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왜 우리를 정직하게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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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또삐

요즘은 좋은 드라마를 찾는 것 자체가 하나의 능력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우연히 만난 작품 하나가 오래 남으면, 그 이유를 곱씹게 된다.
최근 새벽에 만난 드라마 〈러브 미〉가 그랬다.


스웨덴 원작답게 이 드라마는 친절하지 않다.
울라고 강요하지도, 빠른 전개로 끌고 가지도 않는다.
대신 조용히 묻는다.
사람들은 각자의 외로움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는가.


이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는
외로움을 ‘문제’가 아니라 ‘상태’로 다룬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말로 버티고,
누군가는 침묵으로,
누군가는 가족 안에서,
누군가는 가족 밖에서 살아간다.
정답은 없고, 다만 각자의 리듬만 존재한다.


특히 마음에 남은 건
에피소드 중간마다 등장하는 라디오 DJ의 짧은 멘트였다.
설명도 설득도 없이,
삶을 살짝 건드리고 물러난다.
그 말들이 가족들의 서사와 겹쳐질 때
이 드라마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그중 한 장면에서
‘새벽의 시간’을 정의하는 대사가 나온다.
짧았지만 묵직했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질문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나에게 새벽은 어떤 시간일까?

돌이켜보면 새벽은
가장 외로운 동시에 가장 솔직해지는 시간이다.
낮에는 역할이 많다.
책임, 표정, 말투, 기대.
하지만 새벽이 되면
그 모든 것이 하나씩 벗겨진다.
버텨야 할 이유만 남는다.


그래서 새벽의 나는
가장 꾸밈이 없다.
괜찮은 척도 덜 하고,
잘 살고 있다는 자기암시도 힘을 잃는다.


대신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이 시간이 불편해서
사람들은 새벽을 피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된 순간들은
대부분 이 시간에 있었다.


새벽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방향을 살짝 보여준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아마 그래서 우리는
가끔 새벽에 깨어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덜 속이기 위해서.
나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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