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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들의 하루를 지켜보다가 솔직히 놀랐다.
시간표처럼 촘촘한 일정, 쉬지 않고 움직이는 에너지.
“저 나이에만 가능한 리듬이 있구나.”
지금의 내 몸으로는 그중 30퍼센트도 따라가기 어렵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뇌는 젊을 때는 고통을 삭제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나이가 들면 학습 속도를 낮추는 쪽으로 스스로를 조정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우리는
몸이 망가지기 전까지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망가진 뒤에는 다루는 법을 배우기엔 이미 늦어버린다.
아들 나이 때의 나는 몸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잠을 줄여도 버텼고, 무리해도 회복됐다.
몸은 관리 대상이 아니라
영원히 고장 나지 않는 도구처럼 느껴졌다.
반면 인생의 중반에 들어서면 상황이 달라진다.
몸은 갑자기 말을 걸기 시작한다.
“이제는 계산해서 써라.”
그제야 우리는 걷기, 스트레칭, 기초 운동을 이야기한다.
대부분은 아파본 뒤에야.
이게 늘 궁금했다.
우리는 부모 세대의 허리 통증과 무릎 통증을
눈으로 보고 자랐는데
왜 똑같은 길을 반복할까.
20대부터
에너지를 나눠 쓰는 법을 배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신 근육량, 체형, 숫자로 보이는 성과에 집중한다.
몸을 이해하기보다 소비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때 조금만 아꼈더라면”이라는 문장이 인생의 후렴처럼 따라온다.
아마 이유는 단순하다.
젊을 때는 몸이 조용하고,
나이가 들면 귀가 둔해진다.
몸의 신호는 늦게 오고,
지혜는 늘 한 박자 늦게 따라온다.
그래서 인간은
늘 너무 늦게 깨닫는다.
하지만 이 질문을 지금 던지고 있다면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몸은 하루아침에 망가지지 않고,
지혜도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오늘 조금 덜 쓰고,
조금 더 귀 기울이는 것.
어쩌면 그게
노년에 가장 큰 자유를 남겨주는
가장 조용한 투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