 화산석을 물들이는 석양보다 몇십 배 아름다운 빛을 본 것이다. 내려가는 길 중간에 한국인 투어 차량이 멈춰 우리를 태워주었고, 우리는 덕분에 30분 정도를 절약해서 여유 있게 괴레메의 마지막 저녁을 먹고 10시 안탈리아행 버스에 탑승했다.
하루가 길고 보람찼으니, 9시간 야간버스도 그냥 꿀잠을 자면 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