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여행기 4탄>

"인도차이나 지붕 위에서 스카프를 날리다!"

by 프레이야

<사파여행기 4탄>

2026.01.12.


우리 숙소 -신차이 에코롯지(Sin Chai Ecolodge)-는 사파(Sa Pa) 근교의 신차이(Sín Chải) 마을 쪽, 산자락에 자리 잡은 자연형 숙소다. “호텔”이라기보다 산속에 지어진 작은 리조트/방갈로 숙소 느낌이 강하다.


사파는 안개의 도시다. 사파의 안개는 여백을, 상상을, 휴식을 허락하는 것처럼 보인다.


날이 밝아지며 커튼을 젖혔다. 어스름한 안개와 함께 계단식 논과 겹겹이 쌓인 산 능선이 기다렸다는 듯 훅하고 들어 온다. 왼쪽에서 해가 서서히 올라오고 산길을 따라 오토바이를 탄 직장인들이 햇살을 받으며 점점이 달려 내려가고 있다.

구불구불 다랑논 사이에 검은 소가 앉아 있고, 닭들은 요란하게 울어댄다. 논 가운데 덜렁 집 한 채가 세워져 있다. 아니면 창고일 수도 있겠다. 다정이 말한다. "저기 호박도 있네. 저 호박은 누가 키우는 걸까?"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어? 저기 케이블카! 저기가 판시판이네. 판시판은 우리 숙소 뒷산이었다. 깎아지듯 험준한 산을 보며, "우리 저기로 걸어 올라갈까?" 하며 까르륵 거린다. 예쁜 나무들과 꽃을 보면서 식당으로 올라간다. 굿모닝 인사하고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는다. 테이블 위에 놓인 꽃이 모두 생화다.


창밖으로 보이는 장미와 이름 모를 꽃과 나무를 보며 음식을 주문한다. 치킨 쌀국수와 소고기 쌀국수 중 하나, 오믈렛과 스크램블 중 하나, 식빵이다. 난 무조건 소고기다. 소고기가 듬뿍 들어간 뜨끈한 쌀국수에 움츠러들었던 몸이 스르르 풀린다. 치킨을 선택한 친구들은 고기가 질겨서 고무 밴드 씹는 것 같았다고 한다. 맛있는 베트남 커피를 마시며 오늘의 일정을 상의했다. 똑똑한 친구, 가인이 오늘 날씨가 좋으니 판시판을 가자고 한다.


판시판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인도차이나의 지붕”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를 통틀어 가장 높은 산이다. 해발 3,143m 케이블카를 타고 가며 정상까지 가기 위해 600개 정도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숙소에 택시를 불러 달라고 하고 그 사이에 롯지의 아름다운 정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기다려도 차가 안 온다. 알아보니 오는 도중에 기름이 새서 돌아갔다고 한다. 이 돌길에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그럼 말을 해줘야지.


혜율은 우리나라 카카오택시 앱에 해당하는 '그랩'을 실행했다. 우리 중 가장 전자 기기를 잘 다루는 재원이다. 처음 사용해 본다는 혜율은 요거 조거 터치하여 택시를 불렀다. (그랩은 내가 태국 여행 때 마음대로 써지지가 않아 힘들었던 앱이다.)


드디어 판시판입구다. 입구엔 소수민족 테마 빌리지가 있다. 사파 지역에 거주하는 흐몽족(H'mong), 자오족(Red Dao), 따이족(Tay), 자이족(Giay), 싸포족(Xa Pho) 등 5개 소수민족의 전통 가옥과 생활양식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민속마을 주변은 계절마다 다른 꽃들로 가득하다고 한다.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수국과 장미, 가을에는 메밀꽃이 예쁘다 한다. 지금은 겨울이지만 다육 정원이 인상적이다. 거기서 조금 가면 케이블카 탑승지역인 <호앙리엔> 역에 도착한다. 홀(hall)은 케이블카를 타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길고 긴 대기줄은 천천히 목적지로 전진하는 뱀처럼 구불구불 몸을 꺾어가며 카이블카를 타기 위해 서서히 전진했다.


판시판 정상 부근까지 6km, 15분 소요된다. 케이블카아래로 다랑이 논과, 안개와, 깊은 계곡이 보인다. 울창한 숲과, 점점이 찍혀 있는 빨간색 지붕들과 하얀 폭포도 있다.


해발 3,000m의 판시판역에서 내렸다. 판시판은 구름과 세찬 바람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정상까지 가는 방법은 600여 개의 계단을 밟고 가는 법과 <푸니쿨라>라는 산악열차를 타고 갈 수 있다. 우리는 걷기로 했다. 걷다 보면 사찰과 거대 불상도 볼 수 있다.


다정은 고산증을 걱정했었다. 약국에 약을 사러 갔더니 고산병 약은 병원 처방전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냥 왔다고 한다. 난, 고산증을 우습게 여겼다. 뭐 좀 참으면 되겠지. 백두산 (2,744m) 갔을 때 아무렇지 않았는데, 백두산 보다 조금만 높은데 뭐. 다정은 여행계획이 세워진 이후부터 이곳을 오르려고 아파트계단을 매일 올라 다녔다고 한다. 난 운동해야지 해야지, 해야 하는데 하며 시간만 보냈다. 그 게으름의 벌을 그때 받았다.


계단은 핼 hell이었다. 너무 숨이 차고 어지럽다. 살짝 메스껍기도 하다. 하나 둘 세며 열 계단 씩 올라갔다. 혜율도 힘들다고 드러누웠다. 평소에 건강식 먹고 맨발 걷기 매일 하는 소온은 끄떡없다. 그 튼튼한 두 다리로 어디든 잘 걷는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처럼, 여길 다섯이 함께 왔으니 올라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큰일인데, 난 계속 같이 다니고 싶은데 힘 떨어져서 못 가게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이중삼중 고통스럽다.


내가 더 힘든 이유가 있다. 카메라다. 여행당일 까지도 카메라를 가져갈까 말까를 고민하다 바디하나와 광각렌즈하나, 50미리 렌즈 하나를 들고 왔고, 정상에 오를 때까지 그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손목이 아파온다. 손목을 선택할 것인가, 사진을 선택할 것인가? 나이 들어서는 몸에게 물어봐서 몸이 하자는 대로 해야 된단다. 무겁게 들고 온 카메라를 내려갈 때는 배낭에 집어넣었다. 그 이후로 쭉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다.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도착 선언이라도 하듯 판시판 정상표지탑으로 올라갔다. 탑 위에는 빨간 바탕 노란 별이 있는 베트남국기가 파란 하늘 아래 높이 펄럭인다. 그 아래에는 판시판 3,143m란 글자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 사진 찍으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각자 찍지 않고 단체로 몇 장 찍고 후딱 내려왔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이때다. 기회가 왔다. 우린 목에 깔별로 둘렀던 스카프를 펼쳐 바람에 날리며 최대로 이뻐 보이게, 불여시 같이 포즈를 취했다. 구름이 머무는 이 높은 산 정상에서 패션 스카프 쇼를 벌인 것이다.


우리의 '날씨 요정, 소온'께서 함께 하시니 바람은 구름을 걷어내고 하늘은 맑고 투명해졌다.

(그와 함께하면 날씨 문제가 해결된다. 난 백두산 가서 두 번 다 안개로 천지를 못 보았는데, 소온이 갔을 때는 구름이 걷혀 두 번 다 보았단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그 건물에 위치한 식당에서 뷔페를 먹었다. ( 모노레일 왕복, 케이블카 왕복, 뷔페식사 패키지를 예약했었다.) 맛있는 것이 너무 많다. 내가 너무 지쳐 보이는지 다정이가 앉아 있으라며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먹고 또 먹었다. 자유여행이다 보니, 시간 제약 없이 먹을 수 있다. 주변을 보니 테이블이 대부분 비워 있다. 한 직원이 와서 음식을 치울 거니까 먹을 것을 미리 가져다 놓으란다. 마지막 한 접시까지 골고루 담아와 최선을 다해 먹었다. 시간은 4시 정도 된 것 같다.


그랩을 켜 택시를 잡아 타고 사파 시내로 갔다. 사파여행자의 거리는 여행객으로 북적였다. 눈에 띄는 아름다운 건물이 있다. SUNPLAZA, 이곳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내리며 사파중앙광장의 멋진 배경이 되고 있다. 베이지 계열의 벽과 짙은 녹색 기둥, 금색 프레임의 유리가 아름답다. 가까운 거리에 사파 스톤처치도 소박하며 예쁘다. 뾰족한 아치와 두꺼운 벽체, 세로로 길게 뻗은 비례, 이런 것이 다 건축가의 안목이겠지.

사파 스톤 처치는 프랑스 식민지 시기(1895~1945)에 지어진 가톨릭 성당이라고 한다. 여행자 거리는 수많은 가게가 촘촘히 들어서 있고 길거리 좌판엔 원색의 수예품들이 거리를 붉게 물들인다.


잠시 쉬고자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으로 알려진 콩카페로 발길을 돌린다. 약간 어두컴컴하고 군용 느낌의 바질색 벽체, 거친 나무 테이블, 프런트 앞면을 장식하는 베트남 국기를 연상시키는 빨강 바탕에 노란색 별의 국기가 연이어 걸려있고 카페는 성업 중이다. 연유커피, 코코넛커피류를 주문했다. 맛? 기억 안 난다. 그런가 보다 하고 마셨던 것 같다.


미리 검색해 온 <에덴 센트럴 마사지&스파>에서 90분간 마사지를 받았다. 몸이 너무 힘들고 지쳤는지 마사지받는 시간이 괴롭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다. 뜨거운 약초 주머니로 가끔 몸을 문지른다. 마사지는 대체로 아쉽다는 의견이었고 다정이만 대만족이다. 마사지샵 옆에 있는 슈퍼에서 과일과 요구르트를 사들고 돌아왔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저녁은 건너뛰기로 했다.


다정이는 내 손목에 붙이라고 파스를 5일 내내 붙여 주었다. 잠 잘 자라고 비싼 침향환도 내어주고, 영미는 멜라토닌 정을 주었다. 다정이는 여행 때마다 영영제를 한 주먹씩 나누어준다. 비타민 비, 씨, 위장에 좋은 것, 유산균, 마그네슘 등등.


우리 숙소는 1,2층으로 되어있고, 각 방에 침대가 3개씩이다. 나와 다정이가 버스에서 아래층을 썼으므로 2층으로 가겠다고 했다. 2층으로 올라올 때는 소온과 가인이 여행가방을 올려다 주었다. 고마운 친구들이다. 혜율과 가인은 피부 좋아지라고 일일 1팩을 나누어준다.


춥다. 바닥이 냉골이라 맨발로 디디면 발이 시리다. 온수는 미지근보다는 약간 따뜻한 편이다. 넓고 예쁘지만 춥다. 침대바닥에 전기방석을 깔았다. 그 조그만 직사각형안으로 몸을 새우처럼 구부려 넣었다. 오늘도 잠이 안 온다. 유튜브를 들락거리며 밤을 새운다. 다정이는 참 조용히도 잔다.


사파를 갔다 왔다고 하니, 재미있었냐고 묻는다. 물론 그렇지. 여자 다섯이 갔는데 어떻게 안 재미있겠어. 그런데 항상 이런 말을 붙인다. 그런데 힘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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