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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모컨을 내려놓은 건 의도한 일이 아니었다.
유퀴즈는 웃으면서 시작했다. 자연 이야기, 가벼운 농담, 익숙한 예능의 리듬. 그런데 어느 순간 화면의 공기가 바뀌었다.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이승윤은 눈물을 쏟았고 윤택은 말끝을 잇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예능이었던 것이, 그 순간만큼은 삶이 되었다.
마지막 게스트 유지태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다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세 남자의 눈물은 달랐지만, 하나의 이름으로 모였다.
부모.
강하고 단단해 보이던 사람들이 부모 앞에서는 모두 같은 얼굴이 된다. 나이도, 경력도, 세상에서 쌓아온 무게도 그 순간만큼은 아무 소용이 없다. 누군가의 자식이었던 시간이 다시 떠오르면, 사람은 그때의 얼굴로 돌아간다.
신기한 것은 이 감정이 찾아오는 시점이다. 나이 오십쯤이면 세상을 이해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때부터 부모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부모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그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 자식이 비슷한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짐작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조금 늦게 운다.
부모의 위대함을 깨닫는 순간은, 이미 그 사랑을 다 받아버린 뒤다. 받는 동안에는 몰랐다.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거나,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가 보인다.
어제 세 사람의 눈물은 슬픔이 아니었다. 뒤늦은 이해였다. 그리고 그 이해가 늦었다는 사실이, 눈물을 더 오래 머물게 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도 자연스럽게 한 질문에 닿았다.
나는 과연 어떤 부모로 남게 될까.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다. 부모의 진짜 모습은 자식이 나이 들어서야 완성되는 것이니까.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부모로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기억 속에서 천천히 재해석된다.
결국 부모란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나중에라도 이해되는 사람. 당시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 그 마음이 읽히는 사람. 그리고 어쩌면 — 자식이 눈물을 흘릴 때, 그 눈물 안에 살아 있는 사람.
그것으로 충분한지도 모른다.