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한 2026년의 개막식은 병원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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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또삐

지난 한 주의 유일한 위안은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시즌 2〉였다.
불 앞에서 고개를 떨군 셰프들을 보며
“저 정도로 몰입했으면 아파도 명예다”라는
엉뚱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땐 몰랐다.
곧 내가 그 불 앞에 서게 될 줄은.

보통 사람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도 다사다난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시작했다.
2026년을 맞이하자마자
그 문장이 튀어나왔다.

사건은 평범했다.
2025년 마지막 주 어느 아침,
일어나려는데 목 뒤가 말을 듣지 않았다.
피로인가 싶었고, 잠버릇 탓인가 넘겼다.
하루쯤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늘 그래왔으니까.

병원에서는 간단했다.
“거북목이네요.”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몇 달 전, 지인이 무심하게 던진 말이
그제야 또렷이 떠올랐다.
“그렇게 노트북 앞에 오래 앉아 있으면
목이 먼저 옵니다.”

그땐 웃어넘겼다.
몰입은 미덕이고,
통증은 의지로 버티는 거라 믿었으니까.
하지만 몸은 내 철학에 동의하지 않았다.
글을 쓰는 것조차 버거워질 만큼 아팠고,
며칠은 누워서 시간을 견뎌야 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2026년 1월 2일,
코로나 확진.
새해 인사는 병원 알림 문자로 대신했다.
버라이어티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거였다는 걸 배웠다.

솔직히 억울했다.
2025년을 꽤 성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다.
결과도 나쁘지 않았고,
후회할 만큼 게으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돌아온 건
“조금 쉬어야겠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몸은 배신하지 않는다.
다만, 기록을 미뤄서 제출할 뿐이다.
자세를 무너뜨린 시간,
휴식을 빚으로 쓴 날들,
집중이라는 이름으로 무시한 신호들—
몸은 전부 저장해 두었다가
가장 바쁠 때, 가장 아플 때 꺼내 놓는다.


그래서 지금은
이 다사다난한 시작을
불운이라 부르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점검에 가깝다.
속도를 줄이라는 경고,
방향을 다시 보라는 초대.

새해는 늘 달려야만 하는 출발선이 아니다.
어떤 해는 멈춤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번 2026년은 아마도
“더 열심히”가 아니라
“더 오래 가자”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조용히 묻고 싶다.
요즘, 몸은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가.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가장 신뢰해야 할 동반자의 말을
가장 늦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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