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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간으로 3월 6일 새벽 1시였다.
세상이 잠든 시간에 페이스타임이 울렸다. 화면 속 아들의 얼굴이 떴다. 그리고 첫마디.
"나 합격했어요."
그 짧은 문장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축하도, 안도도 아니었다. 지난 며칠간 식탁 위에 펼쳐놓았던 책 한 권의 제목이었다.
태도는 카피가 안 된다.
인터뷰 소식이 들어왔을 때부터 집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인터뷰를 보는 건 아들이지만 긴장하는 건 온 가족이었다. 이것은 인류가 아주 오래전에 발명한 가족 시스템의 작동 방식이다. 당사자보다 주변이 더 떨린다. 그리고 그 떨림 속에서 가족은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간다.
우리 세 사람은 며칠 동안 이 인터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예상 질문을 뽑고 답변을 다듬는 방향으로 흘렀다. 그러다 마침 내가 읽고 있던 책의 한 문장이 대화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능력은 준비된 결과물이고, 태도는 준비된 사람이다.
우리는 방향을 틀었다. 답을 완벽하게 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태도로 질문을 듣고, 어떤 태도로 침묵을 견디고, 어떤 태도로 모르는 것을 인정할 것인가. 그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보여줄 수는 있다.
질문을 들을 때 흔들리지 않는 표정. 예상치 못한 질문 앞에서 당황하는 대신 잠깐 숨을 고르는 것. "모릅니다"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기회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를 말이 아닌 온도로 전달하는 것.
면접관은 결국 사람을 본다. 능력의 총량이 아니라, 이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온도를.
나는 오랫동안 명리학을 공부해왔다. 그 공부가 내게 남긴 가장 단단한 문장은 이것이었다.
운명은 바꿀 수 있지만, 숙명은 바꿀 수 없다.
타고난 것이 있고, 만들어가는 것이 있다. 나는 그 경계를 꽤 명확하게 믿어왔다. 그런데 이번 일을 지켜보며 그 확신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어쩌면 숙명처럼 보이던 것도, 태도에 따라 운명으로 바뀌는 것은 아닐까. 주어진 조건이 결과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건을 마주하는 방식이 결과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아닐까.
합격 소식을 듣던 새벽, 나는 그 생각을 처음으로 진심으로 믿게 됐다.
아들은 올가을 보스턴으로 간다.
낯선 도시, 낯선 언어, 낯선 관계들. 그곳에서 또 다른 인생의 장면이 시작될 것이다. 잘 해낼 거라는 확신보다, 잘 버텨낼 거라는 믿음이 더 크다. 그리고 그 믿음의 근거는 능력이 아니다. 이번 일주일 동안 내가 본 태도다.
생각해보면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순간에 어떤 태도로 세상을 마주할지, 그 질문 앞에 함께 앉아주는 것이다.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같이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오래 남는 것이라고, 나는 이번 주에야 제대로 배웠다.
능력은 문을 열어준다.
하지만 그 문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서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태도다.
그리고 가족이란, 그 태도를 함께 만들어가는 가장 작고 가장 오래된 공동체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