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61
요즘 세상은 웬만한 전공 이름 정도로는 놀라지 않는다.
하지만 ‘비트코인 화폐철학과’라는 전공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예전에 드라마에서 농담처럼 들리던 이대 남자학과 같은 급의 충격이었다.
“이게… 진짜 있다고?”
그런데 정말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좀 있어 보인다.
(생각해보면 ‘철학’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모든 게 있어 보인다.)
비트코인을 처음 들은 건 십수 년 전,
지인이 뜬금없이 “형, 요즘 비트코인 좀 해보세요?”라고 말했을 때였다.
그때 내 반응은 딱 이랬다.
“비… 뭐?”
그 이후 세상은 묘하게 빨리 돌아갔다.
15년 뒤, 뉴스에서는
“비트코인 1개 = 1억 원 돌파”
라는 문장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했다.
나는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비… 뭐라고?”
비트코인은 신기하다.
기존 화폐는 국가가 보증한다.
은행이 관리한다.
규칙이 있다.
전통이 있다.
뭔가 ‘지켜주는 사람’이 항상 있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없다.
누구도 보증하지 않는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전 세계 사람들이 믿는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배우던 돈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정답이 나오지 않는다.
“신뢰 없는 신뢰 시스템.”
이런 걸 들을 때마다 나는 살짝 현기증이 온다.
더 놀라운 건 가격의 기막힌 변주곡이다.
2010년 5월 22일, 비트코인 역사에서 전설이 된 사건이 있다.
한 이용자, ‘라슬로(laszlo)’가 피자 두 판을 사기 위해 1만 비트코인을 결제한 날이다.
그때는 그냥 “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일어난 작은 실험이구나” 정도였지만—
지금 그 1만 개의 가치는?
단순히 ‘비싸졌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
피자를 몇 장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피자집을 몇만 개를 살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나는 계산기를 두드리다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
그냥 손가락을 내려놓았다.
현실감이 따라오질 않았다.
비트코인은 이렇게, 우리 상식의 영역 밖에서 조용히 세계를 바꾸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왜 사람들은 존재도 보지 못한 디지털 코인을 믿을까?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돈도 결국 사람들의 신념이 만든 허구였다.
비트코인은 그 허구를 더 직설적으로,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 존재였다.
내가 요즘 읽고 있는 비트코인 책은 이렇게 말한다.
“비트코인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 심리의 실험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이 전공 이름이 더 이상 우스꽝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실제로 공부해야 할 대상이었다.
쉽게 비웃기엔 너무 큰 문명적 변화였다.
사실 나는 아직도 비트코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침착한 척하지만 사실 하나도 모르겠다’에 가깝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다.
비트코인은 “돈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가장 극단적으로 파고드는 현대 철학 수업이라는 것.
그 질문에 답하려면
우리 모두 언젠가 ‘비트코인 화폐철학과’의 청강생이 될 수밖에 없다.
비트코인이든, 원화든, 달러든—
결국 돈이라는 건,
우리가 믿는 만큼만 존재하는 허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