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여행기 7탄>

사파를 떠나며, 하노이를 마주하다

by 프레이야

<사파여행기 7탄>

2026. 01. 15

사파를 떠나며, 하노이를 마주하다

"몸은 괜찮아?" 다정이 옆방으로 건너간다. 괜찮다고 고맙다고 혜율이 말한다. 북적북적 새날이 밝았다. 오늘은 사파를 떠난다. "밥 먹으러 가자."

우리는 거의 왕실 호위무사처럼 혜율의 앞뒤를 에워싼다. 한쪽 다리에 힘을 줬더니 허리가 아프단다.

식당으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며 어젯밤을 복기한다. 왜 사고가 났을까. 줄줄이 매달린 동글동글 알전구들. 밝음과 어둠이 번갈아 있어, 다리 끝 계단을 예고해주지 않았다. 밤이면 충분히 헛발 디딜 수 있는 구조. 여기서 넘어진 사람이 우리가 처음일까?



어젯밤 오들오들 떨며 들어갔던 어두침침한 식당은 아침이 되자 완전히 다른 얼굴이다. 큰 유리창으로 햇살이 쏟아지고, 스테인드글라스 조명의 원초적 색들이 튀어나온다. 경쾌한 음악, 복작복작 사람들, 살아 있는 소리들이다.

하얀 키다리 셰프 모자를 쓴 남자가 깊은 스테인리스 들통 안으로 연신 국자를 담갔다 뺐다 하며 쌀국수 그릇을 채운다. 옆에서는 기름 튀는 소리와 함께 오믈렛이 익어간다. 양파, 버섯, 피망, 햄을 비처럼 흩뿌린다. 들통에서 올라온 하얀 김이 요리사의 얼굴을 나타났다 숨겼다 한다.


우린 만찬을 즐길 자세가 되어있다. 커다란 테이블에 붉은 계통의 식탁보, 그 위를 한 접시 한 접시 차곡차곡 채워 넣어 풍성한 식탁을 만들어 놓는다.

우선 쌀국수와 오믈렛, 초록잎들에 살짝 들어 있는 붉은색, 보라색, 노란색 야채가 섞인 샐러드, 원 없이 먹고 있는 스프링 롤, 요구르트, 자잘한 케이크, 죽, 피자, 아마 모닝 글로리도 먹었겠지. 아 과일도 먹었다. 노릇노릇한 과일들 사이에서 군계일학처럼 자신의 미모를 한껏 뽐내는 촉촉하고 투명하게 빛나는 붉은 수박. 파인애플은 소화에 좋다니까 반드시 먹어야겠고. 큰일 났다. 배가 너무 부르다. 커피도 마셔야 하는데.



“저런 거 입고 식당에 와도 되나?”

누군가 속삭인다. 하얀 욕실 가운 차림의 청년이 아무렇지 않게 아침을 먹고 있다.


"여행지에서는 가운도 정장인가?"

"글쎄, 좀 이상하기는 하다."


이제 하노이로 갈 것이다. 가는 방법은 보통 세 가지다. 우리가 사파 올 때 타고 왔던 <캐빈버스>, 무려 11시간 걸리는 <슬리핑 기차>, 그리고 이번에 선택한 <9인승 프라이빗 리무진 단독 대절>이다.


식사 후 숙소로 돌아가 리셉션에 전화를 걸었다. "우리 지금 나가요." 직원들이 숙소로 와서 우리 여행가방을 리셉션 룸까지 옮겨주었다. 어젯밤 혜율의 어깨를 감싸주었던 핸썸 가이가 혜율에게 괜찮냐고 물어본다. 상큼하다. 이 잘생김을 헛되이 흘려보낼 수 없어 리셉션 뾰족 건물 앞에서 단체로 사진을 찍는다. 혜율을 그의 옆에 세우고 기억의 한 자락으로 남긴다.


리무진 버스가 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 나가면 의사소통이 피곤했다. 이제는 번역앱이 잘 되어 있어 언어가 문제 되지 않는다. 리무진 기사는 사파에서 하노이까지 6시간 걸리며 세 번 휴게소에 서겠다고 베트남어로 말하고 그것을 한글로 번역하여 꾹 누르면 우리말로 말해준다. 택시 탈 때도, 식당, 가게, 다 번역앱으로 통했다.


6시간, 이 6시간 동안 뭘 하나? 난 내가 인천공항버스에서 들으며 왔던 <호러소설>이 재미있는데 제목을 모르겠다고, 찰리의 촐콜렛 공장을 쓴 사람이 쓴 거라며 그 줄거리를 얘기해 줬다. 엄청 통쾌하다고. 내가 제목을 찾았던 방법은 <책 읽어주는 남자, 단잠>의 계정에 들어가서 작품 하나하나를 들어가 보려고 했고, 또 하나는 유튜브 방문 기록으로 찾아보는 방법이 다. 방문 기록에서는 못 찾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책 읽어주는 남자, 단잠>의 동영상이 내가 들은 날 후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여 다 삭제되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모르고 <단잠>을 어지간히 찾아다녔었다. 내 얘기를 듣고. 혜율과 다정이 "내가 찾아 줄게." 하며 핸드폰을 집어 든다.

"이거야?"

"아닌데"

"이거야?"

"응 맞아. 어떻게 찾았어?"

작가는 <로얼드 달, Roald Dahl>이고 제목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 The Way Up To Heaven>이다. Ai로 찾았단다. 그렇구나. 그 생각은 못했다.

<로얼드 달>은 들어본 이름이다. 아동용 도서 중에서 그의 이름을 많이 봤다. <단잠> 성우 것은 지워졌고 <All That 스토리>라는 성우의 동영상이 있다. 친구들이 들어보겠다고 한다.


소온은 건강한 인간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맨발 걷기. 그의 아침 식사는 거의 연구 논문 급 레시피다. 무가당 두유, 토마토, 단백질 파우더, 서리태와 귀리, 캐슈너트, 아몬드, 아로니아 두 주먹, 따뜻한 물. 다 갈아 마신다. 그리고 찐 계란 네 개, 통밀빵 두 쪽, 사과 반 개. 우리는 감탄한다.


하노이에 도착한다. 왱왱— 오토바이 떼가 아니라 물결이다. 바짝바짝 붙어 달린다.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신기하다. 이 카오스 속에서 운전하는 사람들은 거의 곡예사다. 사파의 안개와는 전혀 다른 공기. 베트남의 심장이 펄떡인다. 숙소는 <아모리따 부띠크 호텔> , 복잡한 상업지구 한복판이다.


체크인 중 작은 소동이 벌어진다. 호텔비를 예약업체에 완납했는데 호텔은 못 받았다고. 전화가 오가고, 결국 업체에서 환불받고 호텔에 다시 결제. 여행은 늘 약간의 해프닝을 곁들인다. 방은 넓고 환하고 따뜻하다. 오늘은 잘 잘 것 같다.


호텔 옆 마사지숍 리클라이너 의자에 몸을 눕히고 발을 따뜻한 물에 담근다. 노곤노곤. 눈을 감는다.

평화가 깨진다. 마사지사가 종아리를 꾹꾹 누른다. 발 마사지라며? 왜 종아리까지? 어제의 아픔이 아직 남아 있는데 또 공격이다.

그러나 곧 다시 평화. 눈을 떠보니 다들 눈을 감고 있다. 한 명은 코까지 곤다. 아늑하고 평화로운 시간이다.

택시를 타고 롯데마트로 간다. 복잡한 도로를 요리조리 빠져나간다. 화려한 건물, 괜히 뿌듯하다. 이 거대한 공간 뒤에 한국인(아니 일본인?) 신동빈 회장이 있다는 것이.

우리 식당 바로 앞 한국인 떡볶이집에는 초등학생 운동부가 진을 치고 있다. 하이톤의 파도, 귀에 구멍 날 지경이지만, 애국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저녁 메뉴 중 가장 특이한 건 닭 선지 요리. 닭콩팥, 닭똥집, 닭 간까지 들어 있다. 솔직히 비위 상한다.

“먹어봐, 맛있어.” 조금 떼어먹는다. 맛은… 괜찮다. 하지만 더는 아니다. 지하 마트에서 캐슈너트를 사고 숙소로 돌아온다.


사파의 안개에서 하노이의 소음까지, 넘어지고, 먹고, 찾고, 웃고, 눌리고, 또 웃는다.

이번 여행을 한마디로 하면, 배부름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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