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요리사를 보며, 기본이라는 가장 어려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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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또삐

몸이 썩 좋지 않은 날이었다.
움직이기엔 애매하고, 아무것도 안 하기엔 마음이 불안한 상태.
그때 동료 교수가 추천해준 넷플릭스 〈흑백 요리사〉를 틀었다.
솔직히 시즌 1의 신선함을 이미 맛봤던 터라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시즌 2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가왔다.
더 자극적이지도, 더 화려하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특히 눈에 들어온 건
안성재와 백종원의 평가 장면이었다.
프로가 프로를 평가하는 순간의 공기.
그 긴장감이 묘하게 익숙했다.
학생들의 작품을 앞에 두고
“잘했지만, 왜 이 선택을 했는가”를 묻는
내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요리는 재료가 같아도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영상 편집도 마찬가지다.
같은 소스, 같은 러닝타임, 같은 조건.
그런데 결과물은 편집자의 철학만큼 달라진다.
이 프로그램은 그 차이를
아주 정직하게 보여준다.


더 인상 깊었던 건
탈락의 이유였다.
누군가보다 덜 창의적이어서도,
아이디어가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대부분은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채소의 식감이 죽었다

고기가 질겼다

간이 맞지 않았다

조화가 무너졌다

기본이었다.


사람들은 경쟁을 떠올릴 때
“더 뛰어나야 이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무대에서는 달랐다.
아무리 경력이 화려해도
기본을 놓치면 가차 없었다.
테크닉으로 덮으려 한 순간,
그 접시는 조용히 내려갔다.


이 장면을 보며
나 역시 떠올랐다.
작품을 더 잘 만들겠다고
아이디어를 덧붙이다가
정작 이야기의 중심을 놓쳤던 순간들.
과한 설명, 과한 연출, 과한 고민.
Over thinking
가장 기본적인 감정을 가려버렸던 기억.


요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영상도 그렇다.
기본이 무너지면
아무리 화려해도 결국 드러난다.


흑백 요리사를 보며
새삼 확인했다.
기본은 초보의 영역이 아니라
프로가 끝까지 지켜야 할 마지막 기준이라는 걸.

몸은 쉬고 있었지만
머리는 오랜만에 제대로 배부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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