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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이야 Jul 19. 2024

2024. 02. 11. 빠이에서 스쿠터를 타다

빠이캐년, 커피인 러브, 메모리얼 브리지

빠이에서 여행자들은 보통 스쿠터를 타고 다닌다. 빠이가 작은 산골마을이지만 관광대국 태국의 땅이므로 편리하게 필요한 것을 취할 수 있다.

스쿠터를 이틀에 500바트(2만원)에 빌렸다. 삼십 년도 훨씬 더 전에 남편이 오토바이를 사서 며칠 타고 곧 판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처음 타는 것이다. 태국은 영국이나 일본처럼 좌측통행이고 우측통행인 우리와 도로 체계가 다르다. 한참 젊은 나이도 아니고, 몇 십 년 전에 잠깐 타 본 것이 전부니까 새삼스레 스쿠터를 타는 것에 조금 걱정은 된다.


스쿠터를 빌리니 헬멧을 골라 쓰라 한다. 더운데 투박스러운 헬멧이라니, 머리에 끼우기도 귀찮다. 열쇠를 받아 들고 종업원에게 시동 거는 법과 끄는 법을 배우고 2리터의 기름을 사서(3천2백 원) 넣었다. 남편이 앞에 타고 나는 뒤에 탄다. 뒤에 타는 순간, 지금까지 왜 옆구리가 아팠는지 생각이 났다. 방콕 첫날 마사지를 받는 도중 옆구리가 으드득하며 뼈가 부서지며 살을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행하는데 자꾸 아프다는 소리 해서 기분을 망치게 할 수 없어 내색을 하지 않고 참고 지냈다.


그랬구나. 까맣게 잊고 있었네. 2년 전쯤에 시청에서 무료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2주 동안 배우는 사이 두 번을 넘어지며 정강이와 옆구리를 다쳤다. 아프긴 했지만 심각한 것 같지 않아 병원엔 가지 않았다. 그랬던 것이 지금에 와서 이렇게 속을 썪였던 것이다.

왜 옆구리가 아픈지를 알고 나니 걱정이 덜어졌다. 숨을 크게 들어 쉬거나, 침대에서 몸을 좀 돌려 누우려면 옆구리가 뻐근하고 쑤셔서 큰 병이라도 걸린 게 아닌가 불안했었다.


스쿠터에 시동을 걸고 살살 달려본다. 여행자거리는 언제나 사람이 많다. 몸에 힘을 잔뜩 주고 남편의 몸통을 부여잡는다. 조심해, 조심해. 코너를 돌 때는 순간적으로 착각을 할 수 있어서 미리 주의를 주었다. 복잡한 거리를 벗어나 외곽으로 달려 나오니 서양 젊은이들이 스쿠터를 타고 길을 따라 질주한다.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그 모습은 우습게도 그들과 우리가 어떤 공동의 목적을 위해 진군하는 느낌을 준다.


양쪽으로 키 크고 푸릇푸릇한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가로수길, 이국적인 경치,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 살결에서 느껴지는 속도감과 스릴감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오토바이를 위험한 물건으로만 봤던 내게, 스쿠터는 내가 몰랐던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달리다 보니 메인 도로 옆으로 청동색의 고색창연한 철교가 눈에 띈다. <메모리얼 브리지>라고 안내판이 되어있다. 메모리얼 브리지는 제2차 세계대전중 칸차나부리 지방의 <콰이강의 다리>와 마찬가지로 일본이 버마로 진군하는 동안 건설된 것이다. 빠이강에 의해 길이 막혀 일본 군대가 이동하기가 어려워지자 강 위에 다리를 세운다. 이를 위해 코끼리에게 정글에서 30인치나 되는 나무를 끌어오게 하고 매홍손 주민과 전쟁포로를 강제 노역시킨다. 전쟁의 승리를 확신했던 그들이 전쟁에 패하자 후퇴하면서 연합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이 다리를 불태운다.


그 후 주민들은 <제2차 세계대전 기념교>라는 이름으로 다리를 다시 세우고 1973년 빠이를 집어삼킨 심각한 홍수로 다리가 파괴될 때까지 사용된다. 1976년에는 세 번째로 다시 건설되어 오늘날 역사를 되새기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한참 구글번역기의 사용법을 익힌 남편은 글자만 있으면 구글번역기를 켜고 핸드폰을 갖다 댄다. 번역기를 통해 내용을 파악한 그는 일본군이 하루 일당으로 사탕 50개씩을 임금으로 주었다고 한다. ‘일당으로 사탕을 줬다고?’ 다시 안내판으로 가서 보니, 정말 <50 satang>이란 표현이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satang>은 백분의 1바트에 해당하는 태국의 화폐단위였다.


그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카페인 <Coffee in Love>에서 커피를 마시며 좀 쉬었다. 이곳은 태국영화 <빠이 인 러브>에 출연하여 태국 일반 대중에게 이 장소와 빠이를 알린 곳이다. 3년 후인 2012년 중국영화 <Lost in Thai>한 편으로 인해 이곳과 이 마을이 더욱 알려지고 빠이를 방문하는 거의 모든 중국인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단다.


다시 스쿠터를 타고 달리다 보니 <빠이캐년>이란 이정표가 나오기에 따라가 보았다. 빠이 캐년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협곡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석양이 멋져서 투어로 많이 온다. 협곡의 길은 뱀처럼 휘휘 풀어져 있는데 너무나 좁아서 건너가기가 아슬아슬하다. 예전 같으면 그 좁은 길을 걸어 벼랑 끝까지 가는 모험을 감행했을 텐데 이제는 그런 무모한 짓은 하고 싶지 않다. 안전이 최고다. 여행객들은 인증샷을 찍으며 일몰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산에는 해가 금방 떨어지니까 초행 산길에서 고생하지 않으려면 일찍 그곳을 떠나야 한다. 석양은 상상으로 보자. 멋지고 찬란하며 붉게 타오르는 빠이의 석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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