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 캐년이나 브라이스 캐년의 야영지, 로지, 캐빈의 자리가 혹시라도 날까 싶어 부단히 예약 사이트를 들락거렸었다. 그러나 모든 예약은 다 꽉 찬 상태이다.
1999년 12월에 자이언 캐년과 브라이스 캐년, 그리고 그랜드캐년 노스 림을 다녀온 적이 있다. 우뚝우뚝 서 있는 바위산을 왼쪽으로 두고 달리던 중 도로 한 지점에서 거대한 바위 굴을 통해 지나가는 순간이 있었다. 그 도로가 얼마나 경이롭던지 “아, 난 이대로 죽어도 좋아.”라는 생각이 온 마음을 지배했다. 그 이후 미국에 올 때마다 그곳이 어디였을까, 다시 그곳을 지나가지 않을까 하고 내심 기대를 해 보았으나 다시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 도로가 자이언 캐년 가는 길이었다. 갑작스러운 해후에 난 어찌할 바를 몰랐다. Mr. O는 빨리 사진 찍으라 하였으나 이미 저만큼 멀어져 가 버렸다. 반갑구나, 거의 19년 만의 만남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네.
자이언 캐년 가는 길 자체가 자이언 캐년이었다. 자연의 거대함과 웅장함에 입이 딱 벌어질 뿐이다. 자연과 책은 보는 사람의 것이다. 국립공원을 여러 곳 갈 예정이라 캐년 입구에서 연간 패스를 80달러에 구입했다. 이 패스로 미국의 모든 국립공원을 1년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우린 그것으로 자이언캐년 2회(70불), 브라이스 캐년 (35불), 글랜 캐년(25불이었던가?), 그랜드 캐년(35불), 무슨 무슨 캐년 들어갈 때마다 의기 양양하게 패스를 내 보였다.
자이언 캐년은 참 멋진 곳이다. 우린 승용차로 돌면서 잠깐잠깐 내려서 사진을 찍었지만, 작은 트레일이라도 좀 걸었다면 당당하게 자신의 위용을 자랑하는 거대한 암벽의 웅장함 뿐만 아니라 자이언 캐년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좀 더 가까이서 마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이언 캐년을 나와 2시간 거리에 있는 우리 숙소, 브라이스 파이오니아 빌리지 모텔, 로 향했다. 가다 보니 중간중간 시커먼 구름 기둥이 세워져 있다. 그 구름 아래를 지나가면 비가 온다. 우리 숙소는 브라이스 캐년과 7킬로 떨어져 있는 곳이다. 갑자기 총 쏘는 소리가 나며 손톱만한 우박이 차창을 쪼아댔다. 무서웠다. 그 위세가 얼마나 강한지 차창이 다 깨질것 같았다. 주여 주여를 찾으며 무사히 우리 숙소로 갔다. 우리 숙소는 아름다운 마을에 자리한 예쁜 통나무 집이었다. 내부는 좀 작았으나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브라이스 캐년으로 갔다.
19년 전과 비교하면 많이 변했다. 좀 서운하고 아쉽다. 19년의 세월에 눈과 비로 많이 무너지고 무뎌졌다. 디테일이 살아 있었고 도도하고 꼿꼿하게 세워져 있던 붉은 암벽이었다. 촛대에 불을 켜 놓은 듯 화려하고 매력적이었다. 자연도 인간과 같이 풍파를 겪어 본연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가. 브라이스 캐년은 일년 중 이백일은 눈이나 비가 온단다. 한 200년쯤 지나면 그냥 뭉글뭉글한 여름에 녹아버린 아이스크림 같아지려나. 세월에 장사 없다고 다 그런 과정을 거치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