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DO YOU HAVE CARDS?

9737_우리가 들고 있는 패는 무엇인가?

by 인또삐

유발 하라리의 최근 인터뷰를 보면, 그는 이상하리만큼 한 장면을 계속 호출한다. 들을 때마다 등허리가 살짝 굳어지는, 그 유명한 순간.
바로 트럼프가 젤렌스키에게 툭 던진 그 말이다.

“Do you have cards?”
—말인즉, “자, 협상 테이블에 올릴 네 패는 뭐지?”라는 뜻.

정치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진 대사라는 게 문제다.
하라리는 이 질문을 반복해서 꺼내며 우리에게도 슬쩍 묻는다.

“그래서… 당신은 지금 어떤 패를 들고 있나요?”

살짝 웃기지만, 듣고 나면 한동안 마음 한구석이 시려지는 질문이다.

그 문장을 하라리가 소환한 이유는 분명했다.
AI 시대, 인간은 이제 각자의카드 들고 살아야 한다는 .
그리고 문제는…
막강한 카드를 가진 사람은
전 세계에서 한 손으로 꼽을 숫자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철학적 멘붕이 시작된다.


1. 우리는 그 ‘카드’를 갖고 있는가?

하라리식으로 말하면,
2025년 현재 인류는 이미 초강자 중심 사회에 진입했다.
AI를 만들고, 다루고,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은 사실상 새로운 지배 계급이다.

나는 그 말 듣고 잠깐 멍해졌다.
그리고 솔직히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 내 카드가 뭐지…?”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며칠 전 학생들과 수업에서 토론했을 때,
한 친구가 말했다.

“교수님은 카드가 있잖아요.
우리는… 음… 아직 모으는 중이고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살짝 뿌듯했지만,
동시에 씁쓸했다.
카드 경쟁 시장에 나도 던져져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부담감을 줬다.


2. 그렇다면 왜 살아야 하는가?

카드 없이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하라리가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대답해야 하는 미래철학의 숙제다.

만약 AI가 모든 기술, 정보, 창작, 계산을 담당한다면—
카드가 없는 사람은 무엇으로 존재를 증명해야 할까?

내 결론은 이렇다.
카드가 없으면,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사람이 되면 된다.

모든 시대의 ‘약자’는
새로운 방식,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감성으로
게임을 교란하고 재설계해왔다.

카드가 적은 사람일수록
창의성, 유머, 감정, 관계 같은
비가시적 능력을 더 정교하게 사용해왔다.
(인간이 AI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종목이다.)


3. 카드의 본질은 ‘쟁취’가 아니라 ‘발견’이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게 있다.
카드는 경쟁해서 빼앗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
근데 나는 요즘 글을 쓰면서 느낀다.

카드는 남에게서 빼앗는 아니라
경험 속에서발견되는 것이다.

내가 글쓰기, 교육, 영상, 철학을 건드릴 때
슬며시 등장하는 그 ‘나만의 결’처럼.
누군가 절대 복제할 수 없는 그 미세한 차이.

그게 바로 카드다.


4. 그럼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정답은 아주 심플하다.

카드를 모으는 인생을 올인할 것인지,
카드 없이도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존재가 것인지.

나는 후자가 더 인간답다고 생각한다.
AI가 계산을 독점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상상, 서사, 관계, 감정 같은
불규칙하고 비효율적인 카드로 승부해야 한다.

우리는 어차피 AI 같은 패를 못 만든다.
그렇다면 인간만의 패를 만들면 된다.
그리고 그 패는 대개 안정성보다 ‘불완전함’에서 나온다.


마지막으로, 나의 작은 경험

요즘 나는 학생들과 강의할 때
늘 한 문장을 반복한다.

여러분만의 카드가 없다고 걱정하지 마라.
여러분 각자의 이야기가 바로 나만의 카드다.”

그러면 학생들은 잠깐 멈칫하다가
어딘가 안도한 얼굴을 한다.

그때마다 느낀다.


하라리가 소환한 질문,
“Do you have cards?”의 본질은
카드를 요구하는 말이 아니라,

너는 무엇으로 인간일 있니?”
라는 질문이라는 것을.

AI 시대, 우리의 진짜 카드는
바로 이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가는 능력일지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AI 시대, 뇌의 마지막 근육은 책이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