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혜율 안 다쳐서 다행이야
<사파여행기 6탄>
26.01.14
우리 혜율 안 다쳐서 다행이야
아침 먹고 여행가방을 챙겨 나와 우리 숙소, 신차이에코롯지, 카운터 옆쪽에 맡겨 놓는다. 그랩으로 택시를 불러 <깟깟마을>로 갈 것이다.
차가 털썩 거리며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내려간다. 허름한 판잣집, 패어 헤어진 도로, 흐몽족 주민들 몇 명, 꾀죄죄한 가게들, 몇 군데의 전통복장 대여점, 죽 늘어선 식당 및 가게들을 지나 높은 도로로 올라선다. 심심찮게 눈에 띄는 차량들, 한창 공사 중인 비뚤어진 민박집, 척 봐도 비싸 보이는 높은 언덕 거대 호텔들, 도로 옆으로 안개 끼인 산과 구불구불 휘어진 도로를 보며 목적지에 당도한다.
주차장 입구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깟깟마을 입구까지 가는 트램을 탄다. 내려서 다시 표를 구입해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높은 길 위에서 저 아래쪽에 자리한 계곡과 마을을 내려다 본다. 돌로 된 계단을 하나하나 밟는다.
벌써부터 가게다. 우린 인디고 머플러를 하나씩 사서 머리에, 그리고 목에 둘둘 감는다. 예쁘게 꾸며진 깟깟마을, 전통 복장을 빌려 입고 사진 찍는 관광객들, 카페 의자에 등 기대고 앉아 열대음료를 홀짝이는 사람들, 계곡에 거리에 가게에 사람이 넘친다. 한쪽에선 민속쇼를 보여준다. 절구에 뭔가를 빻는 모습, 채를 채서 쭉정이를 까부르는 모습, 활 쏘는 모습, 전통 춤, 북 음악을 공연한다. 공연하는 젊은 청춘들. 이들 중 누군가는 서로 연애 중이겠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장소를 옮긴다.
총무 혜율이 베트남 돈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우리, 다정언니 식당에 보내 돈 벌어 오게 할까?"
다정을 잘 놀려 먹는 가인이 말한다.
"으이그." 모두 웃는다.
넓게 흐르는 계곡, 그 위 다리에서 요란하게 사진을 찍고, 호박이 쌓여 있고 거대 괴목이 있고 베트남 세모 모자가 주욱 걸려있는 전시관에서 사진 찍고, 코코넛에 빨대를 꽂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사진 찍고, 화장실 앞 화려하게 그려진 몽족 아가씨 그림 앞에서도 사진을 찍는다.
<깟깟마을>을 망고(아니, 오이가 나을까)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씨 부분은 계곡, 망고의 과육 부분은 관광지, 망고 껍질 밖은 원주민 마을, 오래된 삶의 방식, 시간이 지나도 떠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의 세계이다.
계곡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흘러 다닌다. 사진을 찍고 소리를 남기고 물처럼 반짝이다가 사라져 간다. 그러나 그 너머에는 움직이지 않는 삶이 있다. 돌처럼 자리를 지키고, 나무뿌리처럼 깊이 박혀 계절을 견디는 사람들, 계곡이 하루에도 수백 번 얼굴을 바꿀 동안 그들은 같은 자리에 서서 같은 냄비에 불을 지피고 같은 길을 아이에게 물려준다. 흐르는 것과 남아 있는 것 사이, 그 경계를 깟깟에서 본다.
그랩으로 택시를 불러 우리 숙소였던 <신차이 에코롯지>로 가서 여행가방을 챙겨 타고 온 택시 그대로 다음 숙소 <더 몽 빌리지 리조트 앤 스파> (The Mong Village Resort &Spa)로 간다. 이곳 역시 사파 시내와는 차로 15분 떨어져 있어 고요 한적이다.
늘 보는 안개와 호텔 아래로 펼쳐져 있는 다랑논이 그림 같다.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하고 마사지를 예약한다. 오후 4시 20분으로. 우리 숙소로 가려면 리셉션 아래로 이어진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광장이 나오고 직진하면 또다시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그 계단을 올라가야 우리 숙소다. 여행가방은 직원들이 신속하게 올려다 준다. 돈 버는 것이 참 쉽지 않다. 꽉꽉 채워진 20킬로쯤 하는 가방들을 두 손에 들고 가파른 돌계단을 밟으며 뛰듯이 들어 올려 숙소 앞까지 가져다준다. 출발, 삶의 현장이다.
우리는 방을 세 개 예약했다. 방과 방 사에 문이 있고 열면 하나로 연결된다. 그 아래 광장 한쪽에 인피니티 수영장이 있다. 고산 지역에 위치하여 수영장의 끝은 일부러 보이지 않게 설계되어 물이 하늘로 이어지고, 하늘은 다시 산과 계곡으로 이어진다. 온라인에서 보던 그 파란 수영장에서 자연을 눈앞에서 마주하며 호사를 누리고 싶지만,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라 쌀쌀하다. 맛있는 고깃덩이를 두고 먹지 못하고 침만 흘리며 주위를 어슬렁 거리는 늑대가 된듯하다.
마사지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전화를 걸었다.
마사지 룸이 별도로 있지 않고 숙소에 있으면 맛사지사가 온단다. 전용룸에서 받고 싶다고 하니 큰 룸으로 우릴 데리고 갔다. 오랫동안 비워 있었던 듯 냉기가 흐르고 발이 시리다. 여기서 세명, 숙소에서 두 명 하란다. 난 추워서 이곳에서 못해. 내려갈 거 야하고 하고 다정이와 내려왔다. 잠시 후 두런거리는 소리를 내며 세명도 내려왔다. 도저히 추워서 못하겠단다. 침대에 엎드려 얼굴을 비벼대니 하얀 시트가 더러워질 것 같다. 종아리를 쓱 문지른다. 고문받는 것 같다. 참아야 한다. 징징대지 말라고 나에게 타이른다. 마사지가 끝났다. 새하얗고 가지런히 접혀있어야 할 목욕 타월을 마사지사가 사용하고 세면대옆에 턱 던져 놓았다. 대접받지 못한 느낌이다.
저녁 먹으러 식당에 갔다. 손님은 우리 밖에 없다. 춥다. 썰렁한 곳에서 밥을 먹으면 체할 것 같다. 춥다고 하니 화덕에 숯을 넣어 불을 피운다. 그쪽으로 조르르 몰려간다.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주문한다. 추우니까 따뜻한 거 시키자.
로컬 푸드 5번, 8번, 쌀국수, 대나무 밥, 스프링롤 두 가지, 호박죽, 모닝글로리를 주문했다. 여행오기 일주일 전에 딸을 결혼시킨 소온이 저녁을 사겠다고 한다. 그럼 피자도 시키자. 응. 마음껏 시켜.
맛있다. 너무 많이 시켰다. 음식을 남기고 떠나야 해서 속이 쓰리다. 베트남돈 이백만 동(우리 돈 10만 원)이다. 우린 이백만 원어치 먹은 기분이다.
식당에서 우리 숙소를 가려면 무지개다리를 건너야 한다. 무지개다리 끝에는 계단이 몇 단 있다. 너무나도 만족스럽게 먹고 룰루랄라 가던 중, 혜율이 계단 끝에서 쿵하고 넘어졌다. 넘어지며 메고 있던 가방이 나를 밀쳐버린다. 나도 휘청 주저 않을 뻔했다(2차 사고). 악, 혜율이 어쩔 줄 모른다. 신음소리를 낸다. 끄억 끄억 토할 것 같은 소리를 뱉어낸다. 발목이 한 바퀴 돈 것 같단다. 식당으로 가서 직원을 불러왔다. 어찌할까요? 택시를 불러드릴까요? 아니요. 가만히 좀 있어봐요. 혜율이 말한다. 어지럽다고 움직일 수가 없다고. 이럴 땐 어떡해야 하지? 혜율이 금방 토할 자세다. 가인이 부지런히 식당으로 뛰어가 비닐봉지를 가져왔다. 그 사이 리셉션 핸썸 가이가 내려왔다. 어떡할까요? 병원에 가시겠어요?
아니요. 괜찮을 것 같아요. 침대 가서 눕고 싶어요. 우리가 혜율을 일으키는 동안 핸썸 가이가 부축을 해줄까요 묻는다. 혜율은 오예 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팔을 뻗는다. 마치 계 탄 듯 행복한 표정으로 그의 몸에 기댄다. 우린 서로 짓궂은 미소를 주고받는다. 숙소 입구까지 가고 우리가 혜율을 부축하고 숙소로 들어왔다. 사고가 한순간이다. 한 치 앞을 모른다. 여러 종류의 약을 두루두루 보유한 다정이 파스를 붙여주고, 청심환을 먹인다. 혜율은 다 같이 놀라주고 자기 침대 주위에 앉아 걱정해 주어서 행복하단다. 괜찮은 것 같단다. 다행이다. 어디에 어떤 지뢰가 묻혀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돌아보면 그날 가장 선명하게 남는 건 안개도, 계곡도 아니었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기울었던 마음,그리고 끝내 나왔던 한 문장. “다행이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