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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생활이 이제 많아야 10년 남짓 남았다.
예전이라면 그 사실을 숫자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남은 강의 횟수, 마무리해야 할 논문, 정년까지의 거리. 그런데 요즘은 그 10년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끝을 향한 카운트다운이 아니라, 내가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AI가 강의안을 만들고, 학생들이 교수보다 먼저 알고리즘에게 손을 드는 시대다. 1년이 지나면 교육 환경이 바뀌고, 3년이 지나면 직업의 경계가 흔들린다. AI 시대의 1년은 예전의 5년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10년 후를 상상하는 일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 이유를 다시 묻는 일이다.
나는 무엇으로 대체될 수 없는가. 아니, 더 정확하게는 — 나는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최근 한 문장이 오래 머물렀다.
능력은 순간을 빛나게 하지만, 태도는 평생을 빛나게 한다.
처음엔 그냥 좋은 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문장이 나의 지난 시간을 역으로 읽어냈다.
능력은 숫자로 쌓인다. 논문 편수, 연구비 규모, 강의평가 점수. 그것들은 기록되고 검색되고 비교된다. 분명한 언어로 존재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기억에 남는 것은 전혀 다른 장면들이다.
회의가 길어졌을 때 자신의 의견보다 상대의 말을 먼저 끝까지 들어준 사람. 실수한 학생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대신 조용히 자리를 내어준 사람. 성과보다 사람을 먼저 본 사람. 그 장면들은 어떤 데이터베이스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의 몸에 남는다. 그 사람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소환되는 온도로.
능력은 빠르게 빛난다. 그러나 빠른 것은 대개 빠르게 사라지기도 한다.
태도는 천천히 스며든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회의록에도, 실적 보고서에도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축적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사람 자체가 된다.
오래 현장에 있으면서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 능력은 입장권이다. 그것이 없으면 자리에 앉지도 못한다. 하지만 입장권이 신뢰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신뢰는 능력이 아니라 태도가, 그것도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만든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바꿨다.
'가장 뛰어난 교수'가 아니라 '함께 일하고 싶은 교수'. 거창하게 들리지 않으려고 의도한 표현이다. 실제로 이것은 아주 작은 일들의 합이다. 회의에서 끝까지 경청하는 것. 후배의 아이디어를 섣불리 재단하지 않는 것. 학생의 가능성을 조급하게 닫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틀렸을 때 그것을 인정하는 것.
AI는 강의를 대신할 수 있다. 어쩌면 나보다 더 잘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태도는 대신할 수 없다. 기술은 복제되지만 태도는 축적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을 정말로 듣는 것, 틀린 방향으로 가는 사람에게 조용히 방향을 짚어주는 것, 성과가 아닌 사람을 보는 시선 — 그것은 알고리즘이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10년 후의 나를 나는 알 수 없다. 최신 기술을 모두 따라가고 있을지, 여전히 강단에 서 있을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선택할 수 있다. 그때도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으로 남는 것.
능력은 순간을 증명한다. 태도는 시간을 증명한다.
그리고 결국 — 시간이 이긴다. 언제나 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