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는 왜 세대를 건너면 독이 될까

9471

by 인또삐

부모는 늘 같은 이유로 잔소리를 한다.

“너 잘되라고.”
의도는 선하지만, 결과는 자주 어긋난다. 어릴 땐 억지로라도 들었지만, 지금의 알파세대에게 잔소리는 소음 에 가깝다. 그들은 부모의 말보다 알고리즘의 문장을 더 신뢰한다. SNS와 AI는 판단하지 않고, 반복하고, 친절하게 맞춰주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세대 차이라고 넘길 수도 있다. 시대가 너무 빨리 변했으니까.


그런데 더 흥미로운 장면은 그다음이다.
한평생 잔소리를 하던 부모세대가, 이제는 자식에게서 잔소리를 듣는 위치가 된다.
건강, 돈, 생활 습관, 디지털 기기까지—전세는 완전히 뒤집혔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부모는 자식의 말을 잘 믿지 않고, 그렇다고 AI나 디지털 정보에도 익숙하지 않다. 결국 누구의 말도 듣지 않 은 채, 자기 방식으로 판단하며 남은 시간을 살아간다. 그 고집은 지혜일까, 아니면 고립일까.


나는 최근 이 장면을 가까이서 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자식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부모의 불안이 근거 없는 것도 아닌데—대화는 번번이 어긋났다. 그 순간 깨달았다. 문제는 ‘무슨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형식으로 전달되느냐’라는 것을.

잔소리는 정보 전달이 아니다.
잔소리는 관계의 신호다.
“나는 여전히 너와 연결돼 있고, 네 삶에 관여하고 있다”는 방식이 잘못 표현된 애정이다.
하지만 신뢰가 사라진 관계에서 잔소리는 충고가 아니라 간섭으로 들린다.

세대 간 소통이 다시 가능해지려면 조건이 하나 있다.
정답을 내려놓고, 이해의 형식을 회복하는 .


알고리즘이 신뢰받는 이유는 옳아서가 아니라, 사용자가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의 대화도 그 기능을 되찾아야 한다. 판단보다 질문을, 충고보다 맥락을, 결론보다 공감을 먼저 놓을 때 말이다.

잔소리를 줄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잔소리를지혜의 언어 바꾸자는 제안이다.
그게 가능해지는 순간, 세대는 다시 대화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서야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된 사회에 가까워질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뇌는 왜 항상 한 박자 늦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