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미얀마!

by 프레이야

안녕, 미얀마 (미얀마 여행기 1부)
미얀마의 공기는 훈훈하고 약간 눅눅했다. 드디어 미얀마에 발을 들여놓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끝내고 나오니 곧바로 공항 대합실이 눈에 들어왔다. 공항 대합실의 오른쪽 통유리를 통해 미얀마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초롱초롱한 눈빛들이 들어왔다. 별빛이 흐르는 듯했다.

‘어머, 이 사람들이 미얀마 사람들이구나’.
‘안녕, 미얀마?’
난 속으로 그렇게 인사를 보냈다. 공항을 벗어나자, 더욱 공기는 더워졌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어린 소녀가 우리를 반겼다. 조그만 덩치가 나의 무거운 가방을 번쩍 들어 택시에 실었다. 약 10분 정도 달려 오늘의 숙소인 바나나 하우스에 도착했다.

노란 대문 앞에서 천국의 미소를 지닌 종업원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들인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사람을 맞이하는 듯한 푸근함이 그들에게 있었다.
두 마리의 검은 개 역시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사장님이 저녁을 먹었는지 물어보았다.
“비행기에 서 먹었는데요.” 이 말에
“아이고, 그건 그 거구.”

미소가 아름다운 소녀 둘이 쟁반에 배추김치, 총각김치, 차, 닭 복음 요리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을 아주 정성스럽게 내어 놓는다. 상을 다 차린 그 소년 소녀들은 밥을 먹고 있는 우리를 유리창 밖에서 수줍은둣이 바라보고 있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그들은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다. ‘저 미소가 뭐였더라.’ 그래. 우리가 산업화 시대를 힘겹게 살아내면서 잃어버렸던 소중한 미소였다.

여러 종류의 김치를 보니 단 이틀 만에 만나는 한국 음식이지만 몇 달 굶은 사람처럼 여기저기로 젓가락을 옮기며 순식간에 접시를 비워 나갔다. 마음이 자꾸 행복해지려 했다. J님과 내가 묵을 방은 2층에 있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 아기자기한 방에 짐을 풀었다. 침대 위로 하얀 모기장이 쳐져있어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 즐거웠다. 밥을 먹고 근처 마사지샵에 갔다 90분에 15불이다.

몸이 호리호리하고 키가 큰 여성이 손 힘은 좀 약하지만 지극정성으로 마사지를 해주었다. 종아리를 마사지할 때는 아파서 참아야 했지만 지난밤 추위에 웅크리고 자서 뭉쳤던 어깨가 많이 풀렸다. 고맙단 말을 하고 그곳에서 나왔다.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골목은 캄캄했다. 한 남자가 우리에게 뭐라 하면서 쫒아왔다. J님과 나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는 심정으로 내달렸다. 드디어 우리의 숙소인 노란 대문이 시야에 들어오며 이제 살았다고 생각했다. 누가 잡아채기라도 하려는 듯 재빨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남자가 문밖서 우리를 부르며 플래시를 비추는 듯했지만 난 나가질 않았다. 저 사람이 왜 자꾸 저럴까?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러나 나는 한 밤에 문을 열어줄 정도의 강한 심장이 아니었나 보다. 나중에 바나나 하우스의 주인이 집에 들어온 후 그가 왜 우리를 따라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마사지한다고 목걸이를 풀어놓고 왔던 것이었다. ‘palm spring 리조트’ 직원이 목걸이를 전해주었다. 그의 미소는 푸근했다.

바나나 하우스의 두 마리 개가 우린 이미 가족이 되었다는 듯 다가온다. 얼굴은 사나워 보이지만 꼬리 치는 그 놈들이 귀여워 쓰다듬어 주었다. 종업원 소년이 야자수 가득한 정원에서 밤늦도록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우리의 L양도 합세하여 낭만적인 밤이 되게 하였다. 훈훈한 날씨에 젊은이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흐른다. 이제 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며 미얀마 여행은 시작된 거야.

다음날 문득 눈을 떠 보니 J가 샤워를 마치고 있었다. 나도 얼른 일어났다. 어젯밤에 오늘 일정에 대한 대책회의가 있었고 새벽녘의 떠오르는 해 살을 통해 쉐다곤 파야를 본다는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 택시 두 대를 잡았다. 두 택시 기사가 서로 뭐라고 하더니 각자의 차로 돌아가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일찍 가면 혹시 입장료 없이 입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 불온한 기대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기사의 말로는 4시에 문을 연다고 했다. 4시부터 돈을 받는다는 얘기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약 20분쯤 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와~. 캄캄한 새벽녘에 황금빛 쉐다곤 파야는 신비롭고도 웅장한 자태로 종교적인 엄숙함을 넘치듯 과시하며 그렇게 버티고 서 있었다. 마음이 벅찼다. 마음 같아선 단박에 달려가 화려한 종탑과 마주하고 싶었으나 다른 일행이 탄 택시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우리 일행을 태운 택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야, 이거 뭔가 문제가 생긴 거야?”
우린 사원의 입구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난감했다.

L이 우리 보고 먼저 올라가라 했다. 난 맨발로 계단을 올랐다. L님은 계단 중간쯤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부처님께 공양할 꽃을 샀다. 한 손엔 꽃과 신과 양말을 넣은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한 손엔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이 문 저 문을 헤매고 다녔다. ‘저 위에서 만날 수 있을 거야’라는 기대감을 갖고 올라갔지만 그들은 없었다. 거대한 황금 탑 주위를 서서히 돌며 같이 멤버를 찾아다녔다. 없었다. 긴장이 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선생님은 이곳에 있어보라고 말한 후, 다시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난 찬란한 황금 탑들에 넋을 빼앗겨 카메라의 앵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거대한 탑은 카메라 앵글 속에서 약간씩 벗어났다. 여행의 일체를 선생님이 계획하고 진두지휘해왔다. 온갖 신경을 다 썼음에도 예상지 않은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곳에 동문, 서문, 남문, 그리고 북문이 있다는 것까지는 미처 생각 못했던 것이다. 우린 일행을 찾아,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돌아다녔다.

한 시간이 거의 지났을 무렵, 키 큰 K가 눈에 뜨였고, A가 눈물 나게 반가운 표정으로 달려와 J에게 안겼다. 드디어 만났다. 똑같이 북문에서 내렸지만, 우린 계단으로 올라왔고, 그들은 앞사람들이 가는 쪽으로 따라가 그곳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를 기다렸던 것이다.

똑같이 북문에서 내렸는데 올라가는 길이 두 갈래란다.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기와 엘리베이터로 가기이다.
이 계단과 엘리베이터 사건은 간간히 내 뇌리에 남아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엘리베이터의 세계를 모르고 계단의 세계에 파묻혀 오로지 계단만 바라보며 살아오진 않았을까?’

미얀마 사람들의 선량하고 행복한 삶이 종교적인 힘에서 나온단다. 황금사원, 새벽녘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다니. 옅은 분홍색 승복에 밤색 장삼을 두른 스님들과 아기 스님들, 방문객들이 사원 곳곳에 앉아 경건하게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이제 숙소로 가면 된다.

L은 팜 스프링 리조트 이름만 대면 집을 찾아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나 보다. 그러나 기사는 그곳을 잘 몰랐다. 그때부터 또 한차례의 시련을 겪었다.
“여기 같은데. 아닌가?”
날은 뜨거워지고 배는 고팠다. 거의 탈진할 만큼 기운을 뺀 후, 근처 호텔에 들려 인터넷을 통해 우리 숙소 번호를 알아냈고, 전화로 주인장이 기사에게 숙소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 줌으로써 집을 찾아 길거리를 헤매던 상황은 종료되었다.

우리 숙소의 샛노란 페이트가 칠해진 대문이 눈에 들어왔다. 사장님과 이산가족 상봉하듯 감격적인 재회가 이루어졌다.
목사님 부부가 아침을 정성스럽게 준비해 주었다. 두 소년과 소녀들이 몸을 숨기고 우리가 밥 먹는 것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목사님이 봉고차와 기사를 소개해주어 한숨씩 자고 난 후 민속촌에 갔다. 트램을 이용하면 한 시간 동안 중간에 내려주고 관람 후엔 다시 태워주니 각 부족의 마을을 쉽게 둘러볼 수 있었다. 날씨가 더운 때문인지 모든 집들의 창문이 크고 나무로 지어졌다.

마지막으로 ‘로카찬타파야‘에 들렸다. 거대한 옥불이 유리장 안에 모셔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고 일부는 스마트폰에 빠져 잔뜩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청년 스님도 있었다.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고독한 하늘을 바라보며 피로한 다리를 쉬게 했다.
저녁이 되어 모든 관광 일정을 마치고 바나나 하우스로 컴백했다. 우린 목사님이 차려준 저녁인 잡채를 맛있게 먹었다.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몰라먀인으로 가기 위해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10시간의 버스 여행. 아마 무척 힘들 것이다. 터미널은 시외버스와 기타 차량들이 뿜어내는 매연으로 눈이 매웠다. 과자와 같은 군것질 거리를 바구니에 담아지게에 메고 팔러 다니는 사람도 있고 자동 물방울 권총으로 형형색색의 물방울을 뿜어대며 어린아이들을 유혹하고 있는 남자도 있었다.

L은 목적지까지 7시간 걸린다 했다. 처음엔 10시간이라 했었으므로 보너스를 얻은듯했다. 버스엔 에어컨 때문에 추울 수 있으니 따뜻한 옷을 준비하라고 했다. 난 추워야 얼마나 추울까 하는 마음으로 얇은 긴팔 옷 하나만을 가방에 넣어놨다. 몰레먀인행 버스에 올랐다. 에어컨이 시베리아 칼바람 불듯 했다.
‘꺼달라고 할까?’
‘아마 누군가는 추우니 줄여주던지 꺼달라고 말할 거야?’
너무 추웠다. 아무도 에어컨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나도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낮엔 더웠지만 양곤의 밤 기온은 낮았다.

‘가만히 있어도 추울 판에 웬 에어컨을 이리 강하게 틀어놨을까?’라고 생각하다가 나중엔 ‘아마 에어컨을 틀어야 할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안 그러면 왜 돈 들여 쓸데없이 에어컨을 틀겠어?’ 하는 에어컨 가동의 정당성을 만들어 냈다.
일행으로부터 옷을 두벌 빌렸다. 몸은 괜찮은데 이제 허벅지가 추워서 잠이 오지 않았다. 난 선반에 올려놓았던 무거운 가방을 내려 무릎 위를 덮었다. 두 시간 정도 운전하고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식당에 들어가 국수류와 인도의 짜이와 비슷한 럭벤예를 마셨다. 뜨겁고 달아 추위와 피로를 풀어 주기에 적당했다.

우린 L에게 춥다고 말했고 L은 기사에게 말했다. 기사가 에어컨을 확 줄여주었다. 살 것 같았다. ‘왜 내가 직접 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통해 일을 해결하고자 했을까?’ 생각만 하고 행동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랴. 에어컨 줄여서 좋다던지 왜 그랬느냐고 불평한다던지 하는 소리는 한마디로 들려오지 않았다. ‘도대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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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스는 달렸고 어떤 한 지점에서 버스가 멈추었다. 그때 갑자기. ‘내려, 내려, 여기가 몰레미얀이야.’하는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잠에서 잠시 눈을 떴는데 간판 보니까 몰레 미안이라고 하였다.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터미널에서 툭툭이란 것을 처음 타보았다. 툭툭이는 오토바이가 앞에 있고 뒤에는 작은 트럭이 붙어 있는 형태이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시원하게 달려 탄 르윈 호텔에 도착했다. 그때가 새벽 5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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