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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러너, 욕망의 시대에 균열을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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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또삐

요즘 내가 가장 부러운 사람?
억대 연봉자도 아니고, 해외 거주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유퀴즈에 나온 29 아마추어 마라토너다.

올해에만 마라톤 20여 개 대회 전부 우승.
낮에는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남는 시간엔 그저 묵묵히 달린다.
그가 번 돈의 90% 부모님께,
나머지 10%로 한 달을 살고,
거기서 또 적금을 든다.

그런데—
세상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은 사람처럼 웃는다.
그 웃음이 화면을 뚫고 나오는 순간,
나는 이상한 충격을 받았다.

“저 사람은… 지금 이미 행복한데?”
그 말이 머리를 한 대 세게 때렸다.


욕망의 덩어리였던 나와, 바람처럼 가벼운 그

나는 늘 뭔가 더 갖기 위해 뛰었다.
더 멋진 것, 더 큰 것, 더 완벽한 것.
그 끝없는 “더”는 결국 나를 비루하게 만들었다.

반면 그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는데,
이미 완성된 사람처럼 보였다.
시시한 욕망들이 그의 어깨엔 매달려 있지 않았다.
가벼움, 바로 그것이 그의 힘이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욕망은 없애는 아니라, 가볍게 들고 뛰어넘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 무거워지면 걷기도 힘들다.
하지만 가벼우면—
우리는 달릴 수 있다.


욕망을 이기려면?

현대 철학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욕망과 싸우지 말고, 거리를 두라고.

욕망을 주먹으로 눌러 꺾으려 하면
그놈은 더 커져서 돌아온다.
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어이없을 만큼 작아진다.

그 마라토너의 삶이 바로 그거였다.
욕망을 버린 게 아니라
욕망이 그의 발목을 잡지 못하게
그저 앞만 보고 달린 것이다.


나도 하루 종일 그를 생각했다

"왜 나는 이미 행복한데, 더 행복하려 발버둥 치지?"
"왜 더 멋진 나를 만들겠다며, 지금의 나를 괴롭히지?"

그의 웃음은 이렇게 말했다.
가지면, 보인다.’
풍요는 많음에서 오는 게 아니라
비움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오늘 하루 종일 그는 내 안에서 달렸다.
그리고 그의 숨결이 나에게 말했다.

, 욕망은 죽이는 아니고, 가볍게 넘어가는 거예요.”


우리는 모두 각자의 마라톤을 뛰고 있다.
누군가 앞서가고, 누군가 뒤처지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마음의 무게다.

그의 이름은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내게 남긴 한마디 철학은 분명하다.

삶은 기록 경쟁이 아니라, 마음 경쟁이다.”

낭만 러너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조금 덜 무겁게, 조금 더 가볍게
오늘을 뛰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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