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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자의 기적: 아버지가 옮겨 적은 나의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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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또삐

3월 어느 날, 나는 조용히 브런치에 선언했다.

“1 편의 글을 쓰겠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작가처럼 살고 싶었고, 매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떠오르는 대로,
감정이 흔들리는 대로,
머릿속에 번쩍이는 생각이 있으면
그냥 썼다.
가끔은 가족 단톡방에도 슬쩍 공유하고는 했다.


반응?
대체로 미지근했다.
“아… 응.”
“또 썼네.”
이 정도였다.

나는 그러려니 했다.
가족에게 인정받으려고 쓰는 것도 아니고,
글쓰기는 결국 나와의 싸움이니까.
그래도 묵묵히 쓴 결과,
오늘까지 벌써 200여편 가까이 적어냈다.


그리고 오늘,
부모님 댁에 들렀다가 아주 뜻밖의 장면을 보았다.

아버지가 갑자기 말했다.
“이리 와봐라, 보여줄 게 있다.”

그러더니 서재로 날 데려갔다.
책상 위에는 크기 다른 공책이 여러 권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그중 하나를 펼쳐 내밀었다.

그 안에는—
익숙한 문장들이 빽빽하게,
정갈한 글씨로 차곡차곡 적혀 있었다.

내가 글들.
무려 3월부터 한 편도 빼놓지 않고
아버지가 직접 손으로 옮겨 적어온 글들이었다.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아버지는 담담하게 말했다.
“하루에 천 자만 쓰면 뇌 건강에 좋다더라.
네 글이 딱 좋더라.”

그 말이 왜 이렇게 뭉클하게 들렸을까.

아버지의 글씨는 정성 그 자체였고,
노트 속 페이지 하나하나가
마치 오래된 서당에서 비밀스럽게 전수된
‘가족 신문학’ 같았다.

그제야 알았다.
아버지는 말 없이,
묵묵하게,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서
나의 꿈을 옮겨 적고 계셨다는 걸.

그걸로
나의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어딘가에 닿고 있었다는 걸.


잠시 짬시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글을 쓴다고 하지만,
사실은 서로를 옮겨 적고 살아가는 아닐까?

내 글이 아버지에게 천자 노트가 되고,
아버지의 그 정성이
다시 내 글을 쓰게 하는 연료가 되고.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연결한다는 것.
창의력은 꼭 새로운 걸 만드는 데만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따라 적는 데서도
아주 깊게 발견될 수 있다는 것.

오늘의 나는 그걸 배웠다.
아버지의 조용한 창의력으로부터.

그리고 마음속으로 작은 다짐을 했다.
“1 , 반드시 쓰겠다.
여정의 절반은 이미 아버지가 함께 쓰고 계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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