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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와 자연의 차이는 한 끝

에피소드_9914

by 인또삐

이번 학기는 수업이 적다. 덕분에 연구할 시간이 늘었고, 캠퍼스라는 울타리 바깥의 삶을 조금씩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연구실 뒷산을 걷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몇십 미터만 걸으면 건물과 도로, 회의와 일정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빠져나와, 이끼 낀 돌계단과 바람 소리로 가득한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긴 완벽히 자연이다." 더도 덜도 없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 자체. 발밑의 흙, 가을빛을 닮은 나뭇잎, 저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까지. 마치 한 폭의 산수화 안으로 내가 들어간 기분이었다. 이토록 평온하고 온전한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오히려, 오롯이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감각이 새로웠다.

하지만 고개를 살짝만 돌리면, 회색빛 인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저기엔 인간이 만든 세계가 있다. 서류, 약속, 자아, 평가, 불안, 그리고 가끔은 허무까지. 발걸음을 돌리면 곧장 다시 그 속으로 걸어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산 속에서의 고요를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인간은 왜 스스로를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을까? 편리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생존을 위한 진화의 선택이었을까. 물론 인공 세계는 안전하고 쾌적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점점 약해지고, 불안해지고, 관계는 단절되고 있다.


인간이 자연을 떠난 것이 아니라, 자연을 잊은 것이 아닐까.


이 모든 건 겨우 몇 걸음 차이다. 한 끝의 거리.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다.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숲길을 걷는 행위가 아니다. 조금 더 느리게 숨 쉬고, 덜 판단하며, 타인의 시선 대신 자신의 감각을 믿는 일이다. 속세와 자연의 차이는 결국, 우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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