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여행기 5탄>

욕조에서 미끄러지고, 계단식 논에 반하고, 금반지를 부러워하다

by 프레이야

<사파여행기 5탄>

2026.01.13.


욕조에서 미끄러지고, 계단식 논에 반하고, 금반지를 부러워하다


다정이가 욕조에서는 뜨거운 물이 나온다고 했다. 물을 받아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장면은 재현되지 않는다. 욕조는 내 몸에 비해 크고, 표면은 미끄럽다. 벽에 기대려는 순간 몸이 미끄러지며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창 너머로 보일 것이라 기대했던 논은 흐리멍덩하다. 뜨거운 물에서 피어오른 수증기가 커다란 통창을 단번에 가렸기 때문이다.


이파리를 넓게 펼친 연초록 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고 동백과 장미, 이름 모를 꽃들을 지나 식당으로 간다. 전날 밤 손님이 많았던 듯 음식의 가짓수는 늘었고 분위기는 좀 더 왁자하다. 새로 등장한 패션후르트를 요구르트에 섞어 먹어 본다. “아이, 셔.”


오늘은 라오차이 마을과 타반 마을을 간다. 두 마을은 이어져 있고, 베트남 북서부 사파 지역을 대표하는 소수민족 마을이다. 이곳에서 흐몽족, 자이족, 레다오족이 오랜 시간 전통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살고 있다.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계단식 논은 이 지역이 품고 있는 가장 대표 풍경이다.


택시는 한 곳에 멈췄다. 내리자마자 여인들이 몰려든다. 한 열명정도. 인사를 건네고, 질문을 던진다. 어디서 왔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아이는 있는지. 짧은 영어가 사방에서 겹쳐 들린다. 햇볕에 그을린 붉은 얼굴, 건조한 피부, 밝은 웃음. 원색의 두건과 화려한 옷, 등에 멘 대나무 바구니가 눈에 들어온다. 아름답다고 느낀다. 예전 같았으면 이들을 몹시도 찍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손목은 보살핌이 필요하다. 카메라는 숙소에 있다. 나는 이렇게 스스로를 달랜다. ‘그걸 찍어서 뭐 하겠다고.’


도로 아래로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급한 경사를 따라 내려가야 한다. 일행은 트레킹화를 신었고, 나는 평소 신던 운동화를 신었다. 비포장 돌길이라 한 발 한 발 조심한다. 그 와중에 상인들이 따라온다. 스카프, 지갑, 작은 공예품을 보여주는 통에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판단력과 실행력이 뛰어난 가인과 혜율이 말한다. “카페 들어가자.” 나는 상인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카페에 오래 있을 거고, 쇼핑은 하지 않겠다고. 여인들은 웃으며 대답한다. 괜찮다고,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카페 이름은 <Cloud Boat>다. 밖에서는 소박해 보였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식물들, LP판, 그림, 여행자들이 남긴 글들이 벽을 채우고 있다. 양파에 눈과 입을 그려 화병에 꽂아 두었고 한쪽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다. 테라스로 나서는 순간 계단식 논과 산의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생각지도 않았던 장면이 아무런 예고 없이 펼쳐진다.


고양이들이 테이블과 의자 사이를 오가고, 소온은 하얀 강아지 두 마리를 쓰다듬는다. 나는 테라스 난간을 장식하는 귀엽고 통통한 다육이에 마음을 빼앗긴다. <클라우드 보트>, 마치 이 카페가 안갯속을 운행하는 보트인 듯, 배의 타륜(Ship’s Wheel)도 설치되어 있다. 가인이 그 앞에서 온갖 포즈를 취하고 다정이는 가인을 찍어준다. 우리는 자유 여행자. 테라스에 앉아 느긋하게 라오차이의 햇살을, 풍경을, 음료를 음미한다.


카페에서 나오니 3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르는 척 걸어가도 그녀들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따라온다. “우리 저거 사서 쓰고 다니자.”라고 내가 말한다. 그녀들은 각각 2개, 2개, 1개를 판다. 한 개 판 사람에게는 서운하지 말라고 1.5배를 쳐 주었다. 중간중간 그런 상인들을 다시 만날 때마다 나는 머릿수건을 가리킨다. 이미 샀어요,라는 뜻이다.


이제 라오차이 마을 입구다. 커다란 다리 아래로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른다. 다리를 건너자 풍경이 확 바뀐다. 흙길 양쪽으로 회색 톤의 옥수수를 말려 매단 집들, 돼지고기를 그냥 가판대에 올려놓고 파는 가게들, 오바마가 햄버거를 먹고 있는 사진을 큼직하게 걸어 놓은 카페, 주민들과 관광객, 차들과 개들이 뒤섞여 오간다. 하얀 개, 검은 개. 먼지가 이는 길가에는 무슨 열매인가를 말리고 있다. 이곳이 관광지로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은 여기저기 보이는 민박과 여전히 공사 중인 숙소들에서 온다. 산골 마을의 시간과는 어딘가 어긋난, 쉽게 섞이지 않는 풍경이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타반 마을에 있는 <라 다오 스파 La Dao Spa>다. 구글링 잘하는 소온과 혜율의 안내로 드디어 도착했다. 강한 햇살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스파 30분 마사지 60분이다. 소온과 가인이 배정받은 방은 논 뷰, 우리가 배정받은 방에서 혜율은 마당 뷰, 다정이는 벽 뷰, 나는 계단 뷰다. 계단을 타고 고양이가 왔다 갔다 한다. 거무스름한 약초물이 들어 있는 동그란 통속에 들어갔다. 혜율이 말한다.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해줄게. 소온이 명퇴하고 제주살이 두 달 하고 왔잖아. 갔다 오니까 남편이 커다란 장미꽃다발하고, 남 편 것은 세돈, 소온 것은 두 돈 해서 금반지를 만들어 준비했다가 소온한테 주었대, 그동안 수고했다고. “어머 그래, 신 선생님 엄청 로맨틱하다.” 그 당시에는 금이 지금만큼 비싸지 않았을 땐데, 마음을 곱게 먹으니 복 받는구나. 하며 엄청 부러웠다. 금 얘기 하다가 나온 말이란다. 마사지 결과 다정이는 불만족, 나머지 네 명은 대만족이다. 어제와 완전 반대다.



이제 사파 시내로 나갈 것이다.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고 그랩으로 택시를 불렀다. 이곳은 택시가 안 온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앱 화면에 택시가 보이다 사라지고 보이다 사라진다. 마사지샵 직원이 이웃 주민에게 부탁해 택시비 주고 개인 자가용을 타고 시내로 나왔다.


저녁은 <Little Sapa>에서 먹었다 메뉴판이 나오면 늘 고르는 이는 혜율과 가인, 소온이다. 그들이 선택하면 다정이와 나는 좋다고 한다. 난 메뉴 고르는 게 피곤하다. 위 세명은 꼼꼼하게 뭐가 들어갔는지 본다. 난 보통 메뉴판 맨 위에 있는 거 시킨다. 그것이 대표 음식인 것 같아서다. 우리는 튜너 샐러드, 스프링롤, 그릴드 슈림프, 토프, 분짜, 반세우, 모닝글로리, 그리고 맥주를 시켰다. 모든 음식이 맛있다.


식당을 나오니 어둑어둑해졌다. 사파의 여행자 거리 야경을 보며 사파 호수로 발길을 돌렸다.

사파호수는 사파 중심부에 자리한 인공호수다. 주변에 산책로가 있고, 테라스가 있는 카페와 호텔, 주택 등이 있고 가까이는 시장과 연결 된다. 밤이 되니, 키 큰 인공나무가 파랗고 노랗고 빨간빛을 띠며 호수에 반사되어 아름답다. 밤 나름의 한적함이 있어 여유 있게 산책을 했다.


그랩으로 택시를 불러 우리의 숙소 <신차이 에코롯지>로 간다. 운전기사는 여기를 처음 가 보는 걸까? 차의 충격을 피해 엉금엉금 기다시피 올라간다. 하도 조심스럽게 올라가니 내 몸이 끙끙거려진다.


숙소가 어제보다는 좀 훈훈하다. 오늘도 잠이 안 온다. 인터넷 여기저기를 들락거린다.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에 들어가 오디오 북을 들었다. 그중에 어떤 것이 기억에 남는다. 빠르면서도 힘 있게 여자 성우가 읽어준 소설이다. 듣다가 깜빡 잠들어 그 이야기의 뒤를 못 들었다. 잠이 깨어 그게 어떤 거였지. 막 뒤진다. 왜 없지? 난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26.1.31) 이야기의 결론이 궁금하다. 우리나라 작품인지, 작가가 누군지, 읽어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Ai에게 들은 내용을 쓰고 어떤 책인 것 같아? 물어봤더니 모파상의 글 같단다. 모파상의 작품을 하나하나 찾아보았는데 아니다. 잠잘 때 습관처럼 틀어놓는 오디오북, 이 작품, 언젠가 문득 다시 만날 날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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