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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이야 Jul 06. 2024

2024. 02.07 디지털 문맹의 괴로움

이심유심


그날 찍은 동영상은 핸드폰에서 노트북으로 옮겨 놓는다. 다른 때는 의식을 못했는데, 가만 보니 첫날과 둘째 날 찍은 것이 통으로 날아가 버렸다. 유튜버 놀이를 한다고, 인천공항 앞에서 “잘 다녀오겠습니다.”로 시작한 동영상, 방콕 수완나 폼 공항에서 “우리는 이곳 방콕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태국입니다.”로 시작한 동영상, 공항에서 가까스로 택시 잡아 타고 고생하여 숙소 도착하는 동영상이 싹 다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오늘도 힘들다.

핸드폰에서 노트북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옮기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이것들이 찍힌 순서대로 저장되어야 하는데 순서가 뒤죽박죽 저장되며 심지어는 빼먹기도 한다. 내가 하도 툴툴대니까 남편이 해 보겠다고 한다.


나는 날짜별로 다운을 받았는데, 남편은 하나의 파일을 만들어 열 장의 사진만 넣어 저장했다. 그러다 보니 파일도 늘어나고 시간도 지루하게 오래 걸린다. 그래서 성공했냐고? 아니다. 노력을 가상히 여겨 잘 저장이 되어야 하는데, 다 해 놓고 보니, 똑같다.


빠진 사진과 동영상, 뒤죽박죽 저장. 하루 종일 돌아다녀 침대에 벌러덩 눕고 싶은데, 핸드폰 보며 내일 일정도 생각해야 하는데. 이 놈이 속을 썩이며, 나의 디지털 활용 능력의 부족에 가슴을 친다.


문제가 또 생겼다.

핸드폰의 모바일이 작동 불능이다. 호텔의 와이파이는 되지만, 밖으로 나갈 때는 모바일을 켜서 써야 하는데, 그게 되어야, 길도 찾고, 번역기도 쓰고, 여행 카드도 쓸 수 있는데. 이게 안 된다.


우리가 인터넷을 쓰기 위해 ’e 심‘이란 것을 심어 왔는데, 안돼, 안된다고. 속이 답답했다. 이걸 도대체 어떡해야 하나, 인터넷을 들어가 보니, 이심보다는 유심에 대한 정보가 더 많고, 이심에 대해 설명을 해도 내가 알아듣질 못하겠다. 이렇게 하라고 하면, 그렇게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 이렇게 해도 그렇게 나오질 않는다.


인터넷을 찾다 보니 어떤 이가 유심을 사러 아이콘 시암에 갔다 온 이야기를 썼다. 그럼 내일 거기를 가 봐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딸에게 카톡을 날렸다. “아무개야, 아빠 폰이 안된다.” 남편은 세상 편하게 자고 있는데 딸은 잠을 안 자고 있었는지 곧바로 답장이 왔다.


카톡으로 어쩌고저쩌고 말을 하는데, 그게 말대로 안 된다. 인터넷에 대한 고민을 한가득 안고 자는 둥 마는 둥 밤이 지나갔다.


아침에 카운터의 직원에게 “너 이심이라고 아니? 이게 모바일이 안 된다.” 모른단다.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서양 젊은이가 있길래 헬프 미 했다. 자기도 모른단다.


오늘은 왕궁을 가려고 한다. 왕궁은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단다.

직원이 요리조리 가라고 안내를 해 준다. 요 며칠 버스 탄다고 걸어 다녀서 길은 좀 안다. 남편이 자기가 길을 알고 있으니 걱정 말란다.


다행이긴 하다. 걷다 보니 한국 아가씨들이 보인다. 반가워서 그들에게 달려갔다. 자기는 유심을 써서 이심은 모른단다.

아, 이럴 수가. 난 한국 젊은이는 뭐든지 척척 다 아는 줄 알았다.


왕궁으로 들어갔다. 그 화려함은 대단하다. 그 뜨거운 뙤약볕에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지, 이 왕궁 하나만으로도 국고에 엄청난 돈을 쓸어 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를 사고 입장하면 그 가까이에 왕궁에 대한 안내 팸플릿이 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그리고 또 뭐가 있을 거다.


거기에 한국어로 된 팸플릿이 있는데 다른 것에 비해 많이 소진된 것이 보인다. 으흠, 그럼 한국인이 여기에 많다는 거지? 나는 한국 젊은이를 찾아다녔다. 밀릴 듯 많은 관광객 중에 한국말이 들리면 고개를 홱 돌리고 그 소리가 어떤 입에서 나왔는지 유심히 살핀다.


한번 두 번, 세 번째 발견한 한국인은 두 청년이다. 사정을 말하니까, 자기는 유심을 쓰고 있지만 한번 보겠다고 한다. 그러고는 슥슥 화면은 밀고 뭔가를 톡톡 누르더니 됐다고 한다.


그때 내 머릿속에 스친 생각은 ’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이라는 영화 제목이다. 인터넷 안 되면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에서 이 젊은이의 도움은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이다. 우리 두 60대는 30대의 두 젊은이에게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이젠 다시 핸드폰 건드리지 마. 인터넷 안 된다고 이것저것 건드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

우린 서로에게 그렇게 부탁을 했다.


행복해졌다. 이제 마음 편하게 태국의 대표 유적지 왕궁을 여유롭게 돌아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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