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백 투 더 퓨처, 나를 다시 데려간 시간의 교실

9749

by 인또삐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영화관 의자를 거의 전세 내다시피 했다.
한 달에 한 편은 의무였고, 친구가 “야, 재밌대”라고 하면 장르도, 감독도 묻지 않고 그냥 따라갔다.
그날도 그랬다.
친구가 “백 투 더 퓨처 보러 가자”고 했을 때, 나는 팝콘 사줄지부터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극장 불이 꺼지고, 2시간이 흐른 뒤—
나는 말 그대로 우주를 한 바퀴 도는 경험을 했다.
마지막 장면, 댄스 파티에서의 연출은 지금 봐도 소름이고,
그때 느끼던 흥분은 여전히 내 몸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는 듯하다.


오늘, TV에서 우연히 이 영화를 다시 만났다.
그런데 이번엔 예전처럼 “재밌다!”로 끝나지 않았다.
소설을 연재하며 고군분투 중인 나에게,
이 영화는 거의 시간여행 버전 멘토링처럼 다가왔다.

나는 지금 ‘단절(Disconnected)’라는 SF 소설을 쓰고 있다.
인공지능이 광속으로 진화해 AGI가 현실이 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기술의 사용자가 아니라
새로운 종(種)과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그때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
완전히 다른 지능과 한 시대를 공유할 때,
우리는 어떻게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채 서로를 지켜낼 수 있을까?


요즘 나는 이 질문을 끌어안고 며칠째 씨름하고 있다.
이건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인간이 어떤 존재로 진화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이고 생존적인 고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 투 더 퓨처의 작가는 이미 거의 반세기 전에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거다.

“과거의 작은 선택이 미래 전체를 바꾼다.”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상상력을 심어두었는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정말 달라진다.
그 메시지가 오늘은 기묘하게 마음 깊숙이 꽂혔다.


특히 영상 교육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이 영화가 거의 교과서에 가깝다.
촘촘한 시나리오와 리듬감,
장면 하나하나에 새겨진 감독의 판단력.
결국 좋은 시나리오 × 뛰어난 연출이라는 가장 단순한 공식이
가장 완벽한 콘텐츠를 만든다는 걸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그러고 보니, 백 투 더 퓨처는
나에게 또 다른 미래를 건네고 있었다.

“너도 네 이야기를 계속 써.
미래는 언제나 잘 쓰인 한 문장에서 시작되니까.”


오늘, 오래된 영화가
지금의 나를 살짝 밀어준 기분이다.
역시 명작은,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의 현재를 다시 켜는 힘이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천 자의 기적: 아버지가 옮겨 적은 나의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