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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이야 Sep 21. 2024

2024. 02. 17. 수코타이 해돋이 명소

왓 사판 힌, 왓 시춤

2024. 02. 17. 수코타이 해돋이 명소 ‘왓 사판 힌’

태국 와서 해돋이 명소라는 곳을 간 적이 없다. 그래도 한 번은 보자고 생각하여 구글 지도에 <왓 싸판 힌, Wat Saphan Hin>을 입력하였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에 어제와 그제 보았던 수코타이 역사 공원의 유적과 곳곳에 흩어져 있는 허물어진 유적들이 속속 눈에 들어왔다.


<싸판 힌>은 돌다리라는 뜻인데 그래서인지 도로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경사진 언덕까지 돌로 연결되어 있다. 돌길 양옆에 서 있는 나무들이 정겹다. 사실 오는 도중 저수지 쪽으로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좀 늦게 도착했다. 마음이 바쁜 나는 ‘다 올라갈 때까지 제발 해야 뜨지 말아라’라며 서둘러 올라갔다. 언덕을 오르는데 보통 10분 정도 걸린다. 경사로 걷기가 힘든 나는 땀을 뻘뻘  흘리고 헉헉대고 쉬다 가다 했더니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언덕 위에 오르니 키 큰 부처상이 하나, 그 앞에 작은 부처상이 하나가 있고 양쪽으로 거대한 돌기둥이 하나씩 세워져 있다.

늘씬하고 우아한 자태의 부처상, 그의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은 정말 예술적이다.


언덕 아래도 수코타이의 녹색 밀림이 내려다보이고 하늘엔 구름이 둥실둥실 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있을 줄 알았는데 태국인 커플 두 명만 있다. 남자 친구는 여자 친구의 사진을 찍어 주느라 바쁘다.


“해는 떴나요?”

“아니요. 아직 안 떴어요.”


그 곁에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다.

“ 이것이 당신의 강아지인가요?”

아니라고 한다.


왜 강아지가 이 높은 곳에 있을까. 주변에 물도 없고, 얘는 뭘 먹고살지? 가끔은 개가 말 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주머니에서 빵(기억이 가물가물, 과자였던가?, 여행은 2월 중순, 지금 글 쓰고 있는 때는 9월 말이니, 여행기는 재깍재깍 써야 했다. 기억이 안 난다.)을 꺼내 주었다. 잘 받아먹는다. 손바닥에 물을 좀 따라서 주었다. 허겁지겁 핥아먹는다.


해는 올라오지 않는다.

“구름 때문에 해가 안 보이나 보다. 벌써 주위가 이렇게 환한데.” 남편이 말했다. 태국인 커플도 내려갔고, 우리도 내려가야 하나보다. 오늘 해돋이 꽝이다.


아래로 굽실굽실 흘러내린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강아지가 따라온다. 어, 왜 따라오니? 너 거기 살고 있는 거 아니었어? 계속 따라온다. 도로 까지 따라 내려왔다. 난 다시 물병을 열고 손바닥에 물을 받아 강아지에게 주었다. 더 줄 게 없다. 잘 있어라. 누군가 또 와서 너에게 먹을 것을 줬으면 좋겠다. 안녕.



그리고 스쿠터에 몸을 얹는 순간 건너편 밀림 사이로 해가 떠 올랐다.

아니 아니, 여기서, 지금 떠 오르면 어떡해. 이 길바닥에서. 사진으로 남길 만큼 멋지지는 않았지만 기념으로 하나 찍었다.


다시 스쿠터에 올라타며 강아지를 바라보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던 놈이 지금은 눈길이 딴 데 있다. 조금 배신감도 들지만 스쿠터 타고 가는 내내 보고 있었다면 더 애처로울 수도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우리가 여행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 굉장히 조직적이지 못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여행 계획이라고 짠 것은 2~3일간 수코타이, 이 정도다. 수코타이에 가서 무엇을 볼 것이며, 어떤 배경이 있는지, 어디 숙소가 좋은지, 맛있는 집은 어디인지, 이런 것을 하나도 알아보지 않고 왔다. 남편은 나보고 여행 계획을 시간과 분까지 생각해서 세부적으로 짜라고 했다. 난 그런 사람이 못 된다. 그냥 닥치면 그때 생각하는 편이다. 여행 끝나고도 세부적으로 계획 세우지 않은 것에 그리 잘 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글을 쓰면서 느낀다. 좀 더 공부를 해야 했다.


오늘은 역사공원의 외곽에 있는 유적을 보기로 했다. 조금 가다 보니 아주 멋진 유적이 있다. 스쿠터를 길 한편에 세우고 들어가 보았다.


<왓 시춤>이란 곳이다. 수코타이 역사공원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이 북쪽에선 단연코 으뜸이다. 람캄행 대왕 때 건축된 것 같으며 어마어마한 크기의 좌불상을 모신 탑 안에는 지붕이 없어 위쪽을 올려다보면 다각형으로 각진 벽체(몬돕) 위로 파란 하늘이 보이는 인상적인 사원이다. 부처님 손가락 하나만도 거의 성인 키만 하다. 탑 안에서 말하면 윙윙하고 울리는데 한참 전쟁에 나가야 하는 사람에 기도하러 오면 사람이 뒤에 숨어서 걱정하지 말라고, 부드럽게 부처님의 음성처럼 응답했다고도 한다.


북쪽 사원에는 24마리의 코끼리 조각상이 있는 둥근 탑인 왓 소라싹, 수코타이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왓 프라파이루앙, 작은 사원인 왓매쫀 등이 있다. 하나하나가 멋진 유적이다.


숙소로 돌아왔다. 자전거맨이 거실 테이블 위에 태국 맥주 ‘창’을 유리잔에 따라 놓고, 목민심서 책을 펴 놓고, 휴대폰에 음악을 틀어 놓은 채 안 보인다. 더위에 지쳐 나는 방으로 들어오고 남편은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존경해 마지않는 자전거 맨을. 오늘밤도 둘이서 태국 맥주 ‘창’을 아주 작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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