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은 믿고, 사람은 의심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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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또삐

요즘 대화가 잘 안 된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말은 분명히 오갔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느낌.
직장에서도 그렇고, 집에서도 그렇다.
서로 말은 하는데, 누구도 설득되지 않는다.

며칠 전 이런 장면이 있었다.
내가 지인에게 말했다.
“허리 건강엔 걷는 게 제일 좋아.”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
유튜브에서 같은 말을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와, 역시 전문가가 말하니까 다르네.”

순간 깨달았다.
문제는 내용이 아니라 출처라는 걸.

우리는 지금
사람보다 알고리즘을 더 믿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알고리즘은 늘 나를 ‘맞힌다’.
내가 궁금해할 만한 걸 먼저 꺼내고,
내가 듣고 싶은 어조로 말하고,
같은 메시지를 반복해준다.
그 반복은 신뢰가 아니라 안심을 만든다.

반면 사람의 말은 불편하다.


맥락이 길고, 감정이 섞여 있고,
때로는 틀릴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답보다
불확실하지 않은 쪽을 고른다.
알고리즘을 믿는 게 아니라,
불안하지 않은 상태를 믿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부터다.
사람들이 알고리즘을 신뢰하는 이유는
‘더 똑똑해서’가 아니다.

내 이야기를 끊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같은 말을 여러 번 해주기 때문이다

이건 기술의 승리가 아니라
대화 태도의 승리다.


그렇다면 인간의 말은 다시 힘을 가질 수 있을까?
가능하다. 조건이 하나 있다.
사람의 말도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을 먼저 줘야 한다.


대화는 논리 싸움이 아니다.
설득은 정보량의 문제가 아니다.
신뢰는
“나는 네 편일 수도 있다”는
미세한 신호에서 시작된다.


알고리즘이 빼앗아간 건
대화의 주도권이 아니라
대화를 대하는 방식이다.


그 방식을 되찾는 순간,
우리는 다시
사람의 말을 믿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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