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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연가를 내고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
늘 그렇듯, 병원 문을 열자마자 나는 갑자기 성인 남성 → 초등학생 2학년으로 급강등된다.
키오스크 앞에서 “여기서 눌러주세요”라는 안내를 듣는 순간,
내 손은 이상하게도 아이처럼 굼떠지고,
문진표를 건네받는 순간 마음속에서는 ‘선생님 이거 맞나요?’라는 말이 튀어나오려 한다.
“저기 가서 대기하세요.”
나는 또 이동한다.
“여기 서명하시고요.”
나는 또 복종한다.
병원은 친절하긴 한데,
그 친절이 마치 ‘손 잘 잡아주는 유치원 선생님’ 같은 친절이다.
배려는 있지만,
언제나 내가 주체가 아닌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수면 내시경을 위해 링거를 꽂고 누워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건강을 위해 방문한 공간에서
이토록 ‘비건강한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걸까?
몸은 검사받으러 왔지만,
마음은 이미 지친 지 오래다.
“조금 더 내면 더 좋은 서비스 받을 수 있을까?”라는 비겁한(?) 생각도 잠깐 스쳤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VIP 병실의 문제가 아니다.
병원이 ‘치료와 예방’의 공간이기 전에
인간이 두 발로 들어오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종종 잊는 데 있다.
병원 시스템은 효율적이지만,
그 효율이 인간의 존엄을 덜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건강을 챙기러 왔다가
정작 마음이 먼저 병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검진을 마치고 나오면서 이런 상상을 해봤다.
병원이 조금 더 호텔처럼,
혹은 도서관처럼,
혹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돌보는 장소’로 변할 수 있다면 어떨까?
예방 서비스가 국가와 사회의 부담을 줄인다는 건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묘하게 ‘예방 과정’은 여전히 감정적으로 가장 힘든 관문이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갈 때
‘긴장’이 아니라 ‘편안함’을 들고 들어갈 수 있는 날.
그날이 온다면,
한국인의 건강도, 병원 문화도
지금보다 훨씬 더 밝은 얼굴을 갖게 되지 않을까.
아무튼 오늘 검진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다음에는… 조금 더 성숙한 어른으로 검사받고 나와야지.”
라고 다짐하는 나를 보며,
나는 또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