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기억
서너 살쯤 되었을까.
저녁 대여섯 시쯤 되었을까.
막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방에서 낮잠을 자던 나는 혼자서 잠이 깼다.
그 방.
격자무늬 크지 않은 문짝이 있던, 어린 나에게도 그다지 크지 않았던 그 방에서 나는 생애 최초의 두려움을 알았다. 혼자 남겨진다는.
그 두려움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누가 달려와 울음보 터진 나를 달랬는지 그 이후의 기억은 없지만 그 두려움만은 오래도록 남아 난 늘 혼자 남겨진다는 게 무서웠다.
재난영화 같은 걸 보다가도, 지구가 멸망하는 영화를 보다가도, 살겠다고 기를 쓰며 위기를 극복해 가는 주인공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끝까지 살아 혼자 남느니 그냥 포기하고 먼저 죽어버리는 게 낫지 않겠나 싶었다.
혼자 남겨지는 게 그렇게 두려웠던 나는 희한하게도 혼자 있는 것만은 좋아했다.
집안에 무슨 우환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교 길에 공중전화 부스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 누군가가 받으면 괜히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느지막이 들어갔고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 혼자만의 시간을 누렸다.
얽히고설키지 않는 적당한 거리.
사람들과의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혼자 누리는 고요함이 좋았던 거 같다.
그랬던 내가
지금 여기 혼자 남아있다.
깊은 잠을 들지 못하고 자주 밤을 새우는 건 어린 날 잠이 깼을 때 닥쳐왔던 그 두려움 때문이다.
불면증.
하루에 두어 시간... 잠이 들다 깨다를 반복하며 한 달여를 버텼다.
잠이 들기가 무섭고, 잠이 깨기가 무섭다.
혼자서 깨어나기가 무서워 잠이 들기가 무섭다.
결혼을 하면 모든 것이 다된 건 줄로 알았다.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처럼, 콩쥐팥쥐의 콩쥐처럼 "그 후로 잘 살았습니다"로 종결되는 것인 줄 알았다.
멋진 결혼식이었다. 유리상자가 직접 '신부에게'를 불러준, 부러움을 살만한 떠들썩한 결혼식이었다.
그것으로 해피엔딩.
나머지 인생은 그냥 대충 행복만 즐기며 살면 될 줄 알았다.
결혼생활은 너무 많은 것들이 얽혀있었다.
남들 다 움직이는 명절에 굳이 차 막혀가며 내려올 것 없다. 방학에나 다녀가라고 하셨던 쿨한 할아버지를 둔 덕에 어린 날 명절은 늘 단촐했다. 엄마, 아빠, 언니와 오빠, 그리고 나.
재미 삼아 송편을 빚기도 하고 전을 부치기도 하며, 맏며느리였던 엄마도 명절스트레스 따위는 모른 채 우리끼리 낄낄거리며 연휴를 보냈었다.
시집이란 걸 와보니 집성촌인 듯 한동네에 다닥다닥 시집식구들이 모여 있었다. 서울 안에서도 그렇게 사는 가족들이 있다니.
시아버지 생신이 되면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가족들까지 무슨 환갑잔치처럼 식당을 빌려야 할 정도였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이런저런 탈도 많을 수밖에.
가족이란 개념이 지나치게 좁았던 나는 이런 번잡스러운 상황들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남편.
뭐든지 해줄 것 같았던 남편이 빈털터리가 될 줄을 몰랐고, 그러고도 자기 연민에만 빠져 가족을 나 몰라라 할 줄을 몰랐다.
지금. 나는. 여기 혼자. 남아있다.
괜찮다고, 난 사실 이런 자유를 꿈꿔왔노라고, 혼자서 얼마나 잘 사는지를 보여주겠노라고 큰 소리를 치지만 사실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